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a 남의 글

정지창: 안삼환의 소설 『도동 사람』을 읽고

필자 (匹子) 2023. 2. 4. 07:02

경애하는 정지창 교수님의 글을 허락 없이 함부로 퍼왔습니다. 이해 부탁드리면서 OT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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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삼환 교수의 『도동 사람』을 이틀에 걸쳐 다 읽었다. 6백 30쪽에 이르는 두툼한 소설을 이렇게 빨리 읽은 것은 나로서도 놀라운 일이다. 어금니가 탈이 나 치과에 다니느라 오른쪽 볼이 무지근하게 부어오르고 “멀리서 들리는 은은한 포성처럼”(염무웅 선생의 표현) 치통이 지속되는 가운데, 연일 35도를 오르내리는 염천에 머리는 지끈거리고 눈은 침침한데 이 두꺼운 책을 독파하다니!

 

진정한 학자, 위대한 학자는 그 학술이 반드시 ‘학술의 틀’을 깨고 나와 시적 정취와 통해야 한다.”(真学者、大学者,其学术必能突破“学术套子”,打通诗意。) 『시간의 압력』이라는 에세이로 유명한 중국의 소설가이자 학자인 샤리쥔(夏立君)이 한 말이다. 독문학자인 안삼환 선생의 자전소설 『도동 사람』을 읽고 문득 이 말이 떠올랐다. 그는 선비 집안에서 태어나 동서양의 학문에 통달한 석학이지만 평생의 학문적 온축과 내공을 이 소설 한 편 속에 시적 정취로 펼쳐냈다.

 

1부는 소설 자체로 재미있게 읽힌다. 영천시 남쪽의 양반 마을인 도동과 강변의 동강포 과수원을 무대로 펼쳐지는 서사는 몰락한 양반 가문의 후손인 안병규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그가 가난 때문에 대구의 명문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동강포 과수원을 일구며 자식들을 키우다가 콜레라로 아내를 잃고 은사의 딸과 재혼하는 과정에서 그의 셋째 아들 동민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처음 본 새어머니를 정겹게 ‘어머니’라고 부름으로써 새로운 가정이 화합하도록 일종의 윤활유 역할을 한 것이다. 이런 동민의 성품이 그를 법관이나 관료로 입신양명하는 세속적인 출세길보다는 가난하고 외로운 문학의 길로 이끈 것이 아닐까.

 

동민을 중심으로 이어지는 2부 이하의 이야기는 일종의 성장소설이자 자전적인 고백록인데 여기서 나는 동민이라는 가공의 인물이 아니라 내가 아는 선배 독문학자 안삼환 선생의 자서전을 읽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는 나보다 3년 선배로 문리대 독문과 출신이고 나는 사대 독어교육과를 다녔다. 교수가 된 다음에도 그가 독문학과 관련된 학술활동에 적극적이었던 반면 나는 학회 활동에 소극적이었고 다른 일, 이를테면 문화운동 쪽으로 한눈을 팔았기에 서로 만날 기회가 거의 없었다.

 

그렇지만 그가 고등학교 동창회에 가면 잘나가는 판검사와 관료들이 “너 아직도 대학 선생 하고 있냐?”고 안됐다는 듯이 물어보는 통에 자존심이 상한다는 말을 듣고 일종의 동류의식을 느꼈던 기억이 난다. 군사정권 시절 정부의 요직을 경북고 출신들이 독차지하고 있을 때 대구의 동창회에 참석하는 서울 동문들을 위해 열차 한 칸을 특별 편성하던 시절이었으니 그들은 대학교수쯤은 우습게 여겼을 것이다. 고시에 합격하여 출세가도를 달리는 동문들이 대접을 받고 화제의 중심이 되는 동창회에서, 대학 졸업 후 청와대로 오라는 권유를 거부하고 독일 유학을 떠나 4년만에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귀국하여 대학에서 독문과 교수를 하고 있는 왕년의 수재는 동정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던 모양이다. 토마스 만의 단편 「토니오 크뢰거」에서 예술가인 주인공이 잘나가는 부르주아 친구들 사이에서 느꼈던 소외감을 그도 뼈저리게 경험한 것이리라.

 

안삼환 교수님, 아니 소설가 안삼환

 

안삼환 선생은 고등학교 때 문과에서 성적이 좋으면 법대, 상대, 영문과에 진학하는 것이 상례이던 1960년대에 독문과를 택했다. 모교의 명예와 가문의 영광을 위해 일류대학 인기학과에 가는 것이 당연시되던 시대에 그런 선택을 했다는 것은 좀 특이한 돌출행동이었다. 그런 선택을 하게 된 것은 독문학을 통해 문학의 세계에 진입한 다음 언젠가는 소설을 쓰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고 그는 고백한다.

 

그는 고등학교 시절 토마스 만의 장편 『부덴브로크 가(家)의 사람들』을 읽고 독문과를 택했다고 한다. 학생 시절 글짓기에도 두각을 나타낸 문학청년이었던 때문인지 그는 독일 작품들을 자연스런 우리말로 번역하고 우리 고유의 학문과 정서를 유려한 독일어로 표현할 줄 아는 몇 안 되는 독문학자 가운데 하나다.

 

고등학생 시절에 읽은 소설 한 편, 시 한 구절이 청년의 발길을 문학의 길로 안내할 수 있다는 것을 나는 믿는 편이다. 내가 독일문학을 공부하겠다고 작정한 이유 가운데 하나는 독일어 교과서에 실린 괴테의 시 「나그네의 밤노래 2」(Wanders Nachtlied)에 매력을 느꼈기 때문이다.

 

Űber allen Gipfeln

ist Ruh,

In allen Wipfeln

Spűrest du

Kaum einen Hauch;

Die Vőgelein schweigen im Walde

Warte nur, balde

Ruhest du auch,

 

(모든 산봉우리 위에는

고요가 있고

모든 나무 우듬지에서

그대는 느끼지 못하네

한 줄기 미풍조차도

작은 새들도 숲 속에서 잠잠하네

기다려라, 머지않아

그대 또한 쉬게 되리니.)

 

괴테가 서른한 살 때인 1780년 튜링겐의 숲속 산장의 벽에 연필로 써놓았다는 시인데, 나는 이 시를 소리 내어 읽을 때의 느낌이 좋았다. 이 시를 우리말로 번역해 놓으면 Gipfeln과 Wipfeln, Ruh와 du, Hauch와 auch, Walde와 balde의 각운(脚韻)이 주는 리듬과 미묘한 맛은 사라져 버린다.

 

독일어 교과서에는 이 시 말고도 괴테의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이 소설은 안삼환 선생의 유려한 번역으로 민음사의 괴테 전집의 일부로 1996년에 출판되었다.)에 나오는 유명한 미뇽(Mignon)의 시 두 편도 요즘은 볼 수 없는 장식체 독일문자로 실려 있었다. “당신은 아시나요, 저 레몬꽃 피는 나라를?"(Kennst du das Land, wo die Citronen blűhn?)이라는 구절과 “그리움을 아는 사람만이 / 나의 괴로움을 알리라”(Nur wer die Sehnsucht kennt / weiß, was ich leide!) 같은 구절을 독일어로 읽을 때의 묘한 설렘과 심미적 쾌감이 내 발길을 독일문학 쪽으로 잡아끈 수많은 이유 가운데 하나였던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반듯한 모범생이어서 작가보다는 학자가 되는 것이 어울릴 것 같다는 은사나 선배작가의 권유에 따라 그는 학문의 길로 접어들어 성공적인 경력을 쌓아간다. 어찌 보면 학자의 길은 평탄하지만 답답하고 소모적이다. 게으르고 굼뜬 나같은 얼치기 교수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근면 성실한 안교수는 영감과 활력이 넘치는 강의를 통해 학생들과 교감하면서도 학회와 학과의 사무적인 일에도 헌신적이었다.

 

특히 나의 감탄을 자아낸 것은 그가 독일 튀빙엔의 학회에서 ‘원효 대사의 삶과 그 현재적 의미’라는 제목으로 강연을 하는 장면이다. 한국의 민초들에게 보살행을 실천한 원효의 삶과 저술을 독일인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재미있는 이야기로 풀어 설명한 안교수의 학자적 자질은 질의응답 시간에 원효대사와 쇼펜하우어의 공통점과 차이점이 무엇인지를 묻는 독일인의 질문에 답하는 대목에서 빛난다. 안교수는 사실 쇼펜하우어의 대표적인 저서인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Die Welt als Wille und Vorstellung)조차 읽지 않은 상태였지만, 문득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는 『욕망과 환상으로서의 세계』로 번역되어야 맞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쇼펜하우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불교의) 제7식에 의한 자기 자신의 욕망 때문에 자아가 이 세상을 환(幻)으로 보게 된다는 유식학적 지식”이라는 것을 간파한다.

 

“예, 저의 생각으로는, 원효 대사와 쇼펜하우어는 둘 다 유식학적 인식을 하고 있었으므로 그들 둘은 이 세계(Welt)를 자아가 자신의 욕망(Wille)에 이끌려 잘못 본 환상(Vorstellung)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불교적 인식론에서 흔히 언급되는 이른바 ‘환(幻)’이라는 것이지요. 원효 대사와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세계를 보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다른 점도 있는데, 그것은 쇼펜하우어가 불교 철학을 버마 쪽의 남방불교에서 받아들였기 때문에, 그는 북방 대승불교를 받아들인 원효의 보살도(菩薩道), 즉 실천적 이타행(利他行)까지는 아직 이르지 못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답변으로 위기를 넘긴 안교수는 바로 도서관에 가서 쇼펜하우어의 책을 뒤져 그가 답변했던 내용이 담긴 이런 구절을 발견한다: “인간의 눈을 둘러싸고 있으면서 인간으로 하여금 이 세계를 보게끔 하는 것은 마야(Maja), 즉 기만의 베일이다.(…) 세계는 꿈과 같고, 멀리 있는 나그네가 오아시스라고 여기는 신기루와 같으며, 나그네가 뱀으로 잘못 보는, 길 위에 던져진 노끈과도 같다.”

 

여기서 보듯, 안교수의 학문적 내공은 시적 영감에 의해 어떤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보는 경지에 도달한 것 같다. 그는 독일 유학중인 1970년대에 박사학위 논문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난관에 봉착하여 고심하던 한밤중에 조그만 새 한 마리가 방안에 들어와 토마스 만 전집에 앉아 독일어로 중요한 힌트를 속삭여주는 경험을 한 바 있다고 고백한다. 수도승들이 드물게 경험하는 일종의 신비체험이요, 인문학도에게 간혹 찾아오는 ‘학문의 에피파니’라고 그는 말하지만, 나는 이것이 지금까지 쌓아온 지식이 시적 영감에 의해 일종의 직관적 통찰로 승화된 것이라고 본다. 불현듯 어느 순간에 어떤 계기에 의해 진리를 깨우친다는 돈오돈수(頓悟頓修)는 지극한 공부와 간절한 염원이 뒷받침된 점수(漸修)의 과정을 거쳐야 도달할 수 있는 어떤 경지를 가리키는 것이 아닐까.

 

책을 읽고 나서 나는 내가 아는 영천 출신의 작가들을 꼽아보았다. 소설가 백신애와 하근찬, 시인 백무산과 송재학, 이중기, 이정연…. 그렇다면 도동 출신의 소설가 안삼환의 자리는 어디일까. 연배로 보면 하근찬과 백무산 사이쯤일 텐데, 자세한 것은 시집 『영천 아리랑』에서 영천의 인물들을 영천판 만인보로 엮어낸 바 있는 이중기 시인이 알아서 할 일이다.

 

 

정지창 교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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