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한국 문학

(명시 소개) 백무산의 시, '영천 장터'

필자 (匹子) 2024. 1. 24. 16:37

영천 장터

백무산

 

장꾼들 틈에 끼여 마음도 왁자하게 열어두고

어딘가 구겨지고 귀퉁배기 하나씩 허물어진 사람들과 섞여

애가 타고 목이 쉬게 장돌림을 하다가 아버지들처럼

쇠전거리 국밥집에서 두어잔 탁배기 들이키고 가야지

못 잊고 못 간 그 길 타는 자갈길

 

능금꽃 피고 지면 보리가 따라 익고

뻐꾸기 한나절 울음에 문둥이 따라 울던 곳

과수원 탱자나무 울타리 완산 대보둑길

노고지리 둥지틀던 여울 건너 버덩 목화밭 타는 밀밭

남상남상 봇물 위로 날으던 물새

혹부리 영감 나룻배 타고 푸른 바람을 타고

못 잊고 못 간 그 길 타는 자갈길

 

짙푸른 금호강에 몸을 던진

여인이 벗어놓은 하얀

코고무신 한 켤레 눈이 시리던

청석바위 벼랑길 따라 비탈을 지나 초가집 하나

그가 떠난 날은 콩잎이 누렇게 익을 무렵이었다지

칙간 거적에 권총을 숨겨두고 콩밭머리에

장총을 묻어두고 산을 타기 시작했다지

어찌 그 모진 감옥에서 돌아왔나

끝내 사는 것이 하 답답했나 술로 일찍 마친 사람

식구들 가슴마다 시커먼 피멍 하나씩 유산을 남기고

 

목수였던 그가 남긴 것은 영천 장터

그 공사 다 마치던 날 대팻밥 먼지 털지도 않고 달려와

첫 울음 우는 날 안았다지 딱 한 번 삶이 환했을까

아직도 나는 못 가네

못 잊고 못 간 그 길 타는 자갈길

 

날 반겨줄 이들 모두 백골로 남은 고향

불행했던 내 동무들 몇이나 있나

폭폭한 먼지 길에 묻어버린 내 유년

못 잊고 못 간 것이 하 답답해도

멀어야 이백릿길 길어야 반나절

나는 못 가네 가지 못하네

못 잊고 못 간 그 길 타는 자갈길

 

...............

 

실린 곳: 백무산, 인간의 시간, 창작과 비평 1996 56쪽 이하.

 

 

 

백무산 시인은 나에게는 낯선 분입니다. 오로지 몇몇 시구만으로 그의 시세계 그리고 그의 인생을 관음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겠지요. 유년은 작은 장면으로 이어지는 기억 속의 상 -  하나 백무산 시인의 고향은 포근하고 안온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1960년대 영천은 시인에게는 가난이 가슴을 저미던 땅이었는지 모릅니다. 순진무구한 삶의 기억 속에는 "장꾼"들의 굶주림 그리고 심리적 애환이 뒤섞여 있다고나 할까요? 그렇기에 시인은 “멀어야 이백릿길”의 거리이며, “길어야 반나절” 시간이면 다가갈 수 있는 곳이건만 그리로 향하고 싶지 않습니다.

 

고향의 풍경은 제 2연에 서술되어 있습니다. "능금꽃 피고 지면 보리가 따라 익고/ 뻐꾸기 한나절 울음에 문둥이 따라 울던 곳/ 과수원 탱자나무 울타리 완산 대보둑길/ 노고지리 둥지틀던 여울 건너 버덩 목화밭 타는 밀밭/ 남상남상 봇물 위로 날으던 물새/ 혹부리 영감 나룻배 타고 푸른 바람을 타고/ 못 잊고 못 간 그 길 타는 자갈길“  이처럼 아름답고 눈물겨운 고향 땅의 모습을 처절하고 사실적으로 묘사한 시작품을 이전에 접한 적이 없습니다.

 

그미는 무슨 이유로 "코고무신"을 벗어두고 금호강에 몸을 던졌을까요? 밖에서 당하고 시달리던 무지렁이 남편이 집안에서 무지막지한 폭력을 행사했을까요? 피 흘라며 매 맞다가, 목숨 줄을 스스로 놓아버렸던 것일까요? 잘 모르겠습니다. 아니면 이웃 사내에게 미소를 지었다는 이유로 이웃들에게 갖은 모욕과 행패에 시달렸던 것일까요? 굴욕과 끝모르는 모멸감이 결국 박명(薄命)을 선택하게 했을까요? 시작품은 묘한 여운만을 전해줄 뿐입니다.

 

그리고 출옥 후 방황하던 사내는 누구일까요? 술에 취해 산을 헤매다가 “권총을 숨겨두고” “장총을 묻어두고” 유명을 달리한 사내는 누구일까요? 의로움이 이로움에 묻혀서 더 이상 나은 미래가 보아지 않을 때 사내는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요? 세상의 법도는 대체 존재하는 것일까요? 이승의 불의를 어떻게 견디면서 살았을까요? 추측컨대 시인의 아버지는 목수로 일한 것 같습니다. 아들의 탄생에 " 공사 다 마치던 날 대팻밥 먼지 털지도 않고 달려와" 함박웃음을 터뜨렸겠지요. 시인은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말합니다. 백무산 시인은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도 자신의 고향을 그렇게 생각할까요? 잘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