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계몽주의의 유토피아: 17세기 그리고 18세기에 이르면 지식인들은 더 이상 신, 자연 그리고 전통 등을 맹신하지 않고, 인간의 고유한 이성을 기대하기 시작합니다. 과거에 신의 권능이라는 절대적 권위는 어쩌면 하나의 형이상학적 허상일 수 있다는 사고가 태동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로 인하여 신의 권능은 자연의 권능 나아가, 인간의 오성의 영역으로 이전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이와 병행하여 황금의 시대에 꿈꾸던 찬란한 행복은 인간의 오성의 힘으로 “지금, 여기”에서 실현될 수 있다는 믿음이 강화되었습니다. 계몽주의 시대에 이르면 오로지 인간이야 말로 정치적 사회적 세계의 근원이며, 나아가 세계를 새롭게 창조해낼 수 있는 존재라고 서서히 인식되었습니다. 이러한 기본적인 사고야 말로 계몽주의의 유토피아를 이해할 수 있는 사상적 출발점으로 작용합니다.
2. 절대 왕정과 계몽주의 유토피아: 정신 사조로서의 계몽주의는 토마스 니퍼다이에 의하면 유토피아에 가장 근접한 사고일 수 있습니다. (Heyer 56). 그 이유는 계몽주의가 찬란한 미래를 갈망하는 낙관주의의 자세를 취하는데, 이는 유토피아의 보편적 의향과 일치되기 때문입니다. 놀라운 것은 계몽주의의 사고가 절대 왕정의 폭력과 병행하여 싹이 텄다는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계몽사상은 정치적 경제적 실천으로 이어지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프랑스혁명이 발발할 때까지 시민들은 절대 군주에게 모든 힘을 강탈당해 있었습니다. 지식인들 역시 자신의 지조와 이론을 사적인 영역 내지 문학 철학과 같은 형이상학적 영역에서 연마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람들이 절대주의의 시스템을 직접적으로 공격하는 대신에 미덕과 이성을 추구하며, 절대주의의 정치체제 내지 비합리적인 사회적 토대를 직접적으로 강하게 비판할 수 없었던 것은 바로 그 때문입니다. 대신에 계몽주의 운동에서 일차적으로 나타난 것은 종교적 관용이라는 도덕적 자세였습니다.
3. "스스로 생각하라 Sapere aude": 임마누엘 칸트는 계몽이 “자기 자신의 잘못에서 비롯된 미성년의 상태로부터의 출구”라고 정의를 내린 바 있습니다. 계몽은 말 그대로 “(편견과 무지를 밝혀주는) 빛 enlightenment”이며, 밝음의 사상 내지 깨달음의 철학이라는 것입니다. 미성년의 상태의 인간은 타인 그리고 신의 뜻에 굴복하며 살아갑니다. 노골적으로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왕의 명령에 따라, 혹은 전지전능한 신의 계명에 따라 사고하고 행동하는 자가 바로 미성년 상태의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이를 타파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칸트에 의하면 “스스로 (현명하게) 생각하라 Sapere aude.”는 슬로건을 따르는 일이라고 합니다. (Kant: 482).
계몽주의자들은 내심 왕권과 신권이 결합된 상부의 이데올로기를 타파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절대 왕정의 시대에 이러한 입장을 명시적으로 드러낸다는 것은 매우 위험했습니다. 그렇기에 볼프, 라이프니츠, 레싱, 디드로 등은 종교적 관용을 학문적 예술적 관건으로 이해했으며, 토마지우스는 자유주의의 관용을 위해 노력했을 뿐입니다. 볼테르와 같은 냉정하고도 직선적인 계몽주의자도 신권을 비난했을 뿐, 절대왕정의 폭력에 직접적으로 이의를 제기하지는 못했습니다. 계몽주의의 사상이 독일과 프랑스가 아니라, 러시아, 폴란드 그리고 발트 해 지역에서 특히 프리메이슨 운동과 함께 구체적 정치성을 드러낸 것은 바로 그 때문입니다. (Krauss: 16).
4. 이신론, 범신론 그리고 기계적 유물론이 지니는 혁명적 특성: 우리는 가장 급진적 계몽주의 철학자로서 스피노자Spinoza를 지적할 수 있습니다. 스피노자는 왕권을 뒷받침해주는 결정적 토대가 무엇보다도 신의 권능이라고 믿었으며, 어쩌면 신의 권능이 자연의 힘과 동일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게 매우 중요할 것 같았습니다. 그게 바로 절대주의의 허구적 이데올로기를 타파할 수 있는 첩경이라고 스피노자는 확신하였습니다. 오늘날까지 영향을 끼치고 있는 계몽주의자들 가운데는 유대인들이 많은데, 이들은 주로 스피노자 사상을 신봉하였으며, 프리메이슨 단체와도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습니다. (장세룡 A: 523).
계몽주의가 종교적 관용을 전면으로 내세울 때, 그에 대한 논거로 작용한 것은 이신론과 범신론이었습니다. 신의 존재가 바로 자연의 존재라고 주장하는 것은 간접적으로 왕의 이른바 천부적인 권리를 약화시킬 수 있는 논거로 활용되었습니다. “신 혹은 자연 Deus sive natura”이 바로 스피노자의 범신론의 핵심 사항이었습니다. 그밖에 신앙은 이성적 진리와 관계될 뿐, 인간의 삶에 직접적으로 개입할 수 없다는 사고도 출현합니다.
이러한 이신론의 근본 자세는 결국 권력을 비호하는 사제들의 힘을 약화시키기에 충분한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이신론과 범신론의 혁명적 특성을 간파할 수 있습니다. 그밖에 우리는 기계주의 유물론이 계몽주의 시기와 병행하여 출현했다는 사실을 지적할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라 메트리 La Mettrie, 돌바크 d'Holbach 등의 유물론의 사고는 싫든 좋든 간에 종교의 이데올로기의 권한을 약화시키는 데 기여했습니다.
5. 사회 계약의 이론: 왕권이 신의 뜻이 아니라면, 그것은 과연 어디서 비롯되는 것일까요? 만약 권력이 하나의 독자적 자연법칙과 동일하다면, 그것은 어쩌면 사회적 합의에 의해서 정해진 게 아닐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권력은 오랫동안 이른바 사제들이 내세운 하늘의 뜻으로서의 운명론적 철칙에 의해서 처음부터 확정된 것처럼 간주되어온 게 아닐까요? 이러한 일련의 질문을 통해서 계몽주의자들은 태초의 자연 상태 그리고 사회 계약의 문제에 관해서 골몰해 왔습니다.
여기서 중시되는 것은 무엇보다도 사회 계약과 관련되는 모델입니다. 사회의 계약에 관한 이론은 무엇보다도 인간의 관점에서 추구해나가는 기본적 사고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회 계약의 이론에서 가장 중점적으로 다루어지는 것은 다음과 같은 질문입니다. 과연 인간이 그룹을 지어 함께 생활하던 최초의 자연 상태는 어떠했는가? 개별적 인간들은 과연 어떠한 이유로 공동체를 형성하게 되었을까? 험난한 자연에서의 삶에서 생존하기 위해서 개개인들이 협동해야 했는데, 이는 인간의 본성 속에 도사린 협동심의 발로인가? 아니면 인간의 본성은 이기적인 속성으로 가득 차 있는가? 하는 물음을 생각해 보세요.
이러한 질문은 하나의 결론으로 수렴되기 어려운 난제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에 관한 사실적 고증을 경험적으로 찾아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확실한 것은 인간 사회의 공동체가 자연적으로 주어져 있거나, 신에 의해서 만들어진 게 아니라, 개별적 인간이 합리적인 생각을 지닌 채 이성적으로 만들어진 인위적 질서 체계라는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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