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김용민
가끔
달이 되고 싶은 때가 있다
유리창
사람들의 눈동자 속
비칠 수 있는 곳이면 모두
제 모습 나누어주고도
아직 남아 빛날 수 있는
달이 되고 싶을 때가 있다
가끔
하늘이고 싶을 때가 있다
미워지는 것들에서 눈감고 싶을 때
작은 도랑물 위
비 지나간 웅덩이
여름날 무성이는 앞새들 위에
안길 수 있는 곳이면 어느 곳이든
가만히 내려앉아 들어가 있는
퍼내도 퍼내도 마르지 않는
하늘이 되고 싶을 때가 있다
가끔은 나무이고 싶기도 하다
잠시 서 있음에도 어지러워 휘청일 때면
하루 종일 말없이 서서
비바람 눈보라 그 팔로 안아 들이는
그러면서 햇빛 받아 무수히 반짝거리는
나무이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러나 정말은
햇빛이 되고 싶다
바람 못 가는 유리창 너머
지붕으로 막혀 보이지 않는 방안에까지
어루만질 수 잇는 곳이면 어느 곳이든
가만 다가가 따스함 나누어주는
햇빛이고 싶을 때가 있다
요즘처럼 한낮에도 으스스 몸 떨릴 때면
김용민 시집: 불타는 단풍나무, 예술가 2023, 64 - 6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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