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나의 글

"망각의 시대에 명작 읽기" 서문

필자 (匹子) 2022. 4. 19. 06:46

출전 그리고 감사의 말씀

 

“나는 일찍이 하루 종일 생각해 본 적이 있었으나, 잠깐 공부한 것만 못하였다.” (荀子)

“Like a bridge over the trouble water, I will lay me down.” (Simon & Garfunkel)

 

1.

망각의 시대에 간행된 학술서적 한 권 - 내 눈에는 마치 강보에 싸인 아기처럼 비친다. 아기의 이름을 『망각의 시대에 명작 읽기. 동독문학 연구 3』으로 작명해 보았다.  『망각의 시대에 명작 읽기. 동독문학 연구 3』는 2000년 이후의 연구 모음집으로서, 지금까지 세인의 관심사를 끌지 않은 명작들을 천착한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은 동독문학의 잠정적 정리 작업이라고 여겨도 좋을 듯하다. “동독문학 연구 3”이라는 부제가 첨부된 이유는 그 자체 명약관화하다.  필자는 나중에 간행될 『전환기 독일 문학』에다가 “동독문학 연구 4”라는 부제를 달려고 한다. 왜냐하면 필자의 동독문학 연구는 종결된 것이 아니라, 계속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2.

지금까지 동독 문학을 주 전공으로 삼은 데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청년 시절에 국문학과 영문학을 선택하지 않은 것은 타인의 도움 없이 원서를 읽을 수 있으리라는 오만한 자신감 때문이었다. 그런데 지금까지 나는 한문 서적과 영어 원서를 얼마나 제대로 읽었는가? 이렇게 자문하는 나로서는 부끄러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 대학 다닐 때부터 독문학에서 주로 다루는 작가, 괴테, 카프카, 헤세, 릴케, 토마스만을 집중적으로 공부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대신에 70년대에 브레히트와 루카지 등에 대해서 관심을 기울였으나, 공부할 길이 막막했다. 왜냐하면 당시 한국의 독문학계에는 동독문학 연구자가 거의 전무했기 때문이다. 당시의 학문적 풍토는 반공주의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 있지 않았다. 말하자면 동독문학을 공부한다는 것 자체가 반체제적이라고 간주되었던 것이다. 이를테면 나는 70년대 말에 다음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박정희 정권 당시 몇몇 학자들은 막스베버의 책을 독일에서 구입하여 귀국하다가 공항에서 그것들을 압수당하곤 하였다고 한다. 세관원은 “막스Max”를 “마르크스Marx”로 착각하고, 엄정 중립적이고 보수적인 프로테스탄트 사회학자를 한 명의 머리에 뿔 달린 공산주의자로 둔갑시켰다는 것이다. 지금은 농담조로 이에 관해 말할 수 있지만, 당시는 반공법이라는 서슬 푸른 칼날이 힘없는 식자들로서는 조심할 수밖에 없었다.

 

사회주의 국가인 구동독 역시 사람 사는 곳이며, 그곳의 삶 역시 정치적 체제가 우리와는 다를 뿐, 구동독 인들의 삶 그리고 그들의 갈망, 고뇌 그리고 해원 등은 우리와 별반 차이가 없다는 것을 80년대에 유럽에서 깨닫게 되었다. 1981년에 나는 처음으로 베를린 프리드리히 가의 체크 포인트 찰리에 서성거렸지만, 도저히 구동독으로 입국해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광주에서 사람을 때려잡는 독재 국가에서 자라난 사람이 동독에 입국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차제에 곤욕을 치를 게 뻔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몇몇 한국인들과 함께 서베를린으로 발길을 돌려야 했다. 마음속 또 다른 자아는 “그래도 한 번 시도해보지 그랬어?”하고 겁에 질린 나를 책망하고 있었지만, “대신에 책과 잡지를 통해서 정보를 입수하면 되지 않는가?”고 자신을 다독거렸다. 물론 동베를린의 방문은 통일 이후에야 가능했다. 80년대만 하더라도 동독문학의 연구는 내외적으로 자극을 가하는 일감이었지만, 이제는 역사의 영역으로 완전히 이전되고 말았다.

 

3.

지금까지 동독문학의 연구는 세 권으로 간행된 나의 저서, 『유토피아 연구와 크리스타 볼프의 문학』 (개신, 2001) 『동독문학 연구. 동독문화 정책 개관』 (한신대 출판부, 1994/ 2004) 『떠난 꿈, 남은 글. 동독문학 연구 2』(한마당, 1999) 출판으로 이어졌다. 다시 읽어보니 이것들은 참으로 볼품이 없다. 불현듯 순자의 말이 뇌리에 떠오른다. “나는 일찍이 하루 종일 생각해본 일이 있었으나, 잠깐 공부한 것만 못하였다. 吾嘗終日而思矣 不如須臾之所学也” 

 

순자의 글은 젊은 시절의 나를 자극하여, 사색보다도 학문 수련을 중시하라고 가르쳤다. 나의 시가 나의 딸, 나의 사리 舎利라면, 이 책은 나의 아들, 어설픈 도자기의 에스키스이다. 분명히 이 책에도 하자가 드러날 것이다. 나중에 다시 내용상의 하자를 수정할 기회가 주어졌으면 좋겠다.

 

혹자는 사라진 나라의 문학을 공부하는 게 얼마나 도움이 되는가? 하고 항변했지만, 전환기 이후에도 이에 대한 관심은 내 마음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지금도 나의 내공은 일천하며, 동독 문학의 영역에는 아직도 연구되지 않은 명작들이 많다고 굳게 믿었기 때문이다. 비록 나라는 사라졌지만, 그곳에서 사람들은 같은 지역에 계속 살고 있으며, 동독문학 역시 국가의 몰락과 함께 사장될 수는 없다. 특히 사회주의 문화가 폐허로 무너져 내렸지만, 그 속에 파묻힌 명작들은 다시 발굴되어야 한다고 판단되었다. 

 

처음에 공부를 시작할 무렵에는 동독문학을 공부하는 게 북한과 북한을 이해할 수 있는 좋은 방안이라고 여겼지만, 이러한 생각이 착각일 수 있다는 점을 나중에 깨닫게 되었다. 왜냐하면 북한문학과 동독문학은 하나의 사회주의의 틀에 의해서 재단될 수 없을 정도로 제각기 다른 역사적 배경과 독자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동독의 문화는 20세기 초부터 이어온 독일 사회주의 문화의 전통적 맥락 속에서 추적해나가야 하고, 북한의 문화는 조선 및 일제 식민지 역사 그리고 중국 문화 혁명적 영향과의 관련성 속에서 접근해 나가는 것이 올바른 방향일 것 같았다. 그렇다고 해서 북한과 동독의 문화가 근접 불가능할 정도로 별개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이하 생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