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한국 문학

(명시 소개) 한용운의 시, '후회'

필자 (匹子) 2024. 1. 30. 14:53

후회

한용운

 

당신이 계실 때에 알뜰한 사랑을 못하였습니다.

사랑보다 믿음이 많고 즐거움보다 조심이 더하였습니다.

게다가 나의 성격이 냉담하고 더구나 가난에 쫓겨서 병들어 누운 당신에게 도리어 소활(疎阔)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당신이 가신 뒤에 떠난 근심보다 뉘우치는 눈물이 많습니다.

 

......................

 

만해 한용운 시전집, 참글세상 2016, 81쪽.

 

(시 해설)

 

H: 당신은 지금 몸이 편찮으시군요. 나는 당신의 고통스러움을 대할 뿐, 당신의 참모습을 알지 못합니다. 그 까닭은 나의 의지에는 사랑이 많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언제나 무언가를 갈구하는 어리석은 존재입니다. 그것은 본능적 탐욕이거나 명예욕일 수 있습니다.

 

L: 별반 아름답지도 않는, 평범한 몸을 지닌 영혼입니다.

 

H: 아니, 나에게 문제가 있습니다. 자신을 돌아보지 못하고, 나를 포옹하는 당신의 넓은 마음을 헤아리지 못합니다. 그래, “사랑보다 믿음이 많고, 즐거움보다 조심이 더하였습니다.” 여기서 믿음이란 아마도 나의 편협한 판단을 가리키겠지요? 외부로 향하는 나의 욕망은 내 눈을 가리게 하였습니다.

 

L: 밤하늘의 수많은 별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H: 힘든 주위 현실적 정황이 내 마음을 더욱 위축시키고, 당신의 하해와 같은 사랑을 바라보지 못하게 했습니다. 이는 나의 성격 탓이기도 하겠지요? 나의 삶은 내 마음을 더욱더 냉정하고 차갑게 만들었습니다. 삶의 고통은 나의 자연스러운 열정을 가두게 하였고, 당신의 내적인 아픔을 조금도 헤아리지 못하게 했습니다.

 

L: 작은 일에도 기쁨과 슬픔을 주체하지 못하는 눈동자입니다.

 

H: 나의 이기심은 병든 당신을 귀찮은 존재라고 여기게 했습니다. 당신이 가까이 있을 때 나는 어리석은 부담감으로 그저 소활하려고 했을 뿐입니다. 그러니 나는 그윽한 부담감 떨친 사랑을 체득할 수 없었습니다.

 

L: 몸이 아파도 당신에게 아무 것도 요구하지 않는 미소입니다.

 

H: 이제 당신은 꽃상여를 타고 먼 곳으로 떠나셨군요. 당신이 떠난 다음에 어리석은 나는 당신의 존재가 얼마나 존귀한지를 뒤늦게 깨닫습니다. 떠나간 당신의 안위를 걱정하지는 않지만, 차마 감히 당신을 사랑한다고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네 마음 속에는 그저 사랑의 기회를 상실한 죄책감이 당신에 대한 그리움과 뒤섞이고 있습니다. 

 

L: 멀리 다른 시간에 머물기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