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나의 잡글

박설호: (2) 실패가 우리를 가르친다

필자 (匹子) 2024. 7. 4. 10:15

 

실패가 우리를 가르친다

전환기 이후의 문학을 고찰할 때 가장 중요한 점은 통합과 소통의 어려움에서 비롯되는 갈등이다. 약 40년 동안 다른 나라에서 제각기 다른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 과연 어떻게 함께 아우르며 살아갈 수 있을까? 상대적으로 진지한 고민과 숙고가 부족했던 서독인들이 가진 경제적 우월감은 동독인들에게 피해의식으로 작용했다. 동독인들은 통일을 너무나 순진한 자세로 받아들이며 자본주의의 경쟁 구도를 전혀 알지 못했던 것이다. 심리적 상처를 입은 채로, 냉혹한 현실 속에서 서독인들과 조우하게 된 그들에게 남은 것은 실업의 충격과 구동독의 복지체제에 대한 향수였다. 저자는 통일된 국가 속에서 소통의 부재, 동화, 갈등과 같은 문제들은 문학의 영역뿐 아니라 정치, 경제, 그리고 사회 제반 영역에서 끝없이 제기될 것이라고 내다본다. 따라서 대립하는 견해 차이, 갈등의 경계선, 불신의 계기로 작용하는 치욕적인 발언, 적개심을 불러일으키는 쓰라린 논거, 증오심을 유발하는 뜨거운 감자 등을 인지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한다.

 


우리는 동독 문학과 전환기 문학을 천착하면서 미래에 관한 핵심적 문제를 함께 숙고하지 않으면 안 된다. 가령 현재 유럽인들의 상황과 삶의 모습에 대한 물음을 통해 그들이 추구하는 미래 삶의 전개 방향을 엿볼 수 있다는 것이다. 통일 후 독일의 전체 산업은 두 배의 이윤을 남겼다. 반대로 임금 노동자와 봉급생활자의 경우 물가와 생활 수준을 고려할 때 변한 게 없었고, 그들에게 두 배로 늘어난 것은 실업률이었다. 수많은 상품들이 생산되지만 기계화 자동화의 영향으로 실제 노동 행위는 절반으로 감소했다. 저자는 대기업 중심으로 중국 경제에 의존하게 될 한반도의 경제적 체계에서는 이런 문제가 더욱 첨예하게 드러날 것이라 지적한다.

 


저자는 경제학자 조지프 알로이스 슘페터의 말을 빌려 다음과 같은 주장을 펼친다. <자본주의는 자신의 위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성공으로 인해 자멸>할 것이고, <자본주의의 성공은 인간이 인간답게 공동 삶을 추구하려는 노력의 패배>를 뜻한다고 말이다. 따라서 인류의 공생을 위해 급진적인 새로운 방식으로 지금까지의 모든 주어진 현실을 전복시키는 실험을 반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것이 미래 사회에 어떤 형태로 나타날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소규모 울력 공동체, 무정부주의, 반정부주의적인 소규모 코뮌 등의 형태가 확산되면 자본주의를 추동하는 산업 시스템이 무너질지 모를 일이라고 주장한다.

 


저자가 이 책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다음과 같다. 진보는 다음 진보로 이어지지 않으며, 그 사이에는 항상 크고 작은 파국이 도사리고 있다. 그런 이유로 <실패가 우리를 가르친다>는 전언에 우리는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다. 문학과 문화, 그리고 역사 연구 자체가 우리에게 미래를 전망하고 이에 대한 대응책을 찾기 위한 전제 조건으로 작용할 것이다. 역사적 내용이 우리의 당면 문제에 대한 직간접적인 해답을 안겨 주지 않는다면, 우리는 역사서를 뒤질 아무런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동독의 실패가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은 우리가 거대한 기계에 의해 작동되는 산업 시스템으로부터 등을 돌려야 할 시점에 처해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문학의 힘을 통해 재앙과 같은 파국의 현실을 과연 깨달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