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세계 문화

서로박: (2) 레비스트로스의 '야생의 사고'

필자 (匹子) 2023. 10. 7. 11:15

(앞에서 계속됩니다.)

 

7. 일차적으로 아무런 선입견 없이 문화 속으로 잠입하는 일이 중요하다. 레비스트로스는 민속학 연구에서 일단 선입견을 배제하고 아마존 상류 지방의 인디언 토착문화에 가까이 다가갑니다. 이를 위해서는 인디언의 언어를 습득하는 일 그리고 주어진 민속학적 대상에 자신의 고유한 구조주의적 방식을 적용할 수 있는 방법론이 필요합니다. 레비스트로스는 일단 부수적인 합리성을 떨치고, (민속학자들이 밝혀내려는) 경험적으로 주어진 사항의 심층부로, 바꾸어 말하자면 인디언 문화의 배후로 향해 깊이 파고들려고 시도합니다. 오로지 이러한 노력을 통해 민속학자는 엄밀한 학문적 방식을 활용할 수 있으며, 다양한 문화 현실에 대한 해석의 원칙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나아가 그는 자신의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인디언들의 전통적 문화를 서구의 관습, 도덕 그리고 법과 비교할 수 있다고 합니다.

 

8. 아메리카 토착민들의 카스트 제도는 자연법칙에 근거한 것이다. 만약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토템의 세계관 속에서 오로지 원시적인 언어만을 강조하여 이를 집중적으로 고찰하면, 그자는 안타깝게도 한 가지 중요한 사항을 간과하게 됩니다. 즉 토템의 시스템은 자연적으로 주어진 동물들 (이를테면 늑대 무리, 양 떼 등)의 다양성에 근거하여 계층적 수직 구도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원주민들의 위계질서라든가 계급 제도 역시 동물의 세계와 마찬가지로 직업의 특수성이라는 문화적 조건의 틀에 의해서 변형되어 나타난 것입니다. 이를 예리하게 투시하지 못하면, 민속학자는 자신이 속해 있는 사회를 민속학의 관점에서 역으로 분석하거나 비판할 수 없게 됩니다. 지금까지의 민속학은 일방적으로 낯선 문화를 탐색하고 분석하는 일이었다면, 열대의 낯선 지역에 관한 새로운 민속학적 문화 연구는 레비스트로스에 의하면 우리 자신의 고유한 문화의 특징과 장단점을 명징하게 인지하게 해준다고 합니다.

 

9. 야생의 사고는 역사의 변증법적 발전을 도모하는 인간 이성은 야생의 사고와는 차원이 다르다.. 장 폴 사르트르는 자신의 책 『변증법적 이성의 비판Critique de la raison dialectique』 (1960)에서 인류의 역사를 전체적 일반성을 추구하는 과정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이 점을 염두에 두면 야생의 사고 역시 나름대로 전체적 일반성이라는 특징을 지니지만, 우리를 혼란스러울 정도로 당황하게 합니다. 왜냐면 야생의 사고는 인류 이성의 역사에 관한 어떠한 것도 알려고 하지 않으며, 인간 이성의 서구 역사를 그저 마치 “내용 없는 형식”처럼 여기기 때문입니다. 사르트르는 역사적 주체의 전체적인 연속성을 “모든 지적 영역의 근원”으로 파악하는데, 이러한 견해는 레비스트로스에 의하면 하나의 환상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인간은 사르트르에 의하면 지금까지 주어진 대상을 구명하고 분석하기 위해서 의무적으로 하나의 부호를 사용해 왔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부호의 활용은 오로지 서구 사회에만 적용될 뿐이며, 열대 지역의 다른 역사에 해당하는 사항이 아니라고 합니다. 만약 우리가 정리된 자료로 드러나는 부호들을 바라볼 때 부호의 사용자가 어떠한 의향을 품고 있는지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면, 지금까지 통상적으로 밝혀진 역사와는 정반대되는 특징이 백일하에 드러날 수밖에 없습니다.

 

10. 아메리카 토착민의 문화 역시 역사와 철학의 영역에서 결코 배제될 수 없는 소중한 자산이다. 레비스트로스는 사르트르의 견해를 아메리카 원주민의 문회에 일방적으로 적용할 수는 없다고 강하게 주장합니다. 야생의 본질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변증법적 이성에 대한 신뢰를 일차적으로 배제해야 합니다. “세계 역사의 토대는 북반구 온대 지방 내지는 지중해에서 발견하게 된다.”라는 헤겔의 서구 중심적 역사관 또한 수정되어야 합니다. 더 넓은 현실적 조건을 인정하고 이를 받아들여야만 우리는 아메리카 북미 그리고 중남미 지역에서 이어져 내려온 인디언 문화의 기본적 속성 그리고 그들의 토템 신앙을 부분적이나마 파악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인간은 얼마든지 서구와는 다른 지역에서 자신을 발전시킬 수 있으며, 시간적으로 독자적 문화의 가치를 끌어올릴 수 있습니다. 레비스트로스는 인간의 모든 행위가 이미 상징으로 드러난 세계 속에서 얼마든지 발전될 수 있음을 명확히 지적했습니다. 이를테면 신화와 같은 상징적 시스템은 -언어학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고유한 특징의 구조를 보여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구조 역시 주어진 사회적 조건 속에서 필연적으로 바뀌고 변형되지만 말입니다.

 

11. 『야생의 사고』가 지니는 다섯 가지 중요한 가치 (1): 깊이 고찰하면 『야생의 사고』는 다섯 가지 측면에서 귀중한 문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첫째로 인디언 문화는 세계 역사의 일부입니다. 지금까지 모든 문화사는 서구 중심으로 이해되었습니다. 제삼세계는 변방 내지는 역사와 문화의 틀 속에서 제외되는 영역으로 취급되었습니다. 서구의 학문적 가치는 연구되고 글을 통해서 체계적으로 분석되었기 때문에 중요하게 생각될 뿐입니다. 레비스트로스의 『야생의 사고』는 우리가 차제에 열대 지역 그리고 제삼세계 지역의 문화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가지도록 자극합니다.

 

둘째로 『야생의 사고』는 민속학 연구자에게 학제적 연구의 중요성을 알려줍니다. 민속학자와 인류학자는 식물학, 동물학, 지질학 그리고 기상학에서 해박한 지식을 갖추어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만 그는 신화 그리고 의례에 등장하는 식물, 동물, 광물 그리고 천체 현상을 근본적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셋째로 레비스트로스의 문헌은 우리에게 제삼세계의 문화의 중요성을 알려주면서, 동시에 서구 문화의 결함을 간접적으로 지적하게 합니다. 이를테면 우리는 서구 사회에서 네 가지 부정적 특징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1. 일부일처제에 근거한 가부장제도, 2. 성의 철저한 구분 그리고 여성 억압, 3. 수직 구도의 계층 구분과 황금만능주의, 4. 식민지에서의 경제적 착취. 이와 관련하여 레비스트로스의 문헌은 문명이 가치 있고, 야생이 저열하다는 상투적 사고에 이의를 제기합니다. 문명과 야생은 상호 보완적이며, 제각기 장단점을 지니고 있다고 합니다.

 

12. 『야생의 사고』가 지니는 다섯 가지 중요한 가치 (2): 넷째로 레비스트로스의 문헌은 한반도 그리고 한국인의 위상을 정확히 고찰하게 합니다. 한국 사회는 엄밀히 말하면 서구인이 이해하는 동양도 아니고, 서양도 아닙니다. 팔레스티나 출신의 에드워드 사이드는 『오리엔탈리즘』에서 서구가 동방을 바라보는 시각을 심도 있게 분석하였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동방”이란 팔레스티나 지역이지, 인도도 아니고 극동아시아지역은 더더욱 아닙니다. 그렇기에 오리엔탈리즘 속에는 자포니즘도 없고, 코레아니즘도 없습니다. 페르디낭 브로델, 에릭 홉스봄 그리고 이매뉴얼 월러스틴이 오리엔트를 논할 때, 그들은 근동 지역의 이슬람 문화권만을 고려했지, 극동아시아지역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야생의 사고』는 브로델, 홉스봄 그리고 월러스틴이 제각기 세계 경제와 문화를 논할 때 극동아시아를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암시하게 해줍니다. 세 명의 학자는 극동 아시아의 문화를 알지 못하는 관계로 극동 문화의 중요한 특징을 찾아내지 못합니다.

 

다섯째로 야생의 사고 속에는 생명 사상이 깃들어 있습니다. 레비스트로스는 식물, 동물, 광물에 대한 원주민의 탁월한 해석과 인식을 책 전체를 통틀어 강조하고 있습니다. “치통이 생기면 딱따구리 주둥이와 입을 맞추고, 고열이 생기면 바짝 말린 딱따구리 가루를 코로 들이마시는 원주민에게 자연은 버릴 것이 하나도 없다.“ (34쪽 이하). 인디언들은 기후 위기의 시대 이전부터 생명을 사랑하고, 물질을 귀히 여깁니다. 우리는 여기서 인류세의 시대에 필요한 여러 가지 덕목을 새롭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끝.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