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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박: (1) 옐리네크의 '피아노 치는 여자'

필자 (匹子) 2024. 4. 17. 10:28

1. 옐리네크의 소설: 친애하는 E, 오늘은 오스트리아 출신의 작가, 노벨상 수상작가인 엘프리데 옐리네크 (Elfriede Jelinek, 1946 - )의 소설 『피아노 치는 여자 Die Klavierspielerin』에 관해서 자세히 다루어보기로 합니다. 이 작품은 자전적 내용을 담은 소설인데, 1983년에 발표되었습니다. 70년대 중엽에 작가는 『연인들 Die Liebhaberinnen』 (1975)이라는 작품을 발표한 바 있는데, 여기서는 소시민들의 사랑의 삶 속에 도사리고 있는 수많은 성적인 고통과 테러 행위가 신랄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시민사회에서 살아가는 대부분의 여성들은 사랑의 삶에서 성적 행복을 만끽하면서 살아가지 못합니다. 오히려 그들은 결혼 이전의 시기에 꿈꾸어왔던 달콤한 삶을 누리기는커녕, 때로는 가족들로부터 심각한 스트레스를 받기도 합니다. 때로는 나이든 미혼여성의 경우에는 부모 사이의 관계에서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깊은 심리적 상처를 받기도 합니다. 작품 『피아노 치는 여자』역시 사랑의 삶에서 치유될 수 없는 커다란 고통의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고 있습니다.

 

2. 주인공이 처한 정황: 에리카 코후트는 피아노를 가르치면서 어머니와 함께 살아가는 30대의 미혼 여성입니다. 그미의 아버지는 경제적 능력이 없었으며, 혼란스러운 감정을 지닌 병든 남자였습니다. 결국 그미의 아버지는 집을 나간 뒤에 객사하고, 에리카는 어머니와 함께 생활하고 있습니다. 모녀의 관계는 생각보다 밀접합니다. 심지어 그들은 한 침대에서 잠을 잡니다. 이는 유럽에 사는 대부분 젊은이들의 일반적 삶과 비교하면 현격한 차이를 보여줍니다. 유럽 젊은이들은 20세가 넘으면, 부모의 집을 떠나 홀로 살아가지 않습니까? 에리카와 어머니와의 관계는 지극히 비정상적입니다. 그것은 어쩌면 사도 마조히즘의 공생관계로 설명될 수 있을지 모릅니다. 어머니는 나이든 딸에게서 아버지를 대리하는 애정을 은근히 바라고 있으며, 딸은 어머니가 시키는 대로 모든 일을 마치 노예처럼 행합니다. 이로 인하여 에리카는 자신의 감정을 스스로 조절하지 못하고 살아가며, 다른 여성들이 경험하는 남자 친구와의 자연스러운 애무라든가 키스조차 경험하지 못한 채 살아갑니다.

 

3. 어머니의 영향: 어머니는 자신의 딸이 피아니스트가 되기를 바랐으며, 어린 시절부터 피아노 공부를 시켰습니다. 그러나 에리카는 탁월한 피아니스트가 되지는 못했습니다. 시간만 나면 피아노 앞에서 열심히 연습했습니다만, 이는 자신의 자발적인 의지에 의해서가 아니라, 어머니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렇기에 그미가 피아노의 대가가 된다는 것은 처음부터 불가능했습니다. 그렇지만 한 가지 위안이 있다는 그것은 자신이 최소한 피아노를 가르치면서 자신의 밥벌이를 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미에게는 남자 친구를 사귈 시간이 조금도 없습니다. 게다가 아버지가 가출한 뒤부터, 어머니가 가사를 돌보고, 에리카는 마치 집안의 가장처럼 돈을 벌게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에리카가 벌어온 돈을 모아서 자신 소유의 집을 장만하려고 합니다. 그렇기에 어머니로서는 딸이 오로지 피아노 연습과 피아노 레슨 외에는 어떠한 다른 사람을 만나지 못하도록 조처를 취합니다. 그미는 일상생활에 필요한 모든 사항에 대해 에리카에게 시시콜콜 간섭합니다.

 

 

4. 무감각한 우울한 인간: 가장 중요한 문제는 어머니가 딸을 여전히 자신의 소유물로 취급한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어머니의 견해에 의하면 딸이란 멀리 떠나지 않는 언제나 같은 공간에 머물러 있어야 하는 존재라고 합니다. 에리카는 새장 속의 새로 살아갑니다. 만약 에리카가 늦게 귀가하면, 어머니는 마치 근엄한 재판관처럼 노발대발 고함을 지르면서, 그미에게 온갖 욕설을 퍼붓곤 합니다. 심지어는 어머니가 몽둥이를 들고 에리카에게 달려든 적도 있었고, 에리카의 머리채를 쥐어 잡고 마구 흔든 적도 있었습니다. 에리카는 어머니로부터 끊임없이 심리적으로 상처 입습니다. 이러한 지속적인 상처는 심리적 상흔으로 그미의 무의식을 경직시키게 만들고, 급기야 그미를 철저히 무감각한 인간으로, 때로는 우울한 인간으로 만들어 놓습니다.

 

주인공 에리카의 삶은 너무나 지루하고, 끔찍하기까지 합니다. 그래서 그미는 처음에 바늘로 자신의 살을 찔러봅니다. 자신의 살결에서 피가 돋으면, 그미는 고통을 느끼지 않고, 오히려 갑갑한 심리적 감옥에서 탈출하는 듯한 착각에 빠집니다. (무릇 자해는 외부로 받은 스트레스를 자신에게 공격적으로 해소하는 방식입니다. 자해는 반드시 중독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몹시 위험합니다. 성적 문제로 고민하는 여학생들이 자해 소동을 벌이는 경우를 우리는 신문에서 접할 수 있지요.) 주인공 에리카의 자해 행위는 서서히 도를 넘습니다. 그미는 목욕탕에서 면도날을 거머쥐고 자신의 생식기의 살을 그어댑니다. 핏방울이 떨어지면, 약간의 해방감을 느끼곤 합니다.

 

5. 악보는 주인공에게 코르셋과 같다: 자고로 자식에 대한 부모의 과도한 욕망은 자식의 심리를 망치는 법입니다. 자식은 부모의 인정을 받기 위해서 노력하지만, 실제로는 자신이 정작 무엇을 원하며 살아가는지 모르고 있습니다. 제 아무리 노력해도 부모의 과도한 욕망은 성취되지 않습니다. 이 경우 부모는 자식에 대한 실망을 토로하고, 자식은 자식대로 자신의 무능력 아닌 무능력으로 속 태우지요. 문제는 자식이 느끼는 자신의 능력의 한계가 사랑의 삶에서도 이어진다는 사실입니다. 다시 작품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에리카의 어머니는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자신의 간절한 꿈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바로 에리카가 훌륭한 피아니스트로 명성을 떨치는 게 바로 어머니의 꿈이었습니다. 훌륭한 피아니스트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음악성을 키워나가야 하고, 열손가락으로 피눈물 나게 건반을 두드려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육체적 욕망이라든가 감각적 기쁨 모든 것을 포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마치 중세의 시대에 어린 테너 가수 지망생이 변성기를 겪지 않으려고, 스스로 거세를 감행하듯이, 피아니스트가 되려는 여자는 육체적 욕망이라든가 이성에 대한 사랑의 감정을 지녀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에리카는 훌륭한 예술가가 되지는 못했지만, 그런대로 훌륭한 음악 교사가 되었습니다. 음악의 악보는 그미의 삶에서 마치 자신의 몸을 옥죄이는 코르셋처럼 작용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