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한국 문학

(명시 소개) 함석헌의 시 (2) "내 마음에다 칼질을 했을 뿐이다."

필자 (匹子) 2023. 2. 13. 11:30

만 리 길 나서는 길

처자를 내맡기며

맘 놓고 갈 만한 사람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이 다 나를 버려

마음이 외로울 때에도

“저 맘이야”하고 믿어지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탔던 배 꺼지는 시간

구명대 서로 사양하며

“너만은 제발 살아다오” 말할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불의의 사형장에서

“다 죽어도 너희 세상 빛을 위해

저만은 살려 두거라.” 일러 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잊지 못할 이 세상을 놓고 떠나려 할 때

“저 하나 있으니”하며

빙긋이 웃고 눈을 감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의 찬성보다

“아니.” 하고 가만히 머리 흔들 그 한 얼굴 생각에

알뜰한 유혹을 물리치게 되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 함석헌의 시는 시집 『수평선 너머』에 수록되어 있는데,「그 사람을 가졌는가」는 함석헌의 대표작에 해당하지요. (함석헌: 수평선 너머, 함석헌 저작집 23, 한길사 2009, 243 - 244쪽.)

: 네, 이 작품은 이해하기 쉬우며, 시가 말하는 바는 직접적으로 우리의 머릿속으로 그리고 가슴속으로 파고듭니다. 의인이라면, "불의의 화형장"이  어떤 맥락에서 이해되는지 파악하리라고 여겨집니다.

 

: 다만 한 가지 의혹이 남아 있습니다. 마지막 연에 등장하는 “알뜰한 유혹”이라는 표현입니다. 이 표현의 함의를 잘 모르겠어요. 왜 시인은 유혹을 사악하다고 표현하지 않고, 알뜰하다고 표현했을까요?

: 여기서는 추측만이 가능할 뿐입니다. 시어의 함의를 전적으로 해석할 수는 없지요. 흔히 매사에 철저하고, 빈틈없이 잘 살아가는 가정주부를 알뜰하다고 합니다. 알뜰한 사람은 자신의 삶에 충실한 분들이지요. 그러나 자신의 무사안일의 삶을 저버리고 고난의 가시밭길을 걸으면서 이타주의를 실천하는 사람은 자신의 행복을 장담할 수 없습니다.

: 선생님의 말씀을 종합해보면, “알뜰한 유혹”은 자신의 삶에 충실하게 살려고 하는 일반 사람들의 삶에 대한 유혹을 가리키겠군요.

 

: 잘 알겠습니다. 이번에는 「그 사람을 가졌는가」의 주제에 관해서 말씀해주시지요?

나: 함석헌의 시는 다섯 가지 관점에서 분석될 수 있습니다. 1. 전기적 관점, 2. 역사적 관점, 3. 정치적 관점, 4. 신학적 관점, 5. 철학적 관점. 첫째로 작품은 시인의 개인사의 측면에서 분석될 수 있습니다. 먼 길을 떠나는 “”는 자신의 모든 것을 맡깁니다.

너: 그렇다면 “맘 놓고 갈만한” 친구는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분일 수 있겠네요.

 

나:자신의 모든 가족을 의탁할 수 있는 친구라야 할 것입니다. 예컨대 김교신과 같은 분일 수 있어요. 둘째로 역사적 관점에서 고찰할 때 시의 주제는 주권을 강탈당한 민족에 대한 슬픔 그리고 후세 사람들을 위한 희생적 자세와 연결될 수 있습니다. 제 5연에서 시인은 “이 세상을 놓고 떠나려 할 때” 누군가를 떠올리며 미소 짓습니다. 누군가는 어디선가 독립 운동을 전개하는 친구, 동지, 제자를 가리킬 수 있지요.

: 정치적 관점도 이러한 역사적 관점과 유사하겠군요?

 

: 네, 세 번째 정치적 관점은 반독재 민주화의 투쟁과 연결되는데, 3연과 6연에서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시인은 “온 세상의 찬성” 앞에서 진실로 정의를 토로할 수 있는 분, 죽음 앞에서 생존을 양보할 수 있는 분을 갈구합니다.

: 그렇다면 시인은 자신을 희생하면서 나라와 정의를 도모하려는 의인을 갈망하는 셈이로군요. 이를테면 두 번째 스키피오와 같은 엄청난 대범함을 보이는 장부 말입니다.

: 두 번째 스키피오는 지배자의 면모를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여기서는 해당하지 않을 것 같은데요? 함석헌의 시가 가리키는 그 분은 오히려 고행의 길을 걷는 신앙인 내지 지사에 근친합니다.

 

: 그렇다면 종교적 의미에서 이해될 수 있는데...

: 나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는 네 번째 종교적 관점에 해당하지요. 시적 자아는 다음과 같이 천명합니다. “온 세상이 다 나를” 저버릴 때에도 믿음과 사랑을 베푸는 자가 있다고 말입니다. 그는 바로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어쩌면 붉은 그리스도일 수 있지요. 왜냐하면 그분은 교회 내부가 아니라, “힘들게 살아가고 무거운 짐을 진 채 생활하며, 경멸당하고 모욕당하는 존재로 취급받는” 사람들 곁에 머물고 있기 때문입니다 (Karl Marx: Zur Kritik der Hegelschen Rechtsphilosophie, Vorrede, MEW, Bd 1, Dietz: Berlin 1968, S. 385.)

 

: 함석헌 선생의 사상을 마르크스와 비교하는 것은 의외가 아닐까요?

: 그렇지 않습니다. 유럽에서의 신비주의 사상과 평신도 운동을 생각해 보세요. 가령 에크하르트 선사Meister Eckhart구도의 정신을 생각해 보세요. 그분은 누구든 간에 기도와 명상을 통해서 어떤 “고정되어 있는 지금nunc stans”의 시점에서 성령의 본질을 깨달을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모든 권위주의 내지 지배의 체제 등을 부정하는 신앙은 탈권위주의에 해당하며, 이것은 사랑의 공산주의와 연결될 수 있다고 봅니다.

 

: 마지막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함석헌 시의 다섯 번째의 철학적 관점은 어떻게 설명될 수 있을까요?

: 우리는 제 4연에서 어떤 해석의 단초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불의의 사형장에서/ “다 죽어도 너희 세상 빛을 위해/ 저만은 살려 두거라.” 일러 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이 대목은 한 시대를 뛰어넘어 계승될 수 있는 믿음과 사상을 암시해주고 있습니다. 스승과 제자 사이의 맹약을 거론하고 있다고나 할까요? 예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인도의 종교시 『바가바드기타Bhagavad Gita』가 있습니다.

 

: 이 문헌과 칼릴 지브란의 『예언자』 등을 번역한 분이 함석헌 선생이지요?

: 그렇습니다. “위대한 분의 노래”라고 번역되는 『바가바드기타』에는 두 명의 인물이 등장합니다. 은사인 크리슈나 그리고 제자인 아르주나가 그들이지요. 크리슈나는 전쟁터에서 싸우는 왕자인 아르주나에게 신의 본질과 인식의 방식에 관해서 가르쳐줍니다. 갈등과 거짓 그리고 위선으로 뒤엉킨 세상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반드시 신의 가르침이 필요하다고 설파합니다. 인간의 문명은 언젠가는 파괴되지만, 힌두교에서 말하는 근원적 의식에 대한 경험은 영속적으로 머문다는 것입니다.

 

: 중요한 것은 “세상”의 “”이며, 이를 계승하는 분들은 뜻있는 후세 사람들이라는 말씀이로군요.

: 네 시인은 여기서 작은 불빛을 의식하고 있습니다. 이는 마치 아르주나처럼 뜻을 같이하는, 이름 모른 제자들에 대한 기대감과 결부된 것이지요. 이것이 바로 기독교가 말하는 성령의 불꽃이로 이해될 수 있어요. 마하트마 간디 역시 자주 『바가바드기타』를 읽으면서 산상수훈에 없는 어떤 깊은 위안을 느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여기에는 작지만 지속적으로 명멸하는 성스러운 불꽃을 체험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 말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