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미처리히의 놀라운 책: 가해자의 자기반성에 관한 심리 분석의 책 한 권을 다루려 합니다. 그것은 "반성할 줄 모르는 무능력. 공동적 태도의 토대Die Unfähigkeit zu trauern. Grundlagen kollektiven Verhaltens"입니다. 알렉산더 미처리히 (Alexander Mitscherlich, 1908 - 1982) 그리고 마르가레테 미처리히 (Margarete Mitscherlich, 1917 - 2012)의 책은 1967년에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간행되었습니다. 두 작가는 세밀한 심리 분석을 통하여 독일인의 공통 심리라는 핵심적 주제를 깊이 천착하였습니다.
이 책을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독일의 역사 그리고 50년대 그리고 60년대 서독의 현실상 그리고 독일인의 심리를 우선적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주지하다시피 나치 정당으로 권력을 장악한 히틀러는 실업을 극복하기 위해서 군수산업을 추진하였으며, 이로써 독일은 제 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습니다. 이때 600만 명의 유대인들이 강제수용소에서 살해당했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난 뒤에 동서독 분단국가가 생겨나게 되었는데, 서독은 미국의 경제적 원조를 바탕으로 “라인 강의 기적”을 이루었습니다. 경제적으로 기적같이 부흥한 것이었지요. 절약과 근면으로써 부유하게 된 독일인들은 더 이상 과거의 참상을 기억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2. 경고를 위한 사회 분석의 책: 원래 책의 제목은 “슬퍼할 줄 모르는 무능력Die Unfähigkeit zu trauern”입니다. 이 제목은 일견 독자에게 감정에 호소한다는 인상을 풍깁니다. 그렇지만 가만히 살펴보면, 미처리히의 책은 현대인들에게 어떤 잊을 수 없는 무엇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슬퍼한다는 것은 우울한 감정에서 비롯하는 게 아니라, 과거의 나치의 만행으로 핍박당한 사람들의 비극을 애통해 한다는 의미를 지닙니다. 그렇기에 그것은 다같이 “함께 괴로워한다.”는 점에서 “동정Mit- Leid”과 같은 정서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필자는 문맥을 고려하여 책의 제목을 “반성할 줄 모르는 무능력”이라고 번역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독일인들은 저자의 견해에 의하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간에 함께 괴로워하는 정서를 고수하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그들은 유대인들이 어떠한 사람인지 알고 싶어 하지 않으며, 나치의 만행으로 희생된 그들의 고통스러운 행적을 더 이상 기억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특정 인간에 대한 무지 내지 외면은 언제나 어떤 전체주의의 편견을 재탄생시키고, 인종에 대한 불신과 선입견을 조장하게 합니다.
3. 자신의 죄를 은폐하려는 가해자의 태도: 원래 인간은 특히 과거의 끔찍한 사건을 뇌리에서 지우려고 애를 쓰곤 합니다. 이는 트라우마, 즉 심리적 외상을 당하지 않으려는 반작용입니다. 이를테면 과거 전쟁 당시에 끔찍한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다고 발뺌하는 일본의 보주주의 정치가들을 생각해 보세요, 그들은 직접적으로 제 2차 세계대전을 겪지 않은 제 2세대에 속하는 자들입니다. 그렇기에 그들은 의식적으로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수많은 정신대 사건들, 관동 대지진의 생매장 사건들은 현실과는 무관한, 마치 동화 속의 이야기처럼 받아들이곤 합니다.
과거를 망각하는 태도는 때로는 과거의 잘못을 분명히 직시하지 않으려는 성향에서 비롯합니다. 이러한 성향이 개인적이 아니라, 거대한 집단의 성향이 되면, 그것은 미처리히에 의하면 “집단적 외면행위”라고 명명될 수 있습니다. 가해자의 이러한 무능력은 타민족을 침공한 다음에 모든 것을 착취한 민족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특성입니다. 그것은 놀라운 보편적인 병리 증상으로서, 자유롭고 비판적인 태도를 취해야하는 영혼이 무언가에 의해 방해 당하고 있는 증후군으로 설명될 수 있습니다. 이는 가해자의 망각 증세인데, 과거에 저지른 죄를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간에 은폐하려는 기형적인 신드롬이 아닐 수 없습니다.
4. 수치스러운 기억을 지우려는 두 가지 이유: 미처리히는 가해자의 심리상태를 다음과 같이 서술합니다. 죄가 탄생한 곳에서 가해자는 무언가 후회하게 되고, 심리적으로 모든 것을 올바른 이전 상황으로 되돌리려고 느낀다고 합니다. 손실로 인해 고통 받는 곳에서는 으레 일시적으로 슬픔이 돌출하는 법입니다. 그곳에서는 인간의 자존심이, 그리고 인간의 오랜 열망으로서의 이상이 상처를 입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때 가해자의 마음속에 수치심이 나타나는 것은 당연하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대상이 사라지는 순간 수치심으로 상처 입은 가해자는 스스로를 외부로부터 차단시킵니다.
그러나 일반 사람들은 과거의 정치적 역사에 대해 이런 식으로 죄의식을 느끼거나 슬픔의 감정을 인지하지 않고 있습니다. 어째서 사람들은 무작정 과거의 수치스러운 기억을 뇌리에서 지우려고 애쓰는 것일까요? 이에 대한 답으로 미처리히는 -권력자든 일반 사람이든 간에- 자신의 죄를 드러내기 싫어하는 심리적 거부감에서 발견합니다. 자신의 죄를 인정하기 싫어하는 또 한 가지 다른 이유로서 소시민의 책임 회피를 거론합니다. 내 주위에서 발생한 과거의 끔찍한 죄는 나 자신과 직결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비록 투표장에서 히틀러를 지지했지만, 내 손으로 직접 유대인들을 살해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5. 우울과 방어기제: 자고로 인간의 의식 구조는 지극히 보수적인 습성에 길들여져 있습니다. 인간은 새로운 무엇에 대해 낯설게 여기고, 친숙한 환경에 편안함을 느낍니다. 의식의 체제 안주적인 특성은 나아가 정치적 보수주의의 습성에 익숙하게 작용합니다. 지금까지 심리적 태도를 규정하던 어떤 질서가 무너지게 되면, 이에 대해 기대감을 품던 사람들은 어떤 묘한 느낌이 엄습하는 것을 감지합니다. 그것은 이미 언급했듯이 우울의 정서입니다. 우울은 애틋하게 사랑하는 대상이 사라졌을 때 나타나는 정서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우울한 정서는 순간적으로 변화된 내적 영혼의 상태에 대한 반작용입니다. 이를테면 자신의 이상이 무너지게 되면, 사람들은 어떤 엄청난 양의 멜랑콜리의 감정을 견지하게 됩니다. 이와 병행하여 사람들은 사랑하는 대상의 상실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합니다. 이는 심리적으로 완강한 방어 기제와 같습니다.
제 아무리 주위 사람들이 전쟁범죄자들이라고 항변하더라도 다수의 일본인들이 야스쿠니 신사의 유골의 가치를 인정하듯이, 인간은 자신이 과거에 옳다고 확신한 바를 절대로 포기하려 하지 않습니다. 미처리히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차례대로 기술합니다. 즉 충동의 자극 (리비도 그리고 공격 성향), 두려움, 유년기의 이야기, 한 인간의 성격 형성에 기여하는 유년기의 실제 교육 등이 그것들입니다. 나아가 미처리히는 사회적 동인이라고 할 수 있는 산업 사회의 기술화, 대중 사회 도덕과 이상의 상대적 특성을 거론합니다. 이 모든 것들은 정신 분석학적 이론의 토대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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