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나의 글

서로박: (2) 정치 어떻게 할 것인가?

필자 (匹子) 2023. 11. 14. 11:23

(앞에서 계속됩니다.)

 

6. 자신이 언제나 올바르고 위대하다는 착각: 프랑스의 철학자, 루이 알튀세르는 조폭들의 우두머리를 생각하며 다음과 같이 술회하였습니다. “히말라야의 설산에 사는 토끼가 가장 조심해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네 발을 꽁꽁 얼어붙게 하는 살을 에는 추위가 아니다. 그것은 자신이 코끼리보다 크다고 지레짐작하지 않는 일이다.” 높은 자리에 있다고 해서 자신의 능력이 탁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야말로 착각입니다. 인간의 권리와 직책의 권한을 혼동하지 말아야 합니다. 남한의 검찰 총장, 대학 총장, 학장, 교장, 각종 크고 작은 회사의 사장 그리고 간부들이 이 문구를 새겼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이에 대한 대안은 무엇일까요?

 

대안: 중요한 것은 평등의 실천을 위해서 사회 조직 내에서의 종속적 구도를 개선하는 일이다. 사람 위에 사람 없어야 하고, 사람 밑에 사람이 없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모든 기관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일자리가 법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 이로써 노동조합이 존재해도 그들의 활동이 공공연하게 이슈화되지 않는 사회가 실현되어야 한다. 말단 평사원과 사장이 평등 관계 속에서 대화하고 토론하는 분위기를 마련하는 일은 민주주의의 실천을 위해서 무엇보다도 시급하다. 그것은 노동의 정당한 대가를 받기 위한 노동조합의 운동에도 절실히 필요한 과업이 아닐 수 없다. 개개인의 존재가치가 자신에게 부여된 책무와는 별개 사항으로 수용되는 평등한 사회적 인간적 관계 수립이 무엇보다도 급선무일 것이다. 높은 자리를 차지했다고 해서 그가 아랫사람에게 폭력과 폭언을 행사하는 경우는 더 이상 출현하지 말아야 한다.

 

7. 부자유의 현실이 오히려 편안하다고 생각하는 착각: 자유는 폐쇄적 단체에서 빠져나오는 데에서 시작됩니다. “해방 (Exodus)”이란 말 그대로 밖으로 빠져나오는 일입니다. 인간은 기이하게도 갇힌 공간에서 의외로 편안함을 느낍니다. 왜냐면 자발적 복종이라는 심리적 예속 상태가 다만 일시적으로 편안함을 안겨주기 때문입니다. 플라톤은 동굴의 비유를 통해서 이러한 심리적 상태를 서술한 바 있습니다. 스톡홀름 신드롬을 생각해 보세요. 인질범에 의해 갇혀 있는 사람들은 바깥의 경찰보다도 인질범에 대해 더욱 동정적으로 바라봅니다. 몇몇 여성들이 남편에게 끊임없이 폭력을 당하는데도, 이혼을 선택하지 않는 경우는 고독과 홀로서기에 대한 불안감 때문입니다. 그러면 이에 대한 대안은 무엇일까요?

 

대안: 가정, 회사 등과 같은 조직 사회의 폐쇄적 구도가 개선되어야 한다. 물론 심리적 측면에서 사적 프라이버시가 존중받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비밀스러운 분위기는 특히 사회적 심리적인 측면에서 크고 작은 부작용을 낳는다. 모든 사안은 개방된 분위기 속에서 토론되고 논의되어야 최상의 방안이 합리적으로 도출될 수 있다. 가정에서의 삼각관계, 직장 내에서의 따돌림은 내부의 문제를 은폐하고 감추는 태도에서 비롯한 것이다. 이는 문제 해결에 전혀 도움을 주지 못하며, 사람들 사이의 갈등만을 부추긴다는 것을 간파해야 할 것이다. 직장 내의 남녀 차별, 직장 내의 괴롭힘, 성희롱 등이 끝없이 속출하는 이유는 그것이 예방될 수 있는 분위기가 처음부터 마련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종교, 나이, 성별, 인종계급, 정당, 국적 등의 차이로 인하여 더이상 차별당해서는 안 되다.

 

8. 크고 작은 복수와 응징이 자신에게 도움이 된다는 착각: 질투와 미움은 사랑의 왜곡된 형태에서 비롯합니다. 인간의 질투심은 그 뿌리를 찾기 힘들 정도로 심원하지요. 자기 자신보다 힘없고 약한 사람을 깔보고 괴롭히는 일은 어디서 기인할까요? 종로에서 뺨 맞은 자는 반드시 한강에서 눈을 흘기기 마련입니다. 마찬가지로 자신의 마음을 달래기 위해서 사람들은 일단 앙갚음과 크고 작은 응징을 떠올립니다. 그러나 자신의 마음을 치유하기 위해서 타인을 활용하거나 괴롭히는 것은 잘못이며 부정한 처사입니다. 학교 폭력은 사회적 폭력의 복사판이지요.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일차적으로 자기비판 그리고 자기반성의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그러면 이에 대한 대안은 무엇일까요?

 

대안: 어떤 경우라고 하더라도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의 허심탄회한 대화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인간 삶의 모든 갈등과 범행이 오로지 법정에서의 판결로써 해결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말 그대로 근시안적이다. 중요한 것은 중재자로서의 법과 법원이 궁극적으로 제삼자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자아는 인간관계 속에서 크고 작은 상처를 입지만, 끔찍한 죄가 아닐 경우 자신의 상처를 타인에게 전가하는 방식을 택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 필요로 하는 것은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는 성찰의 시간일 것이다. 우리는 자기 성찰과 반성을 통해서 작은 잘못의 경우에는 자신에게 해악을 끼친 타인을 용서하고, 자신을 돌이켜보는 기회를 얻어야 한다. 이러한 노력은 법원, 경찰, 검찰 등의 일감을 줄이고, 법적 기관의 기능을 대폭 축소하게 할 것이다.

 

9. 핵에너지가 유일한 대안이라는 착각: 체르노빌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부터 사람들은 어떠한 무엇도 배우지 못했습니다. 왜냐면 사람들은 원전 사고를 사전에 차단하고 면밀하게 예방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원자로에서 크고 작은 사고가 발생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원자로는 가동 후에 엄청나게 많은 핵 쓰레기를 양산합니다. 핵폐기물 속에는 상당량의 방사능이 섞여 있고, 이를 보관하는 데에만 수십만 년이 걸립니다. 재생가능에너지에 대한 개발과 활용은 필연적인 방향입니다. 그런데도 이러한 노력은 지지부진합니다. 그 이유는 사람들이 눈앞의 이득 때문에 풍력발전기의 설치에 대해 반대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이에 대한 대안은 무엇일까요?

 

대안: 과학 기술이 인간 삶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준다고 생각하는 것은 하나의 망상이다. 과학 기술은 그 자체 양날의 칼이다. 그것은 삶의 질을 향상하게 하는 수단이지만, 때로는 인간의 미래의 삶을 패망으로 치닫게 하는 무엇일 수 있다. 그렇기에 교육에 있어서 자연과학에 대한 기대감을 줄여나가고, 더 나은 삶을 위한 문제점과 해결책을 함께 고민해나가는 신중한 자세가 필요하다. 플루토늄의 매장량은 제한적이며, 핵폐기물에 관한 논쟁은 전-지구적으로 끝없이 속출하고 있다. 생태계를 파괴하고 인간에게 해악을 끼치는 핵에너지의 과학 기술을 서서히 종식하고, 후손들을 위해서 재생 가능 에너지의 개발을 추진해야 할 것이다. 이와 함께 탄소 중립을 위한 다각적 각도의 기술 개별과 정책을 모색해나가야 한다.

 

10.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일차적으로는 성찰의 과정을 거치고, 뒤이어 저항해야 합니다. 엄청난 죄악의 경우에 관해서는 비록 마음 아프지만 공명정대한 자세로 비판하고 고발하는 것을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스스로 자유인이 되기 위해서는 내부 고발자로 행동해야 할 것입니다. 비록 개인적으로 피해당하는 자의 마음은 쓰라리겠지만, 가정과 사회의 폐쇄적 전근대적 구도를 변화시키려면, 우리는 내부의 비리를 지적해야 합니다. 왜냐면 고인 물은 반드시 썩기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나 자신이 변화되어야 하고 모든 기관이 변모되어야 합니다. 특히 언론 기관의 뼈를 깎는 자기 성찰은 필요합니다. 열린 사회를 위해서는 합리적인 토론이 활성화되어야 하고, 거짓 없이 문제를 해결하며 해결할 수 있다는 개방된 자세 내지 정직함이 요청됩니다. 우리의 일은 올바른 사고를 확립하는 작업 그리고 토론과 대화를 통해서 그것을 확인해나가는 작업 그리고 사고를 지닌 자들이 공동으로 연대하는 작업 등으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한국 사회의 기관장들이 실천해나가야 하는 과업은 부패 그리고 거짓의 척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