2 나의 잡글

박설호: (1) 실패가 우리를 가르친다

필자 (匹子) 2024. 7. 4. 10:12

무너지는 베를린 장벽을 바라보며 독일의 소설가들은 무엇을 이야기했는가?

 

통일 전후로 나타난 현대 독일 소설은 어떠한 문학적 특징과 의미를 가지는가? 독문학자이자, 다수의 독일 사상가와 문인들의 글을 우리말로 옮겨 온 저자 박설호는 『실패가 우리를 가르친다』에서 심도 있는 문학적 분석을 통해 통일 전후 독일 사회의 갈등과 그 해결 방안, 그리고 평화 공존의 모습을 우리 앞에 재연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동독 출신 작가들을 중심으로 그들의 문학작품을 해석하고 있다. 국가의 몰락을 직접 체험하고 분단과 통일을 보다 절실하게 고찰했던 것은 서독이 아닌 동독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구동독 초기의 문예 운동 및 사회주의 예술 연구의 일환으로 탄생한 것이며, 저자가 꾸준한 학문적 관심을 바탕으로 천착해 온 <동독 문학 연구>의 네 번째 결과물이기도 하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두 가지 사항을 간파하고 있다. 첫째, 통일된 독일은 유로존 국가들과 함께 미국과 같은 거대 블록으로 변모할 것이라는 점이다. 사회주의적 시장 경제를 표방하는 독일이지만 국익의 추구와 자본주의라는 틀 아래서 물질주의적 삶, 인종 갈등, 그리고 소비 중심의 향락 사회라는 특징을 보이게 될 거라 분석한다. 산업 사회와 매스컴 시스템은 이런 변화에 힘을 실어 줄 것이고, 그 결과 지식인이 사회를 주도하던 시대에 종언을 고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변화를 가장 먼저 감지하는 매개체가 바로 통일 전후 간행된 독일 소설이다. 둘째, 21세기는 과학 기술 및 매스컴 발전과 관련된 포만한 의식으로 인해 망각의 시대로 규정될 수 있다는 점이다. 저자는 망각의 현실이 문학인들의 집필 욕구를 서서히 앗아가고, 그 극점에서는 어느 누구도 지식인들의 발언을 들으려 하지 않을 것이라 분석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한반도라고 해서 이런 경향으로부터 벗어나지는 않을 것이란 점이다. 상기의 관점들은 전환기 독일 문학에서 도출해 낼 수 있는, 은폐될 수 없는 진리라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여전히 걷히지 않은 마음속 장벽의 흔적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지 20여 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당시의 변혁 속에서 꽃핀 독일 문학의 흔적은 여전히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는 대체로 독일의 분단과 통일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는데, 이는 통일을 갈구하는 대한민국의 역사와 상응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인문학 연구자로서 저자는 베를린 장벽의 붕괴를 국가의 통일이라는 피상적인 변화라는 측면이 아닌 인간 내면의 의식 변화 내지는 정신사의 전환에 관심의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책에는 동 · 서독 사람들 사이의 갈등 내지는 해결 방안 그리고 평화 공존에 관한 사항이 언급되어 있다. 이런 내용이 비록 간접적이지만 다문화 사회에서 살아가는 한국 사람들 그리고 차제에 통일된 한국에서 남북한 사람들이 아우르는 삶 그리고 평화 공존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무너지는 베를린 장벽을 바라보며 독일의 소설가들은 무엇을 이야기했는가?

 

통일 전후로 나타난 현대 독일 소설은 어떠한 문학적 특징과 의미를 가지는가? 독문학자이자, 다수의 독일 사상가와 문인들의 글을 우리말로 옮겨 온 저자 박설호는 『실패가 우리를 가르친다』에서 심도 있는 문학적 분석을 통해 통일 전후 독일 사회의 갈등과 그 해결 방안, 그리고 평화 공존의 모습을 우리 앞에 재연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동독 출신 작가들을 중심으로 그들의 문학작품을 해석하고 있다. 국가의 몰락을 직접 체험하고 분단과 통일을 보다 절실하게 고찰했던 것은 서독이 아닌 동독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구동독 초기의 문예 운동 및 사회주의 예술 연구의 일환으로 탄생한 것이며, 저자가 꾸준한 학문적 관심을 바탕으로 천착해 온 <동독 문학 연구>의 네 번째 결과물이기도 하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두 가지 사항을 간파하고 있다. 첫째, 통일된 독일은 유로존 국가들과 함께 미국과 같은 거대 블록으로 변모할 것이라는 점이다. 사회주의적 시장 경제를 표방하는 독일이지만 국익의 추구와 자본주의라는 틀 아래서 물질주의적 삶, 인종 갈등, 그리고 소비 중심의 향락 사회라는 특징을 보이게 될 거라 분석한다. 산업 사회와 매스컴 시스템은 이런 변화에 힘을 실어 줄 것이고, 그 결과 지식인이 사회를 주도하던 시대에 종언을 고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변화를 가장 먼저 감지하는 매개체가 바로 통일 전후 간행된 독일 소설이다. 둘째, 21세기는 과학 기술 및 매스컴 발전과 관련된 포만한 의식으로 인해 망각의 시대로 규정될 수 있다는 점이다. 저자는 망각의 현실이 문학인들의 집필 욕구를 서서히 앗아가고, 그 극점에서는 어느 누구도 지식인들의 발언을 들으려 하지 않을 것이라 분석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한반도라고 해서 이런 경향으로부터 벗어나지는 않을 것이란 점이다. 상기의 관점들은 전환기 독일 문학에서 도출해 낼 수 있는, 은폐될 수 없는 진리라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여전히 걷히지 않은 마음속 장벽의 흔적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지 20여 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당시의 변혁 속에서 꽃핀 독일 문학의 흔적은 여전히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는 대체로 독일의 분단과 통일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는데, 이는 통일을 갈구하는 대한민국의 역사와 상응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인문학 연구자로서 저자는 베를린 장벽의 붕괴를 국가의 통일이라는 피상적인 변화라는 측면이 아닌 인간 내면의 의식 변화 내지 정신사의 전환에 관심의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문학 연구가 인간 심리와 내면의 판단 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연구가는 겉으로 드러난 변화보다는 인간의 심층적 심리에 자리한 편견, 그리고 세계관의 변화 등에 더 큰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독일인들에게 통일은 절실한 요망 사항이 아니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베를린 장벽 붕괴되며 보여 준 통일의 열광은 다만 하나의 일회적 사건으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독일과 한국의 통일에 대한 태도는 이질적이다. 이는 <가해자의 악행에 대한 처벌>과 <배달민족의 연속적 수난의 결과>라는 의미의 간극 때문이다. 독일의 진보적 지식인들은 오히려 오래전부터 두 개의 국가를 인정하고 그 속에서 평화 공존을 지향했다. 통일을 열망했던 쪽은 반대로 서독의 보수 정당이었고, 이런 태도는 독일 내에서 민족주의 내지 히틀러 파시즘의 의혹을 불러일으키기까지 했다. 분단 독일은 1982년부터 제한적이나마 서로의 땅을 여행할 수 있었다. 상대 작가들의 작품, TV의 시청도 가능했다. 이렇듯 분단 독일은 현실적인 교류가 일어나고 있었고 이별의 고통을 뼈저리게 느끼지 않았다. 독일인들에게 통일은 그저 국경선의 변화로 이해되었다는 것이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을 때 구동독에서는 <통일>, <혁명>, <변화>, <혁신>, <개혁> 등의 표현 대신 <전환기>라는 용어가 선호되었다. 즉, 국경의 변화로 인해 한 인간의 국적이 바뀔 수는 있지만 후손들은 구동독 지역에서 계속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까지도 독일 내에서는 다양한 견해가 공존하고, 서로 다른 문화에 관한 논의도 현재 진행형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런 이유로 동독 문학과 전환기 이후의 문학은 일도양단의 방식으로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이 저자의 견해다. 특정 장소나 시기를 확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며, 그 대신 언어, 작가, 인민들의 의식 변화를 더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가와 함께 역사 속으로 사라진 동독 문학

 

동독 문학은 지속적으로, 본격적으로 연구되지 못하고 있다. 통일 이후의 사회적 변화를 막연하고 피상적으로 기술하는 데 그쳤기 때문이다. 통일 후 서독인들이 바랐던 것은 동독인들이 서방 세계의 문화 속에 복속되는 것이었고, 새로운 사회는 과거 동독 국가 및 제반 문화적 결실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따라서 문화적 차원에서 고찰할 때, 독일의 통일은 그다지 큰 이득을 남기지 못한 사건이었다. 서독인들은 사라진 사회주의 국가의 문화로부터 무작정 등을 돌렸다. 이는 이후에 동독 문학 논쟁으로 비화되어, 보수적 문예 이론가들은 동독 문학 전체를 통째로 매도하고, 모든 이론적 · 예술적 논거마저 부정하려 했다.

 

동독 문학의 연구가 본격적으로 개진될 수 없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저자는 정치적 이데올로기와 지정학적 상황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먼저, 동독 문학은 서독이 주도권을 쥔 통일된 독일에서 <적국의 문화 운동> 내지 <예술가에 대한 인권 탄압의 범례>로 활용되었다는 것이다. 보수정당의 선거 전략에 사용되어, 적국의 비참한 정치적 상황을 보도하여 자국의 민주주의 풍토를 은근히 자랑하는 효과만 냈을 뿐이다. 따라서 정치와 무관한, 온전한 동구의 문학 작품은 큰 관심을 받지 못했다. 서베를린이라는 정치적 통로의 역할 또한 동독 문학 연구에 대한 길을 막아섰다. 서베를린은 동독 지식인들에게 <정치적 섬>이자 <마지막 탈출구>로 기능했다. 그들에게 <가능성이 없으면 서베를린을 통해 떠난다>라는 도피의 여지가 남아 있었던 것이다.

 

통일이라는 문화적 충격이 창작 활동에 부정적인 역할을 부여하기도 했다. 검열의 파기에 대한 안도감과 새로운 문학 시장의 질서에 대한 은근한 기대감도 표명되긴 했지만, 통일된 독일의 출판계는 이런 작가들과 입장을 달리했다. 자본주의 체제 아래서 동독 작가들의 작품은 국가의 소멸과 상실감을 표현할 뿐이었고, 통일된 독일의 독자들은 이를 외면했다. 작가들은 실험정신은 뒤로하고 독자의 비위를 맞추는 데 혈안이 될 수밖에 없었다. 본격 문학 작품은 소외되고 단순한 욕구를 충족시키는 대중 소설이 활개를 치게 되었다. 저자는 이런 문학의 상품화 현상이 남한의 극심한 자본주의 문화 풍토에 비하면 경미하다고 할 수 있지만, 동시에 현재 우리 출판계에서 볼 수 있는 양극화 현상은 이미 통일 이후 독일 사회의 전체를 통해 잘 나타나고 있다고 진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