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한국 문학

(명시 소개) 김용민의 시 '가끔'

필자 (匹子) 2023. 7. 26. 13:07

가끔

김용민

 

가끔

달이 되고 싶은 때가 있다

유리창

사람들의 눈동자 속

비칠 수 있는 곳이면 모두

제 모습 나누어주고도

아직 남아 빛날 수 있는

달이 되고 싶을 때가 있다

 

가끔

하늘이고 싶을 때가 있다

미워지는 것들에서 눈감고 싶을 때

작은 도랑물 위

비 지나간 웅덩이

여름날 무성이는 앞새들 위에

안길 수 있는 곳이면 어느 곳이든

가만히 내려앉아 들어가 있는

퍼내도 퍼내도 마르지 않는

하늘이 되고 싶을 때가 있다

 

가끔은 나무이고 싶기도 하다

잠시 서 있음에도 어지러워 휘청일 때면

하루 종일 말없이 서서

비바람 눈보라 그 팔로 안아 들이는

그러면서 햇빛 받아 무수히 반짝거리는

나무이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러나 정말은

햇빛이 되고 싶다

바람 못 가는 유리창 너머

지붕으로 막혀 보이지 않는 방안에까지

어루만질 수 잇는 곳이면  어느 곳이든

가만 다가가 따스함 나누어주는

햇빛이고 싶을 때가 있다

요즘처럼 한낮에도 으스스 몸 떨릴 때면

 

 

김용민 시집: 불타는 단풍나무, 예술가 2023, 64 - 6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