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근대독문헌

서로박: (3) 레싱의 '현인 나탄'

필자 (匹子) 2023. 10. 24. 16:47

기사단원은 예루살렘의 기독교 종주를 찾아가서, 조언을 구합니다. 당시 기독교 종주는 부패한 관리였습니다. 그러나 기사단원은 이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기독교 종주는 나탄과 그다지 좋은 사이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나탄을 위험에 빠뜨리기 위해서 수사 한사람을 그에게 보냅니다. 수사는 18년 전에 나탄에게 레하를 떠맡긴 바로 그 장본인이었습니다. 18년 전에 나탄은 끔찍한 불행을 겪었습니다. 당시 기독교도들은 그의 일곱 아들과 아내를 살해했던 것입니다. 나탄은 순식간에 사랑하는 가족 모두를 잃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기독교 출신의 젖먹이 아이 한 명을 자신의 양녀로 받아들여, 애지중지 키웠습니다. 바로 여기서 우리는 놀라울 정도로 고매한 주인공의 인간성을 엿볼 수 있습니다. 수사의 언급을 통해서 나탄은 기사단원이 레하의 친오빠임을 확인하게 됩니다. 놀라운 것은 다음의 사실이었습니다. 기사단원과 레하의 아버지는 지금까지 죽었다고 알려지는, 살라딘의 친동생 아삼이었습니다. 이를 확인한 사람은 다름 아니라 시타와 살라딘이었습니다.

 

 

 

 

레하는 아버지 나탄에게 인사한다

 

 

그렇다면 살라딘의 아우, 아삼은 어떠한 인물일까요?: 그는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전쟁터를 옮겨 다녔는데, 이른바 적국의 여인에 해당하는 독일 여자와 결혼하여, 슬하에 자녀를 거느리게 됩니다. 그런데 아내가 죽자, 아삼은 다른 전쟁터에서 두 아이를 타인에게 맡겼습니다. 여기서 다른 전쟁터는 “가자”라는 지역이었습니다. 딸아이는 기독교 수사에게 위탁되는데, 그 아이가 바로 레하입니다. 그리고 아삼은 사내아이를 처가의 외삼촌에게 위탁합니다. 바로 이 아이가 나중에 기독교 기사단원으로 성장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결국 두 아이는 남매간으로서 살라딘의 조카로 판명됩니다. 추측컨대 아삼이라는 인물은 현명하고, 선진사상을 지닌 대인이었던 것 같습니다. 비록 적과 전쟁을 치르지만, 적의 처녀와 결혼하고,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되며, 나아가 유대인 나탄과 친구관계를 맺었습니다.

 

 

그렇다면 레싱은 어떠한 이유에서 상인계급에 속하는 유대인에게 현자와 같은 품격을 부여했을까요? 나탄은 장사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평범한 장사꾼이 아니라, 한 나라의 부실해진 재정을 단번에 회복시킬 수 있는 막강한 재력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는 인도와 중국을 넘나드는 부유 상인으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이를 고려할 때 나탄은 상인이라기보다는, 상업 자본가로 명명되는 게 타당할 것입니다. 나탄은 “신앙”보다는 “인간”을 우선시하였습니다. 당시의 정황을 고려할 때 이러한 휴머니즘 사상은 과히 혁명적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역사를 고찰할 때 상업 자본가의 자유주의는 혁명적 사고의 기반으로 작용하곤 합니다.

 

이에 비하면 사제 계급은 구질서를 보존하는 보수 이데올로기를 대변하곤 하지요. 18세기에 가장 진보적인 그룹은 바로 상업 자본가였습니다. 상업 자본가는 비록 구질서 속에서 태동했지만, 십자군 전쟁과 같은 사건으로 새롭게 성장한 그룹이기도 합니다. 전쟁으로 인한 수많은 인구와 물자의 이동은 나탄과 같은 상업 자본가를 배출시키기에 충분했습니다. (이를테면 프랑스 혁명이 혁명적 시토이앙에 의해서 진척되었다는 사실을 고찰해 보세요.) 나탄은 과거의 속박과 굴레를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그에게 필요로 한 것은 새로운 질서와 자유로운 사상이었습니다. 이로써 “종교보다 인간이 더 중요하다.” 라는 새로운 공식이 제기된 것입니다.

 

 

 

 

 

모제스 멘델스존 (1729 - 1786). 그는 레싱의 친구로서 유대인 철학자였는데, 계몽주의 운동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레싱은 그를 생각하며 현인 나탄을 창작하였다. 또한 그는 작곡가 펠릭스 멘델스존의 친할아버지였다.

 

 

반지 우화는 세 가지 종교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의 분쟁으로 나타나는 작품 내용에 적극적으로 기여하는 비유입니다. 자기 종교만이 진짜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하나의 반지가 진짜고 두 개는 가짜라는 이야기는 오늘날까지도 적용될 수 있는 교훈을 지니고 있습니다. 유대교와 기독교 그리고 이슬람교는 하나의 줄기에서 비롯한 게 분명합니다. 반지 우화의 위력의 비밀은 우화에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두 가지 사항을 지적하기로 하겠습니다. 첫째로 레싱은 유대인 상인 한 사람을 현인으로 묘사함으로써 당시에 팽배했던 반유대주의의 분위기를 일거에 거부하려고 시도했습니다. 실제로 작품 집필 당시에 그가 떠올린 사람은 그의 막역한 친구인 철학자 모제스 멘델스존이었습니다. 모제스 멘델스존은 공학을 전공한 자신의 막내아들을 나탄이라고 명명했습니다. 둘째로 레싱은 진정한 계몽주의가 자유주의의 사고에서 출발한다고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종교적 아집과 독선을 무너뜨리는 게 급선무라고 판단했습니다.

 

  한 가지 문헌학적 고증을 전하려고 합니다. 반지의 우화를 처음으로 소개한 사람은 원래 역사가, 얀스 데어 에니켈 (Jans der Enikel, ? - 1302)이었습니다. 그는 로마인들의 업적 Gesta Romanorum에서 세상사를 움직이는 세 가지 사항의 예로서 반지우화를 들었습니다. 지오반니 보카치오는 데카메론 Decamerone  1 3장에서 반지 우화를 모방했는데, 나중에 레싱이 다시 인용하게 되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한 가지 사항을 첨가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보카치오는 반지를 값비싸고 귀한 물건으로 이해한 반면에 레싱은 그것을 신의 은총으로 이해하였습니다. 다시 말해서 반지를 낀 사람은 자신의 죄를 떨치고 신으로부터 은총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레싱은 모든 가치가 하나의 값비싼 사물로 판단되는 게 아니라, 선에 바탕을 둔 진리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확신하였습니다. 진리란 레싱에 의하면 주어진 무엇이며, 그저 소유하면 되는 것으로 이해되는 게 아니라, 선한 마음을 통해서 이룩해나가야 하는 과정으로 파악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