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철학 이론

볼프강 하리히의 성장 없는 공산주의

필자 (匹子) 2020. 5. 19. 13:47

 

오늘은 마르크스주의 철학자, 볼프강 하리히 (1923 - 1995)의 주장에 관해서 비판적으로 언급하려고 합니다. 하리히는 제 2차 세계대전 이후에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다가 50년대에 아우프바우흐 출판사 등에서 편집자로 일했습니다. 1956년 구동독 정부와의 갈등을 빚어서 반국가적 행위라는 이유로 10년간 감옥에서 지내야 했습니다, 출옥 후에 그는 주로 루드비히 포이어바흐Ludwig Feuerbach의 철학과 장 파울의 문학에 몰두한 바 있습니다. 70년대 이후로 생태주의를 연구하여 1975년 그의 책 성장 없는 공산주의? 바뵈프와 로마클럽 보고서. 프라이무트 두베와의 여섯 번의 인터뷰 그리고 그에게 보내는 편지 Kommunismus ohne Wachstum. Babeuf und der Club of Rome. Sechs Interviews mit Freimut Duve und Briefe an ihn가 간행되었습니다. 바로 이 책에서 유토피아의 시고에 관한 내용이 중요한 이슈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동독이 몰락할 무렵에 하리히는 니체 철학을 연구하였으며, 니체의 사상이 구동독에서 금지되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하였습니다.

 

성장 없는 공산주의? Kommunismus ohne Wachstum에서 하리히는 국가 중심적인 지배와 국가와 관련되는 유토피아의 사고의 전통을 답습하고 있습니다. 과거에 그는 체제파괴적인 자세로 휴머니스트의 길을 걸어왔는데, 70년대 이후로 의외로 국가중심의 권위적 구조의 시스템에 동조하고 있습니다. 이는 이전의 그의 행적에 비하면 무척 의외라는 생각이 듭니다. 한마디로 그는 개인의 사생활을 완전히 통제하고 개개인의 견해를 조절하는 공산주의의 국가 체제를 통해서 인류에게 닥친 긴급하고 당면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막강한 권력을 지닌 공산주의 세계 국가가 바로 그 국가 체제입니다. 이러한 체제에 비하면 에드워드 벨러미Edward Bellamy의 중앙 집권적 유토피아는 거의 무해할 정도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국가는 산업을 주도하고, 인간 계층을 경제적 기준에 따라 재배치시켜야 하며, 가정 및 후세대를 통솔해야 하고, 개개인의 욕구를 충족시켜주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개개인에게 토지와 재화의 소유권을 부여해서는 안 되며, 국가가 가정이 몇몇의 아이를 지녀야 하는지, 어떠한 노동을 수행해야 하며, 어디에 거주해야 하는지 등 국가가 모든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밖에 하리히는 19세기의 유토피아의 진보에 대한 낙관주의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거부하고 있습니다. 가령 벨러미 외에도 초기 사회주의자들이 추구했던 진보의 이념 그리고 마르크스의 기본적 이념을 급진적으로 부인하고 있습니다. 인류의 미래는 생태계의 파괴로 인한 파국 그리고 국가와 국가 사이의 갈등 잘못된 재화의 분배로 인하여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소비도 제한되지 않을 것이며, 공산주의가 중요하게 생각했던 필요에 의한 노동의 질서 역시 바람직한 방향으로 수행되지 않으리라는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까닭에 오늘날 필요한 것은 하리히의 견해에 의하면 막강한 힘을 지닌 국가의 권력밖에 없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는 세계 국가만이 소비, 가족계획 그리고 재화의 분배 등을 관철시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리히는 오로지 공산주의 국가 체제만이 필연적인 구조의 프로그램을 실천에 옮길 수 있다고 합니다.

 

물론 하리히가 진단하는 세계의 상황 및 이와 결부된 문제에 대한 진단은 그 자체 틀리지 않습니다. 로마 클럽 보고서 그리고 현재의 세계의 정황 등을 하리히는 정확하게 간파하고 있습니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구체적인 환경 문제에 관한 토론 역시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완전한 공산주의의 통제 국가를 통해서 미래의 어떤 출구를 찾을 수 있다는 그의 지적은 치명적인 하자를 드러냅니다. 이를테면 하리히가 강하게 도입하려는 합리화의 원칙, 감시감독을 통한 조작 등은 도덕적 측면에서 도저히 수긍하기가 힘든 무엇입니다. 하리히가 상상해낸 완전한 공산주의 구도의 사회는 거대한 관료주의의 기관으로 돌변하여 개개인들에게 새롭게 어떤 부당한 요구를 행할 수 있습니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웰스의 세계국가 유토피아에서 마음대로 활동하는 사무라이 엘리트들이 떠올릴 수 있습니다.

 

하리히가 추구하는 공산주의의 리바이어던은 개개인의 권한을 완전히 억누르게 될 가능성을 여지없이 드러냅니다. 물론 그것은 사람들의 고유한 권한 뿐 아니라, 미래를 개척할 책임과 능력을 부여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모든 것은 국가 중심의 중앙집권적 통제에 의해서 영위될 뿐입니다. 게다가 이러한 국가는 엘리트에 의해서 장악될 소지가 매우 큽니다. 하리히에게 중요한 것은 유토피아의 사고에 있어서 공동의 안녕이 아니라, 만인의 생존입니다, 그처럼 절박하기 때문에 그는 막강한 공산주의 국가의 통솔을 제시한 것입니다. 만약 인간에게 자신의 개성을 발전시킬 가능성이 주어지지 않는다면, 살아야 할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요? 이에 대해서 하리히는 의식적으로 아무런 대답을 들려주지 않습니다. 나중에 하리히는 자신의 입장을 약간 수정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다음과 같이 확신하고 있습니다. 생태 위기는 오로지 강력한 구조와 국가 기관의 도움으로 해결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