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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이: 시인 서정춘의 100년을 달리는 기차

필자 (匹子) 2024. 3. 30. 06:59

이광이 선생님의 글을 허락도 없이 퍼왔습니다.

출전: 한겨레 신문 2024년 3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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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그려 새 울려놓고
지리산 골짜기로 떠났다는
소식’ (봄, 파르티잔, 1995)

 

시 한편이 스물한자다. 읽다가 ‘소식’ 하고 끝나버리니, 걷다가 길이 끊긴 듯, 몸이 앞으로 기우뚱한다. 입에서는 못 빠져나간 바람이 한숨이 되어 새어 나온다. 그 소식 이후에 다른 소식은 없었는지 늘 궁금했다. 바람 부는 날이면 동구에서 띄우던 연줄이 툭 끊겨 산 너머로 멀리멀리 날아가던, 꼬리를 흔들며 하늘하늘 사라져버린 그 가오리연이 가끔 생각나듯이, 소식만 남기고 산골짜기로 떠나버린 그의 뒷소식이 궁금했다.

시인 서정춘, 41년생이니 올해 여든셋이다. 사람들은 그를 ‘삼단(三短)시인’이라 부른다. 삼단은 조선의 ‘삼당(三唐)시인’, 아는 것을 쓰지 않고 느끼는 것을 썼던 당풍(唐風)의 세 시인을 일컫는 말에서 따온 것인데 세 가지가 짧다는 뜻이다. 키가 작고, 가방끈이 짧고, 시가 좀 읽을 만하면 끝나버려 삼단이다. 이 시, ‘봄, 파르티잔’(1995)의 전문이다. 시가 아니라 옛날 전보 같다. 첫 연은 내가 썼으니 다음은 네가 써봐라 하는 듯도 하다. 그렇게 3행 아래 텅 빈 공간 속에서 읽는 사람은 생각하다가 한숨짓다가, 자꾸 지리산으로 끌려 들어간다.

오랜만에 뵈었는데 예전 모습 그대로다. 백발이 더 희어질 수도, 주름이 더 깊어질 수도 없으니 늙음이 거기서 멈추었다. 돼지수육을 시켜놓고 낮술을 했다. 전에는 말술을 자시던 양반인데 머리가 어질어질하여 병원에 간 뒤로 금주명령을 받았다. 딱 한잔도 안 되냐고 애걸하여 의사의 허락을 얻고는 딱 한잔 마신다. 한 방울만 더 들어가면 넘칠 정도로 막걸리를 가득 따라 두 손으로 받들고 단숨에 7할을 비운다. 그 허여멀건 것이 목젖을 타넘어 가는 순간을 경배하고는, 나머지로 자리가 파할 때까지 버틴다.

 

 

시를 읽는 순간, 내 몸속 피갈이가 된 것 같아

어리고, 배고픈 자식이 고향을 떴다/ ―아가, 애비 말 잊지 마라/ 가서 배불리 먹고 사는 곳/ 그곳이 고향이란다

‘30년전-1959년 겨울’이라는 시다. 시인은, 은유가 아닌 말 그대로, 똥구멍이 찢어지게 가난했다. 아비는 마부였고, 어매는 첫돌 지나 세상을 떠났다. 계모 밑에서 가난하고 서러운 세월을 살았다. 하루는 계모가 이복동생들만 챙기는 것을 보고는 대들고 싸우다가, “피가 거꾸로 솟아” 호미를 집어던지고 집을 나왔다. 다행히 호미가 빗나가 계모가 다치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엇나가는 유년을 보냈다. “의붓아들 키우기도 어렵고 의붓아들 노릇하기도 어려운 법이요.”

 

이 대목, 공자의 제자 민자건이 생각난다. 아비는 가마꾼이었고 어매는 일찍 죽어 계모 밑에서 자랐다. 계모는 두 아들을 낳았다. 겨울날 자건이 가마를 끄는데, 고삐를 자꾸 놓쳐 아비가 손을 만져보니 얼음처럼 차가웠다. 옷은 두툼하게 입었는데 이상히 여겨 뜯어보자 안에 허연 것이 갈대꽃이었다. 집에 돌아와 계모 소생의 두 아들 옷을 헤쳐 보니 거기에는 목화솜이 들어 있는 것이 아닌가. 화가 난 아비가 계모를 내쫓으려 하자 자건 왈, “어미가 있으면 한 자식만 춥지만(一子寒), 어미가 없으면 세 자식이 외롭게 되지 않습니까?(三子單)” 하니, 아비가 하늘을 쳐다보며 탄식하는 장면, ‘한시외전’에 나온다.

 

시인은 야간 중학에 다니면서 신문 배달을 했다. “순천소방서 옆 문우서점에도 신문을 넣었지. 어느 날 배달 가니까 순천중학 다니는 친구들이 와 있는 거라. 승옥이 하고 셋이 책을 사러 왔어. 선생이 영랑과 소월 시집을 읽고 베껴 써 오라 했다는 거라. 나를 보고는 그래, 야 정춘이 너는 매산중학 야간부에 다닌다며.”

 

내가 호미 던진 계모가 진짜 어머니 되기까지

중학도 야간이냐고 물으니, 중고 야간 6년이 학력 전부라 한다. “우리 선생은 왜 저런 숙제도 안 내주셨을까? 호기심이 생기고 부러웠지. 영랑이 뭐야? 소월이 뭐야? 궁금해서 신문 배달 마치고 학교 가는 길에 다시 서점에 들렀어. 이 책 오늘 저녁만 보고 내일 배달할 때 갖다 주면 안 될까요 했더니, 주인이 야 이놈의 새끼, 월급 타서 사, 손때 묻으면 헌책 돼 버리는데 여기 헌책방 아니다, 그러는 거라. 그래서 서점에 선 채로 시를 한편 읽어보는데 바로 그 순간이 내 인생 조져놓은 거야. 아! 그 춥고 배고프고, 우리 아버지 나무해다 팔고, 마부 노릇 한다고 괄시당하고, 어린 나이에 열등감에 젖어 살았는데. ‘내 마음 아실 이, 내 혼자 마음 날 같이 아실 이…내 마음에 때때로 어리우는 티끌과, 속임 없는 눈물의 간곡한 방울방울, 아! 그립다, 내 혼자 마음 날같이 아실 이, 꿈에나 아득히 보이는가’, 시를 읽는데 그 순간 그냥 내 몸속의 피갈이가 된 것 같아. 생모가 나를 쓰다듬고 안아주고 꼭 그렇더란 말이야.

 

이튿날 서점 주인한테 가서 조르다 퇴짜 맞고, 사흘째 또 졸랐다. “끈덕지네, 이놈의 새끼. 한 군데라도 흠이 나면 세배로 물릴 줄 알아” 하더니, 책 두권을 빌려주었다. 그날 밤 집에 오자마자 책을 펴고 지문이라도 묻을까 손을 씻고는 한장 한장 헝겊을 대 눌러가면서 시를 읽던 순간. 살다 보면 잊을 수 없는 그런 장면들이 있다.

 

영국 작가 조지 기싱의 ‘헨리 라이크로프트 수상록’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가난한 무명작가로 런던의 토트넘 언덕에 살던 시절이다. ‘책방의 가판대나 진열창 앞에 선 채 지적 갈망과 육체적인 욕구 사이의 갈등으로 괴로워했던 날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그 책을 산다는 것은 배고픔의 고통을 겪어야 함을 의미했다. 내 안에서 두 욕구가 싸우는 동안 나는 서성이면서 주머니 속의 동전을 만지작거리며 가판대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언덕길 헌책방 앞에서 저 책을 살까 말까 망설이고 있는 사람, 책값은 6펜스, 그 돈이면 고기와 채소 한 접시를 살 수 있는데, 저 책을 사버리면 검고 딱딱한 빵으로 저녁 허기를 달래야 하는데… 그 순간 생은 두 갈래, 가는 길과 가지 않은 길로 나뉜다. 기싱은 포기하고 언덕을 오르다 되돌아 내려와 책방 안으로 들어간다." 하이너의 ‘티불루스’, 그것을 사들고 달려 올라가 등불 아래 밤이 깊도록 책을 읽고 있는 사람, 영랑과 소월의 시집을 빌려 와 밤이 깊도록 읽고 공책에 필사하고 있는 소년, 둘이 많이 닮았다.

 

시가 그렇게 왔고 시는 꿈이 되었다. 자건의 한 자식, 세 자식 얘기를 전해 들은 계모, 회개하여 뒤에 자모(慈母)가 된다. 소년은 시인을 꿈꾸면서, “나쁜 피가 좋은 피로 피갈이가 되어” 한 소식을 들으니, 계모가, 계모가 아니라 핏덩이였던 나를 살린 진짜 어머니라는 자각이었다. 그길로 집에 가서 어머니를 부여안고 한참을 울었다고 한다.

 

4년 동안 110번 고쳐 쓴 시

1959년 겨울, 어리고 배고픈 자식이 고향을 뜬다. 위에 나오는 ‘승옥’이 ‘무진기행’을 쓴 소설가 김승옥이다. 둘은 친구였고, 그의 소개로 동화출판공사에 취직하게 된다. 그 무렵 신아일보 신춘문예에 ‘잠자리 날다’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그리고 28년이 지나, 출판사를 퇴직하던 1996년 첫 시집 ‘죽편’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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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부터, ―멀다/ 칸칸마다 밤이 깊은/ 푸른 기차를 타고/ 대꽃이 피는 마을까지/ 백년이 걸린다’ 시 ‘죽편(竹篇) 1, 여행’ 전문이다. 대가 서 있으면 대나무이되 가로로 뉘이면 푸른 기차가 된다. 그 기차를 타고 여기서부터 먼, 대꽃 피는 마을까지 100년을 간다. 그것은 한 생이기도 하지만, 죽편이란 종이 이전의 책이니, 칸칸이 밤이 깊은 그 마디마디는 책이 절절편편(節節篇篇) 쌓여 있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게 대나무는 삶과 책을 싣고 달린다. 사람이 나서 죽을 때까지 가야 할 외길을, 한 순간 방일할 수 없는 배움의 길을, 구불구불 머나먼 시의 길을 푸른 기차가 달리고 있다. 서정춘의 ‘죽편’, 4년에 걸쳐 110번을 고쳐 썼다는 이 시는 우리 시사에 빛나는 명편이다.

입술을 적시던 그 3할의 막걸리마저 한 방울도 남지 않았을 때, 시가 무엇이냐고 물었다.“말씀언(言)이 7획, 절사(寺)가 6획 하여 벽돌 13장으로 지은 집”이라 한다. 그리고 봄날, 꽃 그려 새 울려 놓고 지리산으로 떠난 그이의 소식을 물었더니, 들려준다.

그해,
지리산 밑 오두막에 살면서 산막을 드나들다
총 맞은 가슴팍에 진달래꽃을 피워놓고
고요히 잠든 사내를
빨치산이라 불렀었지’ (‘진달래꽃’(2020) 전문)

 

이광이‘정말로 바다로 가는 길을 나는 알지 못하지만, 그러나 바다로 가는 노력을 나는 그쳐본 적이 없다’ 목포 김현문학관에 걸린 이 글귀를 좋아한다. 시는 소질이 없어 못 쓰고 그 언저리에서 ‘잡글’을 쓴다. 삶이 막막할 때 고전을 읽는다. 머리가 많이 비어 호가 ‘반승’(半僧)이다. 동화 ‘엄마, 왜 피아노 배워야 돼요?’와 책 ‘절절시시’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