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나의 글

박설호: 견유 문학론 (3)

필자 (匹子) 2022. 6. 26. 11:36

본문에서 "당신"은 필자 자신을 지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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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충 사항 1: 부디 명심하십시오, “짖는 개는 물지 않는다.”라는 속뜻을. 똥개는 짖지만, 명견은 함부로 짖지 않습니다. 명견은 가만히 있다가 자신의 판단을 실행하는 개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명견과 똥개를 구별하게 할까요? 똥개는 남을 의식하는 개입니다. 행여나 남들이 자신의 약점을 알아 차릴까봐 전전긍긍하지요. 똥개의 모든 행위는 자신의 이름을 알리고 제일인자가 되려는 목적에서 나온 것들입니다. 이에 비하면 명견은 남을 의식하지 않는 개입니다. 자신의 잘못을 드러내고 마치 익은 벼처럼 고개를 숙이지요. 명견의 모든 행위는 자신을 감춘 채 타인을 돕고, 감추어진 진리를 전하려는 목적에서 나온 것들입니다.

 

도스토예프스키 소설 "백치 Идиот"가 위대한 작품으로 회자되는 까닭은 작품의 주인공이 사랑과 선(善)을 숨어서 실천하기 때문이지요. 므이쉬킨 공작은 스위스의 어느 마을에서 어떤 편견에 의해 버림받은 병든 여자, 마리를 도와주었을 뿐 아니라, 따뜻한 마음씨로 그녀를 비난하던 이웃들의 마음을 되돌려 놓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이름을 남기는 데는 “백치”와 다름없는 존재였습니다. 그밖에 젊은 기사, 이창호의 위대성은 “좋은 기보를 남기겠다.”고 말하는 데에 있습니다. 훌륭한 예술가는 탁월한 작품을 남기겠다고 말할 뿐, “예술계에서 제일인자가 되겠다.”고 공언하지는 않습니다.

 

보충 사항 2: 당신의 원고가 치졸하다고 판단되면, 클라이스트 (Kleist) 혹은 카프카 (Kafka)처럼 그걸 불태우십시오. 아까운 종이를 수준 이하의 책갈피로 낭비하지 마십시오. 당신이 아니라도 서가를 가득 채울 저열한 책들을 생산할 자들은 많으니까요. 오죽하면 양서에 목숨을 건 몇몇 학자조차 “정신 건강을 위해서 책을 읽지 않는 게 좋다”고 시니컬하게 말하겠습니까? (이는 증산 강일순 선생의 책과 글에 대한 불신과 외면과는 전혀 다른 차원에서 이해될 수 있습니다.)

 

갑자기 좋은 세상을 만들려 하다 결국 사약 (死藥)을 받게 된 이조 시대 사대부의 말이 생각납니다. 그는 자식에게 “인내는 쓰고, 그 열매 또한 쓰다. 그러니 나처럼 죽지 않으려면, 절대로 글을 배우지 말라.”고 유언을 남겼습니다. 그러나 잠시 눈감고 생각에 잠겼습니다. 그는 다시 아들을 불러, 다음과 같이 조용히 말한 뒤에 독배를 들이켰다고 합니다. “아들아, 내 말을 번복하겠노라. 학문을 갈고 닦되, 과거에는 절대로 응시하지 말라.”

 

보충 사항 3: 사람들은 가을날 한 송이 국화의 아름다움에 경탄을 터뜨리곤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깨닫지 못합니다, 궂은 날씨에도 꽃잎을 터뜨리기 위하여 있는 힘을 다하던 꽃봉오리의 처절한 노력을. (“한 송이의 금빛 국화가 새벽이슬에 맑게 피어나기 위하여 간밤의 무서리가 내리더라는 백거이 (白居易)의 시 「국화」가 생각납니다.” (신영복: 나무야 나무야, 서울 1996. 16쪽.) 그리하여 불과 몇 송이만이 찬란한 성취의 우울을 만끽하는 반면, 수많은 꽃봉오리들이 미완의 아쉬움으로 스러진다는 것을. 그것도 몇 송이 가운데에서 단 한 송이만이 결실을 맺으리라는 것을. 그래요, 그들은 쉽사리 잊어버립니다, 실패한 수많은 노력들이 오히려 더욱 찬란하다는 것을.

 

보충 사항 4: 당신은 먹물 아닌 먹물입니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대학 문턱에 가지 못했으니, 당신은 먹물이 아니요, 독학의 무명작가이니 먹물입니다. 그러니 당신에겐 끌어주는 선배, 당겨주는 후배 하나 없어요. 그렇지만 당신에겐 영원한 대화의 상대자, 자연과 꿈이 있습니다. 낮에는 용접공으로 일하고, 밤에는 술잔 옆에서 시를 쓰는 당신은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면서도, 가장 불행한 사람입니다. 이 세상에서 너무나 위대하면서도 너무나 초라한 자가 바로 당신입니다. 현재 삶에서는 가장 가난하지만, 꿈의 삶에서는 가장 풍요로우니까요. 배고픈 예술가들은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으나, 아무 것도 소유하고 있지 않거든요.

 

절대로 포기하지 마세요. 스무 번이라도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나십시오. 인내심을 지닌 채 야생화처럼 질긴 생명력으로 다시 시작하십시오. 그게 한국인의 위대한 특성이자 놀라운 저력이 아닌가요? 이십 년 이상 노력하면 큰 바위 얼굴, 당신은 어느새 대가 (大家)가 되어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쓰십시오. 설령 이름 세 글자는 숨긴다 하더라도, 당신은 훌륭한 원고를 남기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