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세계 문화

서로박: 연금술에 관하여

필자 (匹子) 2023. 11. 11. 16:26

1. 세계를 황금으로 변화시키려는 시도: 헤시오도스는 태초를 황금의 시대라고 명명했다. 찬란한 황금의 시대에는 범죄도 가난도 존재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강제노동과 폭정 없이 편안하고 행복하게 살았다. 그러나 세계는 헤시오도스에 의하면 나중에 은의 시대 그리고 철의 시대로 변했다고 한다. 불의와 강탈, 살인과 폭정이 자리한 것은 인류가 황금의 시대를 상실했기 때문이다. 연금술은 단순히 금을 발견하려는 자연과학의 기술이 아니라, 세계를 찬란한 신앙의 황금으로 변화시키려는 욕망과 직결되는 것이다. 중세의 그림을 보면 노란 색이 많이 사용되고 있다. 이는 순수한 기독교적 확금을 상징하는 것이다.

 

2. 연금술사의 자세: 수련생은 밖에서 무언가를 시작하기 전에 자신의 몸을 먼저 정갈하게 가다듬어야 한다. 설령 금을 만들려는 충동이 그렇게 냉정하고도 상업적 이들을 위한 것이라 하더라도, 연금술사는 아주 경건한 마음을 취해야 한다. 연금술은 때때로 단식, 금욕 등과 같은 실천하기 힘든 지침을 요구해 왔다. 이로써 아주 경건하고 침착한 가정의 자제들만이 연금술을 배울 수 있었다. 황금에 대한 순수한 “상상력”은 금을 만들어내는 작업의 전제 조건으로 작용하였다. 그렇지만 금을 찾아내려는 작업은 지금까지 전해 내려오는 이상적인 문헌의 규정에 의하면 거의 한결같이 향과 몰약 (没薬), 다시 말해 주님의 탄생과 관련되어 있었다. 이와 같은 사항은 신을 모독하는 처사도 아니요, 그렇다고 통상적 의미에서 마치 황금, 즉 돈을 벌어들이기 위한 행위도 아니었다.

 

3. 현자의 돌: 연금술사들은 무엇보다도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노력하며 힘들게 살아갔다. 또한 그들은 시간에 쫓기며 살았기 때문에 땅의 영혼이 사는 동굴로부터 되돌아오자마자 저녁 식사하거나, 혹은 이를 생략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어쨌든 사람들은 금을 소환해내어야 했다. 이렇듯 심리적, 종교적 그리고 자연의 카테고리는 말하자면 파라켈수스 (Paracelsus)와 야콥 뵈메 (J. Böhme)의 동시대적인 우주론 속에서도 그러하듯이, 역시 연금술 속에서도 빈번하게 동화되었던 것이다.

 

사람들은 처음에는 자석의 형질을 지닌 돌을 현자의 돌이라고 생각했다. 물체를 끌어당기는 자석은 그들에게 참으로 신기한 마력과 같았던 것이다. 물체 속에 도사린 힘은 분명히 어떤 에너지를 지니고 있어서, 다른 물체를 끌어당길 뿐 아니라, 변화시키게 하는 마력을 지닌다는 것이었다. 나중에 사람들은 현자의 돌 속에 어떤 실체가 도사리고 있는데, 이것은 불순한 물질을 금과 은으로 변하게 하는 무엇이라고 한다.

 

4. 금을 만들어내는 꿈: 금을 만들어낼 수 있으리라는 꿈은 아마도 금빛 찬란한 금속의 합금이 처음으로 성공한 청동기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또한 이러한 꿈은 기원 후 약 700년 이래로 전 문화권에 널리 전파되었다. 아라비아와 유럽 사람들만이 연금술을 개발한 게 아니라, 인도인, 중국인, 심지어는 타이 사람들도 이를 시험하였다. 연금술사들은 어디서나 유사한 방법을 사용했다. 기존하는 모든 물체들은 실험의 대상이 되었다. 물체가 흐릿하고, 분해되거나 알칼리로 여과되면, 그럴수록 그것은 더 나았다. 빗물, 오줌, 똥 등은 많은 것을 기약해 주는 물질이었다. (이러한 수동적인 원초적 재료를 제외한다면) 금속 자체는 연금술사들의 추측에 의하면 세 가지 기본적 구성 성분 속에서 혼합되어 있다고 했다. 즉 수은 (Mercur), 유황 (Pulsur), 소금 (Sal) 등이 그 기본적 구성 성분이다.

 

5. 수은, 유황, 소금: 당시 연금술사들은 가장 본질적인 금속의 구성 성분으로서 수은 (Mercur)의 정수를 들었다. 첫째로 수은의 정수는 물과 흙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팽창성과 용해성을 가능하게 해준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수동적인 특성 때문에 수은은 무엇보다도 여성적 잠재력으로서 우선적 소재에 가장 가까운 것으로 이해되었다. 둘째로 유황 (Pulsur)의 정수는 공기와 불로서 이루어져 있는데, 남성적이고도 능동적인 물체로 이해되었다. 그것은 금속의 색을 변화시킬 뿐 아니라, 여러 가지 금속들의 가연성 내지는 변화 가능성을 테스트하는 데 도움을 준다. 셋째로 소금 (Sal)의 정수는 무엇보다도 기화 가능성을 테스트하는 데 도움을 주고, 금속의 강도 그리고 파괴성을 측정하게 해준다. “소금”은 아주 오래 전에, 심지어는 신약 성서에 가볍게 언급된 바 있는 최고의 가치 (“지상의 소금”) 때문에 때로는 현자의 돌에 근친한 것으로 인정받기도 했다.

 

6. 소재의 엔텔레케이아: 마치 고유한 특성을 지니지 않는 “우선적 소재”처럼 “황금의 배아”에 관한 사고 역시 아리스토텔레스로 거슬러 올라간다. 사람들은 금의 배아를 모든 자연적 소재 그리고 종 (種) 등의 엔텔레케이아를 훨씬 앞지르는 것으로 이해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운동을 유일하게 “하나의 완성되지 않은 엔텔레케이아”라고 명명하였다. 그렇지만 아리스토텔레스의 경우 물질 속에는 “모든 사물의 제각기 가까이 위치한 높은 단계로서의 형식”으로 변모할 가능성이 도사리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모든 물질은 마치 알이 어떤 부화되지 않은 새를 미리 상정해 주듯이, 하나의 잠재성을 고려할 때 금으로 화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당시의 사람들은 황금의 엔텔레케이아를 말하자면 “붉은 사자”, “붉은 정기 (丁幾)”, “위대한 연금 약”, “거대한 지도적 존재” 등에 의해 촉진시키고 해방시켜야 한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이러한 것들은 모두 한결같이 현자의 돌을 의미한다.

 

7. 수은과 현자의 돌: “우선적 소재 (materia prima)”인 메르쿠리우스 (수은)가 처녀 마리아와 비유되듯이, 현자들의 돌은 그녀의 아들로 비유된다. 이때 누군가 “축복 받은 돌을 받아들이는 어떤 기회”를 맞이했다고 한다. 로버트 플러드 (R. Fludd)는 이 돌을 “내면적 사원 (寺院)의 초석”으로 명명했는데, “이로써 태양의 모든 작업이 행해진다”고 한다. 독일의 철학자, 야콥 뵈메 (J. Böhme)는 이러한 사원을 “어떤 찬란한 나라의 뿌리”라고 찬양하고 있다. 그러니까 이러한 나라에는 “오로지 인간의 아들 외에는 어떠한 다른 요소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야콥 뵈메야 말로 신지학과 “신의 계보학”의 기본적 노선을 연금술의 실험 내지는 조작과 일치시켜 밝혀낸 신학자나 다름이 없다. 그러니까 마치 신이 같은 혹은 유사한 방법으로 비조직적 자연 속에서 창조적 생명을 만들어내듯이, 인간 역시 연금술의 과정을 통하여 새로운 창조물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한다.

 

8. 황금과 천국: 마르실리오 피치노는 그노시스 학파의 신비적 직관이 어느 정도 담겨 있는 󰡔플라톤 신학 (Theologica Platonica)󰡕에서 지금까지 연금술에 관해 다음과 같이 아주 솔직하게 모든 것을 밝히고 있다. “성녀는 메르쿠리우스 (수은)이며, 바로 여기서 신의 아들이 태어나셨다. 그것은 바로 현자의 돌이다. 지상에서 만져지고 건드려진 육체는 (바로 이러한 돌이 전해주는) 피를 통해서 조금도 다치지 않고 황금의 천국으로 되돌아가게 된다.” 우리는 이러한 유형의 텍스트들을 많은 문헌에서 접할 수 있다. 그러니까 상기한 텍스트는 단어 및 바로크 풍의 장식 등에 의해 연금술을 행하는 수많은 장미 십자단원의 책에 반복되고 있다.

 

또한 철학적 금에 해당하는 현자들의 돌은 황금과 천국을 하나로 묶어놓고 있다. 신화적 변신이라는 원형은 무엇보다도 연금술의 풍요로운 알레고리 속에서 가장 강력하게 보존되고 계승되었다. 실제로 올림포스 신들은 18세기 무렵에는 제각기 특정 금속을 표시하는 주체로 사용되었다. 이때 신들은 여러 가지 금속의 영혼 속에 그들의 생명을 불어넣어 주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페르시아와 유태주의에서 나타난 메시아에 대한 신앙 역시 그러한 기이한 금속학 내지는 야금학 속에서 더러는 세속화되어 생명력을 이어 나갔던 것이다.

 

9. 연금술은 찬란한 세상을 만들려는 갈망을 담고 있다. 연금술은 순수하지 못한 금속을 다스리는 그리스도의 비유 이상의 커다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솔로몬의 격언에서 나타나는 순수한 자 내지 “순결 파” 신자는 중세 아랍 사람들 그리고 중세 기독교도들의 연금술에서 나타나지 않으며, 나중에 마치 정수 (精髄) 내부의 새롭고도 이상적인 나라와 같은 무엇처럼 다시금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순수한 자는 파라켈수스의 경우 어떤 “기술자 엘리야 (Elias Artista)”로 이해되고 있다. 전체적으로 볼 때 연금술의 작업은 성스러운 영혼이 강림하는 “거대한 오월”의 실험이요, 바로 그렇기에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는 행위가 된다. 파라켈수스는 그렇게 메시아주의 그리고 화학과 천년왕국설에 입각하여 자연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자연은 “(최후의) 그 날을 위해 아무 것도 선사하지 않는다. 어떠한 것도 자연이 머무는 곳에 완성되어 있지 않으니까 말이다. 오로지 인간만이 그것을 완성시켜야 한다. 이러한 완성은 바로 알크미아 (연금술)라고 불리운다.”

 

10. 연금술은 실제로 금을 생산해내지 못했다. 금이 “Au” 라는 고유한 화학 성분으로서 다른 성분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거의 사상가 연금술사들은 이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럼에도 연금술은 나름대로 현대 화학의 선구적 역할을 충분히 행했다. 사람들은 연금술을 통하여 금 대신에 인 (燐, Phosphor)를 발견해내었으며, 도자기 생산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1707년 요한 프리드리히 뵈트거 (Böttger)는 친구와 실험을 거듭하다가 중국 도자기와 흡사한 유럽의 도자기를 제조하였다. 지금도 드레스덴에 가면 도자기들이 많이 있는데, 이는 뵈트거의 연금술의 실험으로 비롯된 것이다. 1669년에 헤니히 브란트라는 약사는 자신의 오줌을 플라스크에 부어서 끓이다가 인을 발견하였다고 한다. 다 타버린 플라스크에는 燐 (Phosphor)이 어둠 속에서 빛을 발하고 있었던 것이다.^^

 

11. 연금술의 영향: 흔히 사람들은 “꿩 대신 닭”이라는 속담을 말하곤 한다. 어느 청년은 너무나 사랑하는 임을 찾아 사랑을 고백했지만, 실패하고, 임의 여자 친구를 알게 되어 그미를 아내로 맞이하였다. 사랑은 성취되지 않고, 사랑하는 노력은 자그마한 노력의 일부를 달성하게 된 것이다. 독일의 작가 쿠르트 투콜스키 Kurt Tucholsky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람은 크고 날씬한 분을 원하지만, 실제로 얻게 되는 것은 작고 뚱뚱한 분이라고, 그게 삶이라고 C’est la Vie.”

 

그래, 우리는 실제 삶에서 수많은 경험을 쌓게 된다. 잘 나가다가 삼천포로 빠진다고, 우리의 갈망은 완전히 성취되지 않고, 작은 결실을 안겨준다. 인도를 발견하려던 콜럼버스는 인도를 찾는 대신 신대륙을 발견하게 되었다. 수많은 여인을 사랑하는 괴테는 사랑에 실패하는 대신에, 명작을 남기게 되었다. 마르크스는 무산계급의 참담한 삶을 극복하기 위하여 사회주의를 주창하였는데, 이제 사회주의의 이상은 오늘날 사회보장 제도라는 작은 수확을 남기게 되었다. 그게 삶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무언가를 갈망하는 일을 포기해야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