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유토피아

서로박: 홀란트-쿤츠의 페미니즘 유토피아

필자 (匹子) 2023. 9. 11. 13:55

요아힘 페스트는 1991년에 『유토피아의 종말』을 발표하여, 현대에는 더 이상 유토피아가 필요하지 않다고 피력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여성들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바르바라 홀란트-쿤츠는 「다른 주체의 유토피아」그리고 『새로운 여성 운동의 유토피아』에서 페스트의 주장을 한 마디로 일축하였다. 왜냐하면 60년대 이후로 수많은 여성 작가들이 21세기 새로운 삶의 가능성으로서의 여성주의 유토피아를 설계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들의 유토피아의 설계는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그 이유는 수천 년 동안 이어져온 여성에 대한 성 정치적 편견이 뿌리를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프리드리히 실러가 자신의 시에서 묘사한 바 있듯이 세계 각국의 사람들은 “여성에게서 고뿔이 풀리면, 가장 끔찍한 광기가 날뛰게 된다.”고 여전히 굳게 믿고 있다. 어쨌든 여성 작가들은 20세기 후반부터 남녀평등을 위한 성적 관계를 새롭게 구성하려 했으며, 마치 자연과 같이 수직구조의 지배가 존재하지 않는 사회적 사랑의 삶을 묘사하였다.

 

홀란트-쿤츠가 추적한 페미니즘에 입각한 사회의 모델은 유토피아이며, 동시에 디스토피아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21세기의 사람들은 지구 전체를 서서히 위협해나가는 핵문제 그리고 생태계 파괴의 문제와 직면해 있기 때문이다. 그미는 한편으로는 미래에 도래할 자연재해 내지는 핵 문제의 파국을 예견하면서, 기존의 가부장주의의 사회 구도 내지는 국가 중심의 체제로는 더 이상 인류가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홀란트-쿤츠는 20세기 후반부에 여성 작가들이 설계한 유토피아 공동체의 특징을 여섯 가지의 사항으로 설명한다. 첫째로 모든 사람들은 민주주의의 토대 하에서 자신의 고유한 정치적 자기 결정권을 지녀야 한다. 인간은 위로부터의 강령, 다시 말해서 기존의 관습, 도덕 그리고 법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성, 인종, 나이 그리고 국적을 초월한 평등이 선결되어야 한다.

 

둘째로 정치권력은 지금까지 여러 가지 유형의 수직구도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러한 구도는 모조리 파기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권력은 지방자치에 의해서 급진적으로 분산되는 게 중요하다. 대통령, 국회 그리고 사법부의 권한은 점차적으로 축소되어야 한다. 셋째로 모든 정치 형태는 크고 작은 공동체, 다시 말해서 코뮌의 방식으로 분산되는 게 바람직하다. 코뮌은 정치, 경제, 사회 그리고 문화적 측면에서 독립되어야 하고, 국가 체제는 중앙행정의 임무만을 행하는 식으로 축소화되는 게 바람직하다.

 

넷째로 모든 공동체 내지 코뮌은 대가족의 방식으로 서로 소통하는 공동생활을 실현해야 한다. 대가족이라고 해서 전통적 가부장주의의 가족을 지칭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공동적 사회적 모계 중심의 단체를 지향한다. 그렇게 되면 일부일처제와 같은 핵가족 체제는 급진적으로 붕괴될 것이다. 이러한 공동체의 삶의 방식은 가사와 노동, 일과 유희 등을 서로 구분하지 않는다.

 

다섯째로 “여성의 해방은 자연을 착취하는 게 아니라 자연과의 공생 관계를 수립하는 데에서 완성된다.” 모든 사람들은 생태적으로 자신의 욕구를 제한하며 살아가야 한다. 그렇게 해야 지구상의 자원이 낭비되지 않을 것이며, 이산화탄소의 배출량을 줄일 수 있다. 새로운 사회 내의 인간은 자신이 꼭 필요로 하는 욕구만을 충족하며 살아야 한다. 모계 중심의 공동체 사람들은 비록 부족한 물질로 생활하더라도, 풍요로운 정서를 구가할 수 있다. 여섯째로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삶에 꼭 필요한 물품을 직접 생산해야 한다. 노동에 있어서 남자의 일감과 여자의 일감은 결코 구분되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남녀의 노동일감의 가부장주의의 일부일처제에서 파생된 것이기 때문이다.

 

상기한 여섯 가지 특성을 지닌 새로운 삶을 실현하기 위해서 홀란트-쿤츠는 바람직한 세계관으로서 세 가지 사고를 비판적으로 지적한다. 첫 번째로 비판받아야 할 사고는 미래에 대한 목적론적 사고이다. 목적론적 사고는 어떤 하나의 규범과 하나의 이념만을 진리로 인정하기 때문에 그 자체 위험하다. 두 번째로 비판 받아야 할 사고는 전체주의이다. 스탈린과 히틀러는 모든 것을 획일적으로 일반화하여 인간의 삶을 규정하려고 했는데, 이러한 처사는 실패로 돌아갔다. 세 번째로 비판받아야 할 사고는 결정주의이다. 결정주의는 인간의 모든 노력이 처음부터 제한되어 있다고 여기고, 인간의 모든 능동적 자발적 삶의 방식을 무시한다.

 

 

홀란트-쿤츠는 지배 없는 생태주의 여성 공동체를 실현하기 위한 방법론으로서 네 가지 사항을 강하게 내세운다. 1. 중앙집권적 지배구조의 타파, 2. 이윤만을 추구하는 자본주의 경제 구도의 파괴, 물물교환을 골자로 하는 시장 기능의 확립, 3. 가부장적 윤리와 성도덕의 파괴, 유연한 결혼제도의 채택 (혼인 없는 부부 관계의 용인), 4. 남존여비에 입각한, “팔루스 중심적인”, 전근대적인 구조의 타파.

 

이러한 방법론으로써 홀란트-쿤츠는 여성주의 유토피아가 정태적이고 우주적인 마지막 상태를 지향하는 게 아니라, 개방성을 추구한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전체주의적 목표, 다시 말해서 목적론을 추구하는 게 아니라, 과정 내지는 역동성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철학자 김상봉은 서양의 자기중심적 주체의 개념을 추적하면서, “홀로주체성”을 도출해내고 있다. 서양의 주체는 자아에서 타인으로, 서양에서 제 3세계로 향해 일방통행 식으로 고찰하고 판단하기 때문에 서양 사람들은 대체로 역지사지의 생활방식과는 무관하게 사고하고 행동한다. 주체의 이러한 특성은 비록 서양인에게서만 드러나는 게 아니라, 서양의 문명을 받아들인 우리에게도 해당될 수 있다.

 

문제는 우리가 어떻게 하면 홀로주체성에서 서로주체성으로 기능 변화를 이룩할 수 있는가? 하는 물음이다. 그런데 홀로주체성은 상대방에 대한 우월의식 내지는 교만으로 작용하지만, 가부장주의의 전형적인 특성이기도 하다. 따라서 서로주체성의 문제를 논의하고 발전시키려면, 우리는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논의를 계속하는 것도 하나의 방편이라고 생각된다.

 

참고 문헌

 

- 김상봉: 서로주체성의 이념, 길 2007.

- Holland-Cunz, Barbara: Utopien der neuen Frauenbewegung, Gesellschaftsentwürfe im Kontext feministischer Theorie und Praxis, Meitlingen 1988.

- Holland-Cunz, Barbara: Utopien der anderen Subjekte, Geschlechterverhältnis, Naturverhältnis und nicht teleologische Zeitlichkeit, in: Saage, Richard (hrsg.), Hat die politische Utopie eine Zukunft? Darmstadt 1992, S. 238 – 2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