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근대독문헌

서로박: 소피 폰 라 로쉬의 '슈테른하임 양의 이야기'

필자 (匹子) 2023. 10. 5. 18:54

친애하는 N, 오늘은 당신에게 소피 폰 라 로슈 (Sophie von La Roche, 1731 - 1807)의 “슈테른하임 양의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소설가가 되려는 꿈을 지닌 당신에게 소피의 소설은 많은 것을 시사하리라고 생각됩니다. 왜 하필이면 내가 이 작품을 선택하게 되었을까요? 그것은 1771년에 간행된 이 작품이 독일 최초로 여성 작가에 의해 쓰인 서간체 소설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이 작품이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다는 사실 역시 당신에게 중요할 것 같습니다. 당신도 소설가로서 성공하기를 꿈꾸고 있으니까요.

 

 

 

소피 폰 라로슈 Sophie von La Roche, 1731 - 1807

 

소피 폰 라 로슈는 가까운 벗이자 사촌인 크리스토프 M. 빌란트 (Chr. M. Wieland)와 약혼했으나, 파혼하고 1754년에 프랑크 폰 라 로슈와 결혼하였습니다. [그미는 독문학사에서 잘 알려진 낭만주의 시인 클레멘스 브렌타노 그리고 베티나 폰 아르님의 할머니입니다.] 소피 폰 라 로슈는 1766년부터 작품 집필에 들어갔습니다. 나중에 빌란트는 이 작품을 자신의 출판사를 통해서 간행하였습니다. 이 책에는 17개의 각주를 단 서문이 실려 있는데, 이는 빌란트에 의해 행해진 것입니다. 작품은 영국의 리차드슨 (S. Richardson)의 문학적 영향을 받은 것입니다. 라 로슈의 소설은 특히 그의 소설 “클라리사 할로웨” (1747/ 48)에게서 많은 것을 착안해내었는데, 불과 하룻밤 사이에 독일 전역에 널리 퍼지게 되었습니다.

 

친애하는 N, 소설의 주제가 당대의 독자들의 심금과 맞아떨어질 경우 작품은 대체로 성공을 거둡니다. 여기에는 동서양의 차이라든가 시대의 차이 등이 없지요. 라 로슈는 어느 친구의 일기를 바탕으로 소설을 집필했는데, 소설의 전반적인 정조는 당시에 횡행하던 교육적 경건주의의 요소를 물씬 풍기고 있습니다. 나아가 소설은 1인칭 소설에 속합니다. 1인칭 서간체 소설은 독자의 내면의 영혼을 건드리며, 그들의 심금을 건드리기에 가장 적당한 장르일 것입니다. 당신도 1인칭 서간체 소설을 한번 시도해 보세요.

 

 

 

소피 모로 (Sophie Mereau, 1770 - 1806) 는 라 로슈의 딸이며, 시인 클레멘스 브렌타노의 어머니였다. 

 

작품이 발표되었을 때 빌란트는 서문을 덧붙였습니다. 그는 여기에서 “영혼의 꾸밈없는 정직한 서술”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나아가 그는 노심초사한 마음에서 소설의 취약점을 미리 지적하였습니다. 즉 라 로슈의 소설은 형식 그리고 서술 유형 에 있어서 취약점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작품의 성공 이후에 자취를 감추었고, 나중에 질풍과 노도의 작가, J. M. R. 렌츠에 의해서 제기되었을 뿐입니다. 작가는 작품 곳곳에서 나타나는 사건 등을 교훈적으로 해명하고 있습니다. 이는 독자의 귀에 거슬립니다. 

 

친애하는 N,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당사자에게 결핍될 때 절실히 느껴지는 법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모든 공기와 물을 들이 마시고 살아가지만, 정작 공기와 물의 고마움을 모르지 않습니까?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랑 받고 있는 사람은 사랑의 귀함에 대해 절실하게 깨닫지 못합니다. 사랑하는 임이 떠난 뒤에 우리는 그제야 슬픔을 느끼고, 사랑의 귀함이 얼마나 우리에게 중요한가를 깨달을 수 있답니다. 주인공 소피 폰 슈테른하임도 그러했습니다. 그미는 귀족 출신으로 사회의 최고 상류층에 속하는 여성입니다. 그렇지만 경제적으로는 그렇게 부유하지 못했습니다. 어머니는 소피가 불과 9살 때 세상을 떠났고, 아버지 역시 그미가 19세가 되던 해에 병으로 유명을 달리합니다. 지금까지 아버지의 도움으로 귀한 신분으로 교육 받았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시게 되자, 소피 폰 슈테른하임은 의지할 곳 없는 고아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라 로슈의 손자 클레멘스 브렌타노 

 

이때 먼 친척인 뢰바우 백작 부인은 그미에게 도움의 손길을 던집니다. 뢰바우 백작 부인은 주인공으로 하여금 자신이 살고 있는 수도 D로 이주하여 함께 살자고 권합니다. 그렇지만 백작 부인은 결코 선한 여자가 아니었습니다. 조카뻘 되는 소피를 어느 제후의 첩으로 시집보내어 이로써 이득을 얻으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지금이야 결혼할 때 여성은 자신의 의지에 의해서 배우자를 선택하거나 거절할 수 있었지만, 당시에는 부모들이 주로 결혼을 성사시키곤 했습니다. 그래서 자식 된 도리로 부모가 점지해주는 결혼을 거부하기란 무척 어려웠습니다. 더욱이 백작 부인의 식객으로 살고 있는 주인공 소피로서는 백작 부인의 요구를 거절하기 힘들었습니다.

 

처음에 소피는 백작 부인의 요구를 거절합니다. 그렇지만 백작 부인은 궁정에 있는 많은 남자들을 자신의 집으로 초대합니다. 이때 소피는 궁정에 거주하는 세모어 경에게 마음이 이끌리게 됩니다. 그곳 지역을 다스리는 자는 제후, 데어비 경이었습니다. 데어비 경은 마치 카사노바와 같은 자였습니다. 수많은 여성을 “섭렵”하는 일이 그의 취미 생활이었습니다. 순수하고 아무 경험이 없는 소피를 차지하기 위해서 온갖 아양을 떠는 게 아니겠습니까? 데어비 경은 부하로 하여금 신부 (神父)로 변장시켜, 어느 성으로 보냅니다. 그 사이에 그는 주인공을 데리고 아무도 몰래 성으로 향하여 그곳에서 그녀와 결혼식을 올립니다. 소피 폰 슈테른하임은 데어비 경이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줄 곧이곧대로 믿고 결혼을 승낙합니다.

 

 

 

1773년 스위스 베른에서 간행된 소설. "슈테른하임 양의 이야기"의 표지

 

친애하는 N, 어째서 많은 여자들이 자신을 찬양하는 플레이보이에게 현혹되어 몸과 마음을 다 바치다가 나중에 헌신짝처럼 버림받는지 아시겠지요? 그것은 경험이 없기 때문입니다. 경험 없는 젊은 남녀들에게는 사람을 제대로 파악할 능력이 주어져 있지 않습니다. 문제는 남자들이 어떤 유혹에 빠질 경우 거기서 헤어나 정신을 차리는 반면에, 유혹 당한 여자들이 다시 자신을 되찾는 데는 오랜 시일이 걸립니다. 그 까닭은 남성 중심주의의 사회 풍토 때문입니다.

 

데어비 경은 몇 주간 소피 폰 슈테른하임을 데리고 놀다가 결국 그미를 차버립니다. 몇 주 동안의 밀월 행각 이후에 그는 그미와의 놀음에 싫증나 영국으로 건너가 버렸던 것입니다. 소피는 다시 버림받게 되었음을 자각하고 절망에 빠집니다. 그렇지만 그미는 다시 정신을 가다듬어서 홀로 살아갑니다. 비록 고지식할 정도로 도덕적 입장을 지니고, 형이상학에 대해 관심을 지닐 정도로 진지한 사람이었지만, 그래도 먹고 살아야 했습니다. 그리하여 소피는 “라이덴스 마담”이라는 가명으로 하인 학교에서 선생으로 일하게 됩니다.

 

어느 날 소피는 우연히 영국 여인 섬머스 부인을 알게 됩니다. 주인공은 섬머스 부인의 초대로 영국으로 여행합니다. 그리하여 소피는 영국의 영지 섬머힐에 머물게 되는데, 그곳의 성주 (城主)인 리치 경을 알게 됩니다. 리치 경은 가냘프지만 여전히 아름다움을 잃지 않은 매혹적인 독일 여성에게 순수한 사랑의 감정을 느낍니다. 소피는 리치 경을 분명히 정직하고 매혹적인 남자로 생각하지만, 그에게 함부로 마음을 열지 않습니다. 언젠가 사랑의 감정을 느꼈던 멋진 남자 세모어 경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과거의 쓰라린 고통이 소피로 하여금 현재 자연스러운 사랑의 삶을 누리지 못하게 방해했던 것입니다. 과거의 쓰라린 경험은 이렇듯 인간의 영혼을 꽁꽁 얼어붙게 만들곤 합니다. 이 와중에서 리치 경은 마치 화살 잃은 큐비드처럼 사랑의 고통으로 끙끙 앓고 있었습니다.

 

이때 고통스러운 일이 벌어집니다. 어느 날 데어비 경은 소피 폰 슈테른하임이 섬머힐에 체류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합니다. 영국으로 건너온 그는 그 사이에 섬머스 부인의 질녀와 결혼하였습니다. 이때 데어비 경은 몹시 전전긍긍합니다. 만약 자신의 음탕한 과거 행적이 백일하에 밝혀지면, 그는 세인으로부터 커다란 비난을 당해야 할지 모릅니다. 데어비 경은 아무도 몰래 자신의 부하들을 섬머힐로 보냅니다. 그리하여 그의 부하들은 소피 폰 슈테른하임을 납치하여 스코틀랜드의 납 광산으로 데리고 가서, 어느 골방에 가두어버립니다. 영문도 모르게 끌려온 소피 폰 슈테른하임은 그곳에서 데어비 경과 일대일로 마주칩니다. 비록 몇 주 동안 살을 섞은 남자이지만, 데어비 경은 더 이상 자신이 사랑하는 임이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밝힙니다. 데어비 경은 다시 그미를 유혹하려고 하지만, 이번에는 소피의 완강한 거부로 인하여 뜻을 성사시키지 못합니다.

 

 

 

소피 라 로슈의 손녀 베티나 브렌타노 (1785 - 1859) (베티나 아르님) 그미는 일곱 명의 아이를 다 키운 다음 1843년에 비로소 문학에 전념할 수 있었다.

 

데어비 경은 다시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고, 소피는 거의 1년 동안 납 광산에 갇혀 지냅니다. 어떻게 사람을 그렇게 함부로 가두어놓을 수 있을까요? 소피는 깊은 절망의 수렁에 빠지지만, 그래도 목숨을 연명하며 살아갑니다. 친애하는 N, 사필귀정 (事必帰正)이라고 누가 말했나요? 죄인은 당대에 그리고 후세에 반드시 벌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종교를 거론하지 않더라도 그러하지요. 선을 베푼 사람은 나중에 그냥 죽더라도 그의 자식들이 선에 대한 보답을 받지 않는가요? 데어비 경은 우연인지 아니면, 신의 보복인지는 몰라도 불치의 병에 걸립니다. 죽기 전에 그는 리치 경과 세모어 경에게 자신이 저지른 죄를 실토합니다. 그미를 차지하고 싶은 열정이 그미를 구속했다는 것입니다.

 

두 사람은 황급히 소피가 갇혀 있는 광산으로 향합니다. 그러나 소피는 그곳에 갇혀 있지 않았습니다. 어느 충직한 하인들이 그미를 구출하여 간호하고 있었습니다. 소피 역시 두 남자와 재회합니다. 리치 경과 세모어 경은 절친한 친구 사이였습니다. 우정 때문에 그리고 소피의 행복을 위하여 두 남자는 사랑을 서로 양보합니다. 친애하는 N, 이 대목에서 우리는 어떤 말못할 감동을 느낄 수 있습니다.

 

사랑이란 사랑하는 임의 행복을 비는 자세입니다. 그것은 사랑하는 임을 차지하겠다는 소유욕과는 다른 감정이 아닙니까? 진정으로 훌륭한 두 남자와 한 여성 사이의 사랑은 횔덜린의 “휘페리온”에서 주인공과 알라반더 사이의 진정한 우정으로 나타났고, 디킨스의 소설 “두 도시의 이야기”에서 샤를르와 시드니 사이의 인간관계로 묘사된 바 있습니다. 주어진 환경은 다르지만 영화 “글루미 선데이 (Gloomy sunday)”에서 묘사된 바 있지요. 각설, 소피는 세모어 경을 택하여 결혼하여 행복하게 살아갑니다.

 

친애하는 N, 소설의 내용이 재미있었는지요? 소설은 18세기에 부상한, 도덕을 중시하는 시민 계층 그리고 저열하고 음탕한 귀족 계급 사이의 대비를 다루고 있습니다. 전자가 도덕, 건강한 가정, 교양, 자연에 대한 순수한 감정, 섬세한 감정 등을 지니고 있다면, 후자에게는 부패, 기회주의가 득실거리고 있습니다. 소피 폰 라 로슈는 작품 속에 사회 계층의 갈등 문제를 집요하게 추적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작품은 시민 계층의 건강한 인간형을 훌륭하게 형상화시키고 있습니다. 작품은 시민과 귀족의 대비 외에도, 시골과 도시, 자연과 사회, 여성과 남성 등을 대비시키고 있습니다.

 

물론 작가는 여성 삶의 이상으로서 행복한 결혼에 의한 현모양처를 지적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작가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자연은 남자로 하여금 격정적으로 사랑의 열정을 느끼고, 여자로 하여금 부드럽게 느끼도록 만들었다. 그래서 모욕을 당할 때 남자는 노여움을 드러내고, 여자는 감동적 눈물로 무장하게 된다. 그래서 남자는 가정을 꾸려갈 수 있는 재화를 마련해야 하며, 여자는 이를 민첩하게 분배하게 된다.” 친애하는 N, 전근대적 발상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렇지만 현대 소설이 아니지 않습니까? 작품이 발표된 1771년에 우리의 선조들은 이조시대에 어떻게 살았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