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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박: (2) 옐리네크의 '피아노 치는 여자'

필자 (匹子) 2024. 4. 17. 10:31

(앞에서 이어집니다.)

 

6. 즐겁지 못한 관음행위: 문제는 에리카가 음악 뿐 아니라 삶에서 스스로 체득한 바를 자신의 제자에게 그대로 전해준다는 사실입니다. 그미는 작은 피아노 연주회를 개최하는데, 자신에게서 피아노 배우는 학생들의 학부형이 연주회에 참가하지 않을 경우 에리카는 그들에게 나쁜 점수를 매깁니다. 이를테면 그미는 흥청망청 즐기는 대중들의 유유자적한 태도를 몹시 경멸합니다. 처음에 에리카는 어머니가 시키는 대로 언제나 피아노 곁에서 생활합니다. 그러나 에리카는 서서히 자신의 외모를 바라보고, 아름다운 옷이라든가, 멋진 신발 그리고 명품 백에 관심을 기울입니다. 상점에서 몰래 옷을 훔치지만, 두려움 때문에 그미는 훔친 옷을 길가의 쓰레기통에 버립니다.

 

에리카는 어머니 몰래 소풍을 떠나기도 하고, 포르노 영화관에서 창녀들이 남자들과 즐기는 성행위를 아무런 흥분도 느끼지 않은 채 그냥 멀거니 감상하기도 합니다. 아니, 젊은 여자가 포르노를 관람하면서 아무런 흥분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 자체가 문제가 아닐까요? 에리카는 늦은 저녁 자동차 안에서 성교하는 남녀를 무심결에 골똘히 쳐다보다가, 졸지에 “새잡는 여자”로 몰려 곤욕을 치르기도 합니다. 에리카가 밤늦게 귀가하는 일이 많아집니다. 이로 인하여 어머니와의 마찰은 더욱 커지게 됩니다. 에리카는 그럼에도 어머니의 집에서 가출하여 홀로 살아가려고 하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한 번도 혼자 살아본 적이 없는 그미로서는 독신녀의 삶을 무척 두려워합니다. 그게 아니라면 에리카는 어쩌면 무의식적으로 스톡홀름 신드롬에 갇혀 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마치 인질로 잡혀 있는 사람이 인질범보다도 경찰을 더 두려워하듯이, 그미는 어처구니없게도 자신에게 고통을 가하고 부자유를 강요하는 어머니를 외부의 어떠한 존재보다도 더 가엾게 여기고 있습니다.

 

7. 발터 클레머의 유혹: 어느 날 에리카에게서 피아노를 배우려는 남학생이 찾아옵니다. 그는 발터 클레머라는 스포츠를 좋아하는, 평범한 대학생이었습니다. 발터는 피아노를 배우는 일보다 에리카에게 더 많은 관심을 두고 있었습니다. 에리카는 처음에는 발터의 구애를 무시하다가, 나중에는 그를 경멸하기까지 합니다. 문제는 그가 구애를 포기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습니다. 클레머는 나이든 여선생에게 더욱더 적극적으로 다가가려고 합니다. 어느 날 그는 탈의실로 따라온 뒤에, 에리카에게 키스를 퍼붓더니, 그미의 치마를 거머쥡니다.

 

 

에리카의 몸은 순식간에 넘어지고, 발터의 손가락은 그미의 하복부로 향합니다. 에리카는 그의 육중한 몸을 밀칩니다. 에리카의 뇌리에는 언젠가 관람하던 포르노 영화가 스쳐 지나갑니다. 그미는 발터의 바지를 열고, 그의 발기한 페니스를 끄집어냅니다. 에리카는 손으로 발터의 욕정을 아무런 생각 없이 주물럭거립니다. 발터가 가까이 다가가려고 했을 때 에리카는 가만히 있으라고 소리를 지릅니다. 발터가 오르가슴에 도달하기 일보 직전에, 에리카는 페니스를 만지던 손을 놓아버립니다. 발터가 그미에게 다가갔을 때, 에리카는 싫다고 말하면서 그 자리를 벗어납니다.

 

8. 발터, 주인공의 비정상적인 속내를 접하다: 다음 날 피아노 레슨 시간에 에리카는 아무런 일이 없었던 것처럼 행동합니다. 그미는 발터의 서툰 피아노 솜씨를 꾸짖습니다. 발터는 주말에 함께 시간을 보내자고 제안했으나, 에리카는 이를 거절합니다. 발터로서는 에리카의 행동이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여선생은 자신을 원하는 것 같기도 하면서 거부하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수수께끼 같은 에리카의 행동은 발터의 욕정을 더욱 자극합니다. 그는 마치 스토커처럼 귀가하는 에리카의 뒤를 밟습니다.

 

어머니는 낯선 남자의 방문에 순간적으로 불쾌함을 드러냅니다. 에리카는 자신의 제자와 이야기할 게 있다고 말하면서 발터를 자신의 방으로 데리고 갑니다. 그 다음에는 자신이 쓴 편지를 꺼내어 읽어보라고 발터에게 명령합니다. 펀지 속에는 에리카의 내밀한 욕망이 마치 악보처럼 명령의 형태로 기술되어 있었습니다. 그것은 놀랍게도 자신을 때리고 괴롭히며, 성적으로 학대하라는 내용이었습니다. 발터는 편지의 내용에 소스라치게 놀랍니다. 그는 다만 에리카와 사랑을 나누고 싶었을 뿐, 결코 변태 행위를 의식한 적이 없었던 것입니다. 발터는 참담한 마음으로 밖으로 뛰쳐나갑니다.

 

9. 이기적인 사내 발터, 주인공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자신의 욕정만을 해소하다: 그 후로 발터는 더 이상 피아노 레슨을 받지 않습니다. 에리카는 시간을 내어 발터가 자주 연습하는 아이스하키 경기장으로 향합니다. 두 사람은 경기장 내의 청소부 창고로 향합니다. 에리카는 무릎을 꿇은 채 말 없이 발터의 바지를 벗깁니다. 포르노 영화 속의 한 장면처럼 에리카의 입은 발터의 성기로 향합니다. 에리카가 그의 성기를 빨려고 했지만, 그것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말하자면 그는 “지금까지 한 번도 밖으로 분출되지 않은 피아노 여교사의 내면세계”에 대해 일순간 두려움을 느낍니다. 이러한 두려움은 에리카와 살을 섞으려는 그의 성적 열망을 완전히 사라지게 만듭니다.

 

발터는 자신이 일순 성적으로 불능 상태에 처해 있다는 사실에 몹시 실망합니다. 그래서 그는 그곳을 황급히 떠납니다. 발터는 밤늦도록 공원을 배회합니다. 플라밍고 한 마리라도 때려 죽여야 속이 풀릴 것 같았습니다. 공원에는 젊은 남녀가 애무하고 있었습니다. 발터는 몽둥이를 들고, 그들에게 위협을 가합니다. 그는 어느 처녀가 남긴 털옷 상의를 발로 짓밟아버립니다. 사디즘의 욕망이 행동으로 드러나면서, 에리카가 편지에 기술했던 끔찍한 욕망이 행동으로 표출되었던 것입니다. 뒤이어 발터는 에리카와 어머니가 거주하는 동네로 와서 어둠 속에서 수음합니다. 밤이 깊어졌습니다. 발터는 에리카의 집 문을 두들깁니다. 문이 열리자마자 그는 방안으로 돌진하여 에리카의 뺨을 사정없이 갈깁니다. 에리카의 어머니가 경찰을 부르려고 했을 때, 발터는 그미를 침실로 몰아넣고 방안에 가두어버립니다. 부엌에서 물을 벌컥 마신 다음에 그는 에리카를 주먹으로 때린 다음에 그미의 성을 마구잡이로 유린해버립니다.

 

(3에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