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철학 이론

블로흐: 셸링과 물질 (3)

필자 (匹子) 2022. 3. 24. 11:21

(앞에서 계속됩니다.)

 

셸링이 물질의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생명의 조직체에 대해서 얼마나 강력한 우월성을 부여했는지를 파악하려면 우리는 셸링의 다음과 같은기본적 명제를 접하면 족할 것입니다. “세계의 (이를테면 지구의) 모든 개별적인 조직은 근본적으로 바깥으로 드러난 세게 물질 자체의 어떤 내면과 완전히 동일하다. 그것은 (이를테면 지구의) 내적인 물질의 변모에 의해서 외부 세계에서 형성된 것이다.” 이로써 셸링의 조직체가 (우선권을 지닐 뿐 아니라) 시간적으로도 앞선다는 데 대해서 추호도 의심하지 않습니다.

 

그래, 당시에 셸링에게 영향을 끼친 것은 토대가 아니라, 묘지에 관한 놀라운 비유였습니다. 그렇기에 셸링은 무덤 속에서 어떤 분만하는 생명체에 관한 조각을 발견했는지 모를 일이지요. 죽은 사람이 부활하는 곳에는 시신만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고 셸링은 판단했는지 모릅니다.

 

셸링은 오로지 예술만을 활용할 뿐 아니라, 나아가 놀랍게도 철학의 조직으로서의 기독교의 예술을 활용하고 있습니다. 바로크 예술의 관점에서 고찰할 때 자연의 문헌은 그 자체 알레고리이며, 자연이라는 상형 문자는 정확히 해독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생각 때문에 셸링은 오랫동안 다음과 같은 사고에 침잠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자연의 수수께끼를 마지막으로 해결하는 문제는 셸링에 의하면 오디세우스가 고향, 이타카를 발견하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그리하여 셸링의 초감각적인 관념론 (1801)의 시스템은 다음과 같은, 시적이고 신화적인 문장으로 끝나게 됩니다.

 

독일의 낭만주의 작가 E.T.A. 호프만은 언젠가 안개로 덮여 있는 흐릿한 상을 환하게 밝히려고 했습니다. 그것은 시인 노발리스가 관심을 기울인 바 있는 어떤 내밀하고도 비밀스러운 연금술의 물질과 관련되는 것입니다. 노발리스는 새롭게 탄생할지 모르는 찬란한 세상을 셸링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돌로 변화된 마술의 도시”라고 명명한 바 있습니다. 그래, 셸링 역시 이러한 마술의 도시를 연상한 게 분명합니다. 셸링은 비-조직적이고 무기질로 가득찬 무덤들이 서서히 산통을 겪고 있다고 언급한 바 있습니다. 이는 물질 자체 속에 무기질의 사물들이 마침내 최후의 심판 일을 맞이한다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부활하는 “지성”은 객관성이 실현되는 마지막 시점에 이르러 천국의 면모를 획득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이는 이전에 나타난 바 있는 단순히 초감각적인 출발을 알리는 발효하는 지성에 관한 사고보다도 더욱 강렬한 것입니다.

 

칸트는 자연을 다음과 같이 규정하였습니다. 즉 자연이란 여러 가지 가운데 하나의 주체에 그저 추가적으로 생각해낼 수 있는 부수적인 무엇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에 반해 셸링은 자연 주체를 생각해내었습니다. 그리하여 자연주체를 의식 없는 지성, 다시 말해서 “산출하는 자연natura naturans”이라고 명명했습니다. 자연이란 셸링에 의하면 인식을 생산해내고, 자연적 존재를 산출해내며, 역사를 부활시키는 주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주체는 셸링의 관점에 의하면 물질의 근원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그것은 어떤 무엇의 존재, 다시 말해 객체의 존재로 향하는 불안과 동요입니다. 물질은 자신을 개방시키면서 모든 산출의 과정을 끝내게 됩니다. 말하자면 물질의 주체는 마지막에 이르러 주체 그리고 객체의 동일성을 얻게 되고, 휴식 내지 정지 상태를 획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물질은 한마디로 “가능성으로 향하는 모든 세력”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그것은 마지막에 이르러 자연의 안식일을 맞이하게 됩니다. 이는 -언젠가 아리스토텔레스가 어떤 결코 망각될 수 없는 가능성의 기막힌 개념을 찾아내었듯이- 가능성의 개념과 기능을 가장 대담하게 확장시킨 사고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로써 셸링은 다음의 사실을 은근히 지적하고 있습니다. 즉 물질 속에 내재한 가능성의 기능은 지금까지 실현된 내용, 생명의 찬란한 만개 그리고 인간조차도 뛰어넘어서 어떤 더욱 놀라운 역할을 행할 것이라고 합니다. 세계 속에서 부글부글 발효하는 덩어리의 마지막 곁눈질은 아직도 세상에 출현하지 않았습니다.

 

셸링은 1803년 방법론의 강연에서 어두운 핵을 지니지 않는 “물질의 그 자체”를 분명히 지적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절대적인 무엇의 영원한 자기 현시의 행위, 바로 그것입니다. “절대적인 것이 적어도 이러한 행위 속에서 스스로를 객체로써 실체 만들어내는 한에 있어서는” 절대적인 무엇은 영원히 자기 자신을 드러내는 일을 계속한다는 것입니다. 공간을 채우는 일차적이고 일반적인 유형은 셸링에 의하면 필연적이라고 합니다.

 

여러 가지 감각적인 일원성이 마치 이념이 절대적인 것으로부터 파생되듯이, 중앙부에서 빠져나올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들은 이전에 나타난 감각적인 일원성과 마찬가지로 의존적이자 동시에 독립적인 태도를 취한다고 합니다. 요약하건대 물질적 우주는 개방된 이념의 세계와 동일하다고 합니다. 셸링의 이러한 주장은 그의 초기 철학적 사고와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여기서 그가 강조하는 것은 놀랍게도 범신론적 일원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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