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사회심리론

서로박: 이리가레의 '다른 성의 거울'

필자 (匹子) 2023. 9. 3. 11:09

뤼스 이리가레 (Luce Irigaray, 1930 - )는 브뤼셀 출신의 프랑스 페미니스트입니다. 그미는 60년대 초 파리로 가서 심리학 그리고 정신 병리학을 공부하였으며, 벨기에와 프랑스를 오가면서, 학문적 수업을 쌓아나간 학자입니다. 이리가레의 책 『다른 성의 거울 (Speculum de l’autre femme)』는 1974년 파리에서 처음 발표되었습니다. 여기서 그미는 페미니즘 이론을 정립하기 위하여 남성 중심의 서양 철학사를 대폭 수정하려고 하였습니다. 제목에 해당하는 다른 성의 거울은 여성성을 가리킵니다. 여성성은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여성성은 남성성을 그냥 비추어주는 거울처럼 취급되어 왔다는 것입니다.

 

이리가레는 지금까지의 철학의 역사를 한마디로 가부장적 역사로 규정합니다. 그미의 견해에 의하면 프로이트의 성 이론에서도 이미 가부장적인 입장이 엿보인다고 합니다. 프로이트는 학문적 논의 과정에서 성의 중립성을 취하고 있는데, 이는 거짓이라고 합니다. 프로이트의 성적 중립성은 궁극적으로 남성의 주관성 내지 남성의 성을 절대화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로써 프로이트 이후의 학자들은 이리가라이에 의하면 지금까지 여성성을 배제하고 착취해 왔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이리가레는 헤겔과 마르크스 외에도 방법론적으로 정신분석학을 도입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무의식이라는 이론적 논거 자체가 이미 정신분석학이 관여하는 시스템에 대한 비판을 가능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가령 정신분석학자 라캉 (Lacan)의 후기 구조주의적인 이론서들은 그미의 핵심적 논거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이리가레는 남성들의 학문적 논의에서 파괴된 부분, 모순점 그리고 맹점 등을 찾으면서, 다음과 같이 주장합니다. “여성은 (프로이트,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플로티노스, 데카르트, 칸트, 헤겔 그리고 현대의 해체적인 텍스트 저자들과 같은) 남성들의 철학적 정신분석학적 논의에서 한 번도 본연의 자리를 차지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비록 뒤늦은 감이 있지만, 여성의 삶의 토대는 새롭게 재구성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이리가레의 관심사는 상기한 텍스트 속에 기초하고 있는 “현실의 의미를 구조적으로 재구성하는 작업”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가령 인간은 유아기에 성적 반응, 현실 감각을 익히며, 출생과 죽음을 서서히 체득해 나간다고 합니다. 이러한 체험은 상상적인 것의 무의식적 공간을 마련해줍니다. 이는 남녀 모두에게 하나의 무의식적 잠재 근원으로 작용합니다.

 

문제는 인간이 이러한 체험을 주어진 사회 속에서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를 부모를 통해서 배운다는 사실입니다. 부모가 가르치는 것은 개인적 체험을 사회적으로 순응시키는 방식입니다. 부모는 은연중에 자식들에게 남성이데올로기를 가르칩니다. 이로 인해서 사람들은 남녀 가리지 않고 인간의 잠재적 근원을 가리키는 무의식적 공간을 부정하게 됩니다. 남성적 주체는 나르시시즘의 토론을 통해서 인간의 잠재적 근원을 무시해 왔습니다. 그리하여 남성적 주체는 고착된 이념을 공고히 하는 창조자 내지 지배자로 군림해 왔다는 것입니다. 

 

종래의 모든 토론은 가부장적 권위에 바탕을 두고 있었습니다. 토론하는 자들은 주체의 기본적인 중점을 “모친 - 질료” 속에 차단시키고 이를 무시해 왔다는 것입니다. 남성적 주체는 자신이 유일자에서 비롯된 것임을 강조하고 [가령 “씨앗의 로고스 (λόγος σπέρμαικος)”라는 단어를 생각해 보세요.] 자기 자신의 아성을 굳건해 쌓았던 것입니다. 이는 자연 뿐 아니라, 여성에게도 해당됩니다. 자연과 여성은 삶을 보호하는 어떤 에너지 자원 내지 남성적 주체에 대한 어떤 부정적 거울로 이해되었던 것입니다.

 

이리가레는 수사학과 비유법 등의 분석을 통해서 여성성의 고유한 영역인 “상상적인 것”의 작용을 설명합니다. 그미가 시도하는 해명 작업은 낯선 글쓰기 작업과 관련됩니다. 낯선 글쓰기 작업은 남성 사회를 비판할 수 있는 텍스트의 내적 입장에 바탕을 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남성 사회에 대한 비판은 이리가레에 의하면 전통적 토론 방식의 자명한 방식이 아니라, 생략법으로 응축된 정교한 함축의 방식으로 개진될 수 있다고 합니다. 이러한 글쓰기 방식을 통해서 여성 작가는 가부장적주의를 공고히 하는 제반 이데올로기를 허물어야 합니다. 어떻게 하든 간에 여성 작가는 남성 중심주의라는 이데올로기가 사회 제반 영역에서 뿌리내리지 못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거울 (Speculum)은 자의적 은유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거울은 어떤 전체적 의미의 장을 개방시킨다고 합니다. “엿보는 행위 (speculatio)”를 생각해 보십시오. 여성의 글쓰기는 여성 자체가 수동적으로 엿보는 자가 아니라, 이제 능동적으로 행동하는 자임을 분명히 해줍니다. 엿보며 살아야 하는 자는 더 이상 여성이어서는 안 된다고 합니다. 남성 역시도 창조적으로 글을 쓰는 여성의 모든 행위를 엿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야 말로 라캉이 말하는 “거울의 단계 (Spiegelstadium)”입니다. 여성이 능동적으로 행동하고, 남성이 수동적으로 엿볼 수 있는 상황이 많으면 많을수록, 남성과 여성은 거울의 단계에 도달하게 됩니다. “거울의 단계”란 남성과 여성의 동등한 상을 반영하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그것은 지금까지 인정받지 못했던 여성적 주체가 남성적 주체와 함께 어떤 상상적 동일성을 획득하는 단계입니다. 이는 간주관적 변증법으로 이해될 수 있지요.

 

이리가레의 이론은 페미니즘 문예학에서 많은 논쟁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이리가레는 여성적 글쓰기의 새로운 파괴성을 강조한 바 있습니다. 그렇지만 많은 페미니스트들은 이리가레의 성적 차이에 반발하였습니다. 즉 이리가레가 파악하고 있는 남성성 여성성의 차이는 생물학적으로 존재론적으로 강력하게 분화된 무엇이라는 것입니다. 인간 삶에 있어서 남성성과 여성성은 남자와 여자 사이의 철저한 구분으로 해명될 수는 없습니다. 가령 페미니즘에 관한 논의가 있기 전에도 인간 사회에서는 여성적인 남자, 남성적인 여자 등이 드물게 존재해 왔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