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근대영문헌

서로박: (2)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

필자 (匹子) 2023. 11. 26. 10:10

7. 우리는 제 1권이 동시대 영국의 정책을 노골적으로 풍자한다는 사실을 접할 수 있다. 릴리푸트의 수상, 플립너프는 당시의 자유당의 정치가, 로버트 월폴Robert Walpole을 빼박은 인물이다. 월폴은 휘그Whig 정당의 당원이었는데, 보수정당을 견제하며, 중상주의의 정책을 실행에 옮긴 사람이다. 실제로 스위프트는 휘그 당에 가입한 다음에 이에 환명을 느끼고 정치적 경력을 포기한 바 있다. 플립너프가 말할 때, 걸리버는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그의 말을 무시한다.

 

콩알만한 사람이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하찮게 느껴졌던 것이다. 릴리푸트 왕국이 화염에 휩싸였을 때, 주인공 걸리버는 오줌을 누면서 왕궁의 불을 끈다.어쩌면 작가 스위프트는 여기서 앤 여왕의 정치 참여에 은근히 제동을 걸려고 의도했는지 모른다. (앤 여왕은 스튜어트 왕조의 마지막 여왕으로서 1702년에서 1714년까지 영국을 통치하였다.) 물론 걸리버의 첫 번째 여행기에 담긴 이러한 정치적 알레고리는 명확하게 이해되지는 않지만, 우리는 여기서 스위프트의 정치 풍자를 읽을 수 있다.

 

8. 걸리버의 세 번째 여행기는 에피소드로 구성되었다는 점에서 앞의 여행기와는 다르다. 그것은 『마르티누스 스크리블레루스의 회고록Die Memoirs of Martinus Scriblerus』 (1713/ 14)에 의존하고 있다. 조나판 스위프트는 당시에 알렉산더 포프Alexander Pope 그리고 존 아버스넛 박사Dr. John Arbuthnot 등과 교우하면서 스크리블레루스의 그룹을 결성하였다. 이때 그는 친구들과 함께 여러 가지 문헌을 집필하고 이를 정리하였다. 회고록은 말하자면 스크리블레루스 그룹에 속하는 사람들이 정리한 정치 풍자의 문헌인데, 바로 간행되지 못했다. 스위프트는 정치 풍자의 글을 많이 집필했는데, 신변의 위협 때문에 그리고 경제적인 이유로 서랍 속에 자신의 글을 많이 남겼다. 스위프트가 많은 가명을 사용한 것도 검열 때문이었다. 회고록의 일부는 1741년에 이르러서야 알렉산더 포프의 전집에 비로소 게재되었다. 이들은 시대의 변화에 무조건 맹종하는 영국의 상류층의 경박한 태도를 야유하였다.

 

 

9. 예컨대 『마르티누스 스크리블레루스의 회고록』에는 고위 계층 자제의 엄격하고 근엄한 교육 방식이 언급되고 있다. 사람들은 고위 자제들이 날씬하고 멋있게 자라게 하도록 암소 고기 대신에, 주로 꿀과 버터만 먹였다. 다시 세 번째 여행기로 돌아가기로 한다. 세 번째 여행기에는 라푸타 섬, 바르니바비 왕국의 수도인 라가도, 루그나가그 섬 등이 언급되고 있다. 라푸타는 하늘 위에서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섬이다. 라푸타 섬의 주민들은 수학, 음악 그리고 천문학에 몰두하고 있는데, 이들에게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인간관계 내지 사회성에 대한 관심은 추호도 발견되지 않는다. 가령 라가도에는 “발명가의 아카데미”가 있다. 라가도 사람들은 기괴할 정도로 이론에 매달릴 뿐, 학문적 내용을 실제 삶에 실천하는 일에 관해서는 아무런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10. 실제로 스위프트는 평생 데카르트 방식의 합리주의 사고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였다. 데카르트의 합리주의의 사고는 일반 상식의 요구 사항을 거부하고, 삶에 있어서의 학문적 실천을 등한시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발명가의 아카데미 사람들은 오이를 잘라, 거기에 태양광을 비추는 등 수분 제거의 실험을 감행하며, 똥을 수집하여 음식으로 재가공하려고 하는 식의 그야말로 황당무계한 실험을 실행했다. 스위프트는 이러한 서술을 통하여 1662년에 건립된 영국의 “왕립학회 Royal Society”를 패러디하려고 했다. "로열 소사이어티"는 이른바 학문 연구를 촉진한다는 미명으로 기괴한 실험을 마다하지 않았다. 또한 루그나가그 섬에서 활동하는 스트룰드버그라는 자는 실험을 통해서 스스로 불멸의 존재로 변모하려고 애쓴다. 이로써 죽음은 더 이상 인간을 불행에 빠뜨리는 비극적 장애물이 아니라, 신의 은총을 통한 구원으로 새롭게 해석되고 있다.

 

11. 스위프트의 쓰라린 풍자는 네 번째 여행에서도 정점에 도달하고 있다. 네 번째 여행에서 걸리버는 말의 나라로 향하는데, 그곳에서 어떤 끔찍한 환영과 마주친다. 네 번째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등장인물은 “야후Yahoo”와 “휘늠Houyhnms”이다. “야후”는 인간과 비슷하게 생겼지만, 질병, 우매함 그리고 악덕으로 이루어진 존재이다. 겉보기에는 인간을 닮은 원숭이이지만, 도저히 제어될 수 없는 충동적 본성을 지닌 자가 바로 “야후”이다. 이에 반해 “휘늠”은 말(馬)처럼 생겼는데, 놀라울 정도로 예의 바르고 이성을 지닌 동물이다.

 

그렇다면 어째서 스위프트가 네 번째 여행기에서 “야후”와 “휘늠”을 묘사했을까? 존 로크 그리고 샤프츠베리Shaftesbury 등과 같은 철학자는 이른바 인간의 본성이 이성과 도덕성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파악하면서, 계몽적 낙관주의의 입장을 내세운 바 있다. 조나탄 스위프트는 이러한 견해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고 싶었다. 작가는 1704년 『책의 전쟁The Battle of the Books』(1704)에서 인간에 대한 불신 내지는 회의주의의 입장을 내세웠다. 조나탄 스위프트의 이러한 입장은 근본적으로 몽테뉴, 홉스, 라로쉬푸코La Rochefoucauld 그리고 벨Bayle 등의 이론적 논거에 바탕을 둔 것이다. 그것은 이후 신구 논쟁에서 오래된 것을 무시하고 무조건 새로운 것을 추종하려는 태도를 비아냥하는 수단으로 채택되기도 하였다.

 

 

12. 작가 스위프트는 실제로 영국 사회에 이성적이고 예절을 갖춘 자들이 끔찍한 행동을 거리낌 없이 저지르는 모습에 치를 떨었다. 작가가 비판적으로 지적하려는 것은 겉 다르고 속 다른, 이른바 표리부동한 인간 동물의 정체를 백일하에 밝히려는 것이었다. 네 번째 여행에서 걸리버는 두 등장인물, “야후”와 “휘늠”에게서 인간의 이중적 본성을 예리하게 고찰하고 있다. “야후”와 “휘늠”은 걸리버에 의하면 완전히 이중적으로 대치되는 인간 동물은 아니다. 오히려 휘늠은 야후라는 낙인을 지니고, 야후 역시 휘늠이라는 낙인을 감수하며 살고 있다.

 

걸리버는 결국 내면에 이미 상기한 두 가지의 본성이 도사리고 있음을 감지한다. 주인공은 이를 깨닫고 경악에 사로잡힌다. 결국 주인공은 말의 나라에서 인간에 대한 적대자로 몰려, 그 나라에서 추방된다. 말하자면 걸리버는 거의 광적으로 증오심에 집착했던 것이다. 물론 말의 나라에서는 주인공을 도와주려는 사람이 없는 게 아니다. 가령 페드로 드 멘데즈는 걸리버를 조건 없이 도와주려고 하는데, 주인공은 그에게 감사조차 표명하지 않는다. 어쩌면 걸리버는 말의 나라의 사람들과 페드로를 도와주어야 했다. 그러나 그는 그들을 저버리고 영국으로 되돌아온다.

 

13. 스위프트는 평생 귓병으로 인한 어지러움 그리고 담석증 속에서 괴로워했다. 그렇기에 그는 항상 흥분 상태에 처해 있었고, 기인처럼 행동하였다. 그의 묘비명에는 “격렬한 의분savage indignation”이 “가슴을 찢는다lacerate the breast”라는 구절이 새겨져 있다. (윤소영: 위기와 비판, 공감 이론 신서 15, 2017. 98쪽.) 스위프트는 알렉산더 포프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마치 변명처럼 다음과 같이 말했다. 즉 내면에 도사린 인간 혐오는 주인공 걸리버의 인간에 대한 병적 증오심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이었다.

 

근본적으로 나는 인간이라는 동물 자체를 증오하고 혐오합니다. 물론 내 주위의 한스, 피터 그리고 토머스 등의 개별 친구들을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말입니다. (...) 걸리버 여행기는 하나의 자료로서 다음의 사항을 학문적으로 증명해낼 수 있을 것입니다. 즉 ‘합리적 동물’이라는 표현은 잘못된 것이며, 여기서 중요한 것은 ‘(독자의 수용) 능력rationais capax일 것입니다. 인간 혐오의 거대한 바탕 하에서 나의 여행기는 축조되었지요. 물론 나의 문체는 신을 경배하는 식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말입니다.” 이 점을 고려한다면 걸리버 여행기는 작가의 인간 혐오주의에 대한 하나의 광범한 범례에 해당하는 작품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작가의 내면을 똥에 집착하는, 이른바 광기에 사로잡힌 인간, 걸리버의 병적인 판타지와 동일시해서는 아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