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철학 이론

박설호: (4) 김상일의 "腦의 충돌과 文明의 충돌"

필자 (匹子) 2023. 4. 11. 09:46

(앞에서 계속됩니다.)

 

9. 홍산문화 그리고 동학의 중요성: 미래의 문화는 저자에 의하면 동양과 서양, 중국과 한국, 남성과 여성, 인격신과 기 에너지 등의 대립이 아니라, 서양의 이원론적 균열과 충돌 대신에 조화와 화합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한다. 서로 다른 두 개의 문화는 충돌의 과정에서 승리와 패배로 등을 돌릴 게 아니라, 상호적으로 서로 장점을 교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치 뇌량이 그러하듯이 좌뇌적인 무엇은 저자의 견해에 의하면 우뇌적인 무엇과의 결합 시에 상호 협력하고 아우르는 과정을 거쳐야 진정한 미래의 건전한 문화를 창조해낼 수 있다고 한다. 지금까지의 “남성 중심적 신학 Theology”은 평등 호혜의 의미를 받아들여서 “여성 중심적 신학 Thealogy”으로 변해야 한다. 이 점이야 말로 단군 신화에 언급되는 재세이화 (在世理化)의 정신이 아닐 수 없다.

 

이에 대한 구체적인 예는 저자에 의하면 고대 한국의 홍산 문화 그리고 동학의 창시자, 최수운에게서 발견된다. 다만 여기서 우리는 저자가 강조하는 홍산 문화와 동학을 제각기 별개의 이질적인 무엇으로 파악해서는 안 될 것이다. 왜냐하면 동학은 처음부터 내선의 특징을 지닌 고대의 무속과 선 (仙)을 통해서 본연의 자양을 공급받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동학이 인격신인 “하날님”과 비인격적 “지기 (至気)”를 동시에 수용하고 이를 결합시킬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선교 (仙教)의 영향 때문이었다.

 

이를 고려할 때 동학은 세계 역사의 차원에서 고찰할 때 두 개의 근본적인 사상과 감정을 조화롭게 수용한 것으로 인정받아야 마땅하다고 한다. 그 이유는 서양과 동양 사이의 사상적 대립, 중국과 한국 사이의 권력 다툼, 남성과 여성 사이의 갈등 등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사상적 체계가 동학이기 때문이다.

 

10. 한 가지 아쉬운 점, 결론을 대신하여: 한 가지 아쉬운 것은 『脳의 충돌과 文明의 충돌』에서 언급되고 있는 홍산 문화와 동학사상의 의미가 정치적 차원에서의 해석 확장을 통해서 본연의 의미가 약간 퇴색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가령 저자는 마지막 장에서 김대중의 민주주의론 그리고 김일성의 주체사상을 언급하면서 문명의 충돌과 관련되는 어떤 구체적인 정치적 해결책을 덧붙이고 있다.

 

자고로 바람직한 방향을 제시하는 당위성으로서의 사고는 필자의 견해로는 주어진 현실 정치의 방향을 찾으려는 정책과는 일차적으로 구분되어야 한다. 김대중과 김일성의 정치적 입장과 그들의 이상이 아무리 한국의 선맥 문화의 전통에 입각해 있다손 치더라도, 실제 현실에서는 수많은 오해와 비극을 불러일으킨 게 사실이다.

 

이를테면 한반도에서 발생한 625 사변을 생각해 보라. 설령 당시 김일성의 가슴속에 한민족의 통일을 위한 거룩한 목표가 자리했다 하더라도, 이를 도모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전쟁은 외세의 개입으로 수많은 사람들의 죽음을 초래하고 말았다. 설령 삼태극의 구조가 아무리 하나와 여럿으로 명명되는 모순을 극복할 수 있는 해결책을 담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 수단은 무엇보다도 평화를 전제로 해야 한다. 물론 분단의 해결은 저자가 역설한대로 세계사의 갈등과 비극을 극복하는 상징적 의미를 지닌다. 그렇지만 이러한 해결은 차제에 평화적 중립 통일의 기치 하에 제시되는 어떤 합리적이며 실천 가능한 정책을 통하지 않으면 그 자체 무의미할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