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나의 잡글

굥석열의 착각과 몽니

필자 (匹子) 2022. 3. 5. 09:05

필자는 지금까지 굥석열 전 검찰총장에 대해서 함부로 비난의 발언을 행해서도 안 되고, 이와는 반대로 맹목적으로 지지해서는 안 된다는 견해를 수차례 피력해 왔다. 왜냐하면 아무런 사실도 밝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누군가를 배격하거나 지지하는 태도는 어리석을뿐더러 성급한 태도라고 판단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는 동안에 굥석열은 대선 주자로 나서기로 선언하였다. 이 와중에서 정치와 역사에 관한 윤석열의 몇 가지 입장이 하나씩 드러나기 시작했다. 필자는 오로지 사안에 의거하여 그의 발언 속에 정치적으로 그리고 역사적으로 어떠한 의미와 입장이 자리하고 있는지를 밝히려고 한다.

 

1. "나는 사람을 신뢰하지 않고, 조직을 신뢰한다." 사람을 신뢰하지 않는 것은 멋진 태도다. 그러나 조직에 대한 신뢰는 결코 멋지지 않다. 왜냐하면 그것은 자신을 신뢰하지 못하거나, 단체에 대한 의존성이 강할 때 나타나는 태도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권위적 군국주의가 태동할 수 있다. 아니, 이러한 말 자체가 견강부회의 의미를 담고 있다. 자기 자신과 같은 한 사람을 신뢰하지 못하는 사람이 어찌 여러 사람으로 구성되어 있는 조직을 신뢰할 수 있을까? 도미니크 수도원은 “주에 대한 충성스러운 개 Domini + canes”에서 유래한 명칭이다.

 

도미니크 수사들은 어떠한 경우에도 자기 의사를 꺾고, 오로지 주님의 뜻에 따라 살겠다고 맹약하곤 하였다. 영국의 작가 웰스는 『모던 유토피아』에서 사무라이 엘리트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사무라이 엘리트는 조직의 가치를 중시하며, 자신의 가치를 억누른다. 조직을 신뢰하는 자는 자신을 신뢰하지 말아야 한다고 다짐하는 자이며, 조직의 충성스러운 하수인과 같다. 도미니크 수도사든 엘리트 사무라이든 간에 그들은 목숨을 걸고 조직을 배반하지 않겠다고 서약한다. 굥석열의 "나는 조직을 신뢰하고, 사람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말은 자신의 뜻을 꺾고 무조건 조직의 뜻에 따르겠다는 의미와 별반 다르지 않다.

 

2. “정부의 검찰 개혁의 정책은 거짓 놀음이다.” 이는 한마디로 검찰 내부에서 나온 시각 내지 몽니나 다를 바 없다. 어째서 굥석열은 이런 식의 일방적인 견해를 피력하고 있는가? 개혁은 모든 기관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검찰은 지금까지 한 번도 개혁의 대상이 된 적은 없었다. 검찰은 타인과 타 기관을 징계하고 구형하기만 했지, 정작 자신을 비판하고 죄를 물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굥석열은 현 정부의 검찰 개혁을 하나의 거짓놀음으로 치부하고 있다. 이는 전형적인 검사의 시각이다.

 

자고로 남의 죄악이나 잘못을 밝힌다고 해서 그게 나 자신이 선하다는 가설을 증명해주지는 못한다. 왜냐하면 선은 오로지 자기비판에 의해서 고유한 영양을 공급 받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개인이든 단체이든 간에 가장 중요한 것은 타자에 대한 비판의 강도를 높이는 게 아니라, 이와 더불어서 자기 자신을 채찍질하려는 뼈를 깎는 노력과 반성의 행위다. 검찰은 지금까지 이러한 노력을 게을리 해 왔다. 어디 그뿐이랴, 검찰은 지금까지 언론사 등 사회의 상류층과 밀월관계를 유지해 왔다. 요약하건대 “정부의 검찰 개혁의 정책은 거짓 놀음이다.”라는 굥석열의 발언은 검찰의 집단 이기주의의 발상,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3. “현 정부는 민주주의의 허울을 쓴 독재 내지 전체주의 집단이다.” 2020년 총선에서 국민들은 국회의원의 과반수를 여당 국회의원으로 선출하였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도 2018년부터 2020년까지 야당이 모든 정책을 사사건건 방해하며, 정부의 정책에 발목을 잡았기 때문이다. 야당이 국회에서 농성하고, 나경원을 필두로 문 앞에서 드러누우며 의사결정을 방해한 적이 어디 한 두 번이었던가? 문재인 정부는 촛불 집회에 의해서 태동하였다. 싫든 좋든 간에 문재인은 국민의 직접 선거의 결과로 대통령이 된 분이다. 이를 고려한다면 민주주의의 허울을 쓴 독재 집단이라는 굥석열의 발언은 거짓이다.

 

그가 개인적인 갈등 때문에 문주주의를 욕할지는 몰라도, 민주주의 자체를 비난할 이유는 하나도 없다. 물론 더불어 민주당 역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통해서 작은 정당의 국회 진출을 가로막았다. 이 점에 있어서 두 개의 거대 정당은 국민 앞에 사죄해야 마땅하다. 요약하건대 현 정부를 독재 체제이고, 전체주의 집단이라는 굥석열의 주장은 촛불 집회의 민주화 운동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말과 다름이 없다.

 

4. “한국 사회에서 오래 전에 친일 세력이 척결되었으며, 공정 그리고 상식의 기반이 다져졌다.” 굥석열의 이러한 주장은 한마디로 거짓이다. 이는 해방 전후 시대의 역사를 고찰하면 분명해진다. 제헌 국회의원들은 반민족행위특별 조사위원회 (약칭: 반민특위)를 결성하여 친일 청산 내지 일제 강점기에 활양한 친일파를 처벌하려고 하였다. 이때 일본의 통치 구조를 존속시키고 친일파를 대거 등용한 이승만 정권은 안보를 이유로 반민특위의 활동을 와해시켰다. 이로 인하여 남한에서는 친일 세력에 대한 척결은 한 번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는 해방 전후사를 연구하는 역사학자들의 공통된 견해이다.)

 

이 때문에 사회적 정의, 공정과 상식은 가진 자 내지 친일 세력을 위한 것이 되었다. 그밖에 한 가지 물어볼 게 있다. 과연 검찰은 지금까지 "누구를 위해서cui bono" 공정과 상식을 실천해 왔는가? 그들은 한국 사회의 상류층의 이권을 위해서만 공정과 상식을 적용해오지 않았는가? 감옥에 가면 돈 없고 빽 없는 사람들만 오골오골 앉아 있다. 돈 많고 힘 있는 사람들은 끼리끼리 다 해먹고, 죄를 지을 경우 벌금을 내고 유치장에 조금 머물다가 밖으로 나온다. 이 점을 고려할 때 “한국 사회에서 오래 전에 친일 세력이 척결되었으며, 공정 그리고 상식의 기반이 다져졌다.”는 그의 발언은 거짓이다.

 

5. “625 사변 당시에 미군은 주둔군이고 소련군은 점령군이다.” 굥석열의 이러한 발언에서는 일방적 근시안적 시각이 그대로 드러난다. 그렇다면 북한 영토는 적국의 땅인가? 역사가들은 고조선과 고구려를 한민족의 영토로 규정하지 않았던가? 맥아더 포고령1호 1945년 9월 7일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38이남을 점령한다. 항복문서에 따라 승리에 빛나는 우리 군대는 오늘부터 38선 이남 한국영토를 점령한다.” 전쟁이라는 일촉즉발의 한계상황 속에서는 점령과 주둔을 구별한다는 것 자체가 탁상공론이다. 게다가 반공 그리고 국가보안법만을 유일한 정답으로 인정하는 굥석열의 역사 인식에는 시대착오적 오류가 드러나고 있다.

 

마오쩌둥의 중국, 김일성의 북한은 엘리트 관료주의의 사회주의 국가체제였다. 이러한 체제는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공산주의와는 너무나 이질적인 것이었다. 특히 마르크스는 19세기에 유럽에서 활동한 과거의 지식인 한 사람이며, 그의 사상 역시 이후의 시대에 출현한 마르크스주의와도 구분된다. 반공법이 사라지고, 국가보안법만 남게 된 것은 바로 그러한 구분이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국가보안법은 지금 이 순간에도 개개인을 억압하고 탄압하기 위한 쇠사슬로 기능하고 있다. 20세기의 구태의연한 쇠사슬은 사라져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굥석열은 오로지 법 규정만 맹신하고 사람들을 감옥에 집어넣을 생각으로 가득 차 있다.

 

6. "문재인 정부는 지지율을 끌어올리기 위해서 일부러 부동산 가격을 치솟게 하였다." 주지하다시피 부동산 시세의 변화는 정부의 경제 정책에 의해서 좌지우지하는 게 아니라, 경제 지표 및 시세 차이에서 결정된다. 정부가 부동산 가격을 인위적으로 상향, 혹은 하향 조정할 직접적인 방법은 없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실패한 까닭은 공공주택의 공급을 원활하게 하지 않은 데 기인한다.

 

그런데 정부가 지지율을 높이기 위해서 부동산 가격을 폭등시켰다는 주장은 거짓말이며, 현 정부를 비판함으로써 자신의 표를 더 많이 얻기 위한 선동 선전의 전략이다. 이러한 거짓말에 속아 넘어가거나, 그것을 용인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바보 아니면, 전략적으로 굥 후보를 지지하는 자일 것이다.

 

 

7. “나는 현 정부의 탈 원전 정책에 반대한다.” 여기서도 굥석열의 편협하고 짧은 시각이 그대로 드러난다. 원자력은 당장 에너지를 활용한다는 점에서 편리한 것 같지만, 실제는 엄청난 부작용이라는 뇌관을 안고 있다. 체르노빌과 후쿠시마 사태는 원전 사고가 생태계에 얼마나 커다란 악영향을 끼치는지를 여지없이 보여주었다. 설령 원전사고가 발생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엄청난 양으로 발생하는 핵폐기물을 처리하는 일은 그야말로 골칫덩어리이다. 특히 고준위 폐기물은 후세 사람들에게 수십만년 동안 안겨주어야 하는 끔찍한 재앙과 같다.

 

또 한 가지 문제가 있다. 50년만 지나면 원자로를 작동시키는 플루토늄의 자원은 지구상에서 완전히 고갈된다. 그런데도 원자력만 앞세울 것인가? 재생 가능에너지로 전환해야 하는 것은 세계적인 추세이다. 그것은 대안이 아니라 필수다. 독일은 이미 몇 년 전에 2030년까지 독일 내의 원자력 발전소를 폐기하기로 결정하였다. 원자력학과 학생들 앞에서 원자로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대신에, 재생 가능 에너지에 관한 관심을 높이고, 에너지 전환의 중요성을 지적하는 게 선생의 도리가 아니겠는가?

 

8. 가족의 죄는 덮어주고, 타인의 죄를 벌하는 자가 검찰총장인가? 법을 맹신하는 그에게 다음과 같이 묻고 싶다. 검사는 어떤 사안이 형법상으로 중차대한 형벌인가, 아닌가를 가려내는 자가 아닌가? 국민들은 음주운전, 법인 카드 사용, 형수 욕설 등의 사건 역시 범죄에 해당하고 도의적인 잘못이지만, 형법상으로 엄한 처벌을 받아야할 만큼의 중차대한 범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에 비하면 김건희의 주가조작은 형사입건 대상이 아닌가?

 

그의 장모가 국민건강 보험공단으로부터 22억이라는 요양급여를 편취하여 징역 3년 형을 선고받았다. 굥석열이 검찰 총장으로 재직할 때 그의 장모만이 예외적으로 형을 면제받았다. 헌재 검찰은 후환이 두려워 이들을 고소조차 하지 못하거나, 미적거리고 있다. 윤석열은 경제적으로는 상류층에 속하는, 엘리트 검사로서 지금까지 오로지 높은 자리에서 세상을 내려다보며 살아왔다. 과연 그가 과연 한반도의 미래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고, 낮은 자세로 국민들을 위해 봉사할 수 있을까? 대한민국의 미래가 암담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