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철학 이론

서로박: 그람시의 '옥중 서한'

필자 (匹子) 2020. 9. 11. 10:53

안토니오 그람시 (Antonio Gramci, 1891 - 1937)의 "옥중 서한 (Littere dal carcere)"은 그람시가 죽은 뒤 10년 후인 1947년에 간행되었다. 그람시는 20년대에 이탈리아 공산당 중앙위원회의 당원이었다. 그는 1928년 “국가의 안전을 위협하고 시민전쟁을 준비했다.”는 이유로 10년 구금 형을 선고받았다. 그의 편지는 1926년부터 1937년 사이에 집필된 것이다. 그람시는 정치적인 이유로 모든 사람들에게 편지를 보낼 수 없었다. 편지의 수취인은 가족에 국한되었다. 가령 러시아 출신의 부인과 아이들, 로마에 살고 있는 처제, 타냐 슈흐트, 어머니, 사르디니아에 있는 형제들이 수취인이었다.

 

 

 

 

 

 

그람시는 편지에서 수감 생활로 인한 고통, 자신의 육체적 상황 등을 상세히 기술하고 있다. 건강 상태가 너무 좋지 않아서 1933년 말에 나폴리에 있는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이렇게 이송된 데에는 로망 롤랑 (R. Rolland), 앙리 바뷔쎄 (H. Barbusse) 등의 국제 구출 위원회의 노력 때문이었다. 결국 안토니오 그람시는 1937년 폐결핵으로 나폴리 병원에서 사망한다. 편지에서 그람시는 아내와 장모의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걱정했다. 비록 이들의 상황은 정작 수감자보다는 나았지만, 자신으로 인해 피해당한다는 생각이 그람시의 마음을 몹시 무겁게 만들었다. 아울러 외부로부터의 고립된 삶은 그람시로 하여금 세상에 어떠한 영향도 끼치지 못하게 만들었다. 더욱이 동지로부터 소외되어 있다는 것은 그를 몹시 괴롭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람시는 결코 체념하거나, 결정주의의 숙명론에 사상적으로 굴복하지는 않았다. 자신의 유년 및 청년 시절의 모험에 관한 이야기는 러시아에 살고 있는 두 자식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자세히 기술되고 있다. 이와는 다른 편지에서 그람시는 자신의 고향, 사르디니아에 살고 있는 목자들 그리고 미신을 믿는 농부들의 자연 친화적 태도를 생생하고도 감동적으로 서술한다. 그람시가 자식들에게만 자신의 계몽적 교육적 내용을 전한 것은 아니며, 다른 친척에게 보낸 편지에서도 어느 정도 나타난다. 장모 타니아에게 보내는 편지 속에는 많은 토론이 실려 있다. 이러한 편지들을 읽으면, 우리는 그람시가 17세기부터 이어지는 위대한 사해동포주의의 도덕적 정신을 열렬히 추종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편지를 통하여 그람시는 대단한 작가적 역량을 여지없이 발휘한다. 그의 편지는 20세기 초의 시대를 떠들썩하게 했던 정신분석학을 해명하는가 하면, 반유대주의가 어디서 유래하는지를 근원적으로 천착하기도 한다. 나아가 러시아 문학, 특히 톨스토이가 자신의 부인 그리고 처제에게 끼친 영향에 관해서 거론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이러한 문제를 다루면서도, 그람시는 결코 추상적인 이론 자체에 집착하지 않고, 주어진 시대와 구체적으로 결부시켜서 모든 것을 설명하고 있다.

 

마르크스도 그러했지만, 그람시의 사상은 특히 이탈리아의 좌파 지식인들의 헤겔 연구에 영향을 받고 있다. 그람시에 의하면 헤겔이 말하는 이성 (Vernunft)은 지금까지의 역사에 대한 많은 그리고 깊은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여기서 말하는 이성이란 계급의식을 인지하는 이성을 지칭한다.] 이러한 믿음은 감옥에 갇힌 자신이 살아남는 문제와 직결된 것이기도 하다. 만약 개별적인 인간이 스스로 이성적으로 살아가려고 애를 쓰며, 이성적 사고를 동시대인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자세가 되어 있다면, 이성은 발전될 수 있다고 한다.

 

 

 

 

 

그람시의 "옥중 서한"은 감옥 내에서의 작가의 사상적 발전 과정을 추적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도움을 준다. 32개로 이루어진 서한문은 그람시가 죽은 뒤에 타냐 슈흐트에 의해서 정리되었다. 특히 그람시는 무엇보다도 베네디토 크로체 (B. Croce)의 철학을 집중적으로 규명한다. 이로써 맑시즘은 다시금 예리하게 분석되는데, 하나의 전체적인 세계관 내지 가장 적극적이고 실천적인 철학으로 발전될 수 있다고 한다. 그람시는 나아가 역사 그리고 지식인의 사회적 기능에 관하여 논한다. 지식인은 “전통적 의미에서는” 지금까지 “공중에 자유롭게 떠있는 계급”이었다. 그러나 지식인은 오늘날 지배 계급에 순종할 위험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그람시 만큼 권력에 이용당할지 모르는 지식인의 위험성을 지적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람시는 헤게모니의 개념을 도입함으로써, 마르크스의 국가관을 자기 나름대로 변형시키고 있다. 헤게모니는 인민에 대한 국가의 억압이라는 부정적 기능만을 지닌 것은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하나의 일원적인 인민 문화를 만들어내려는, 어떤 긍정적 교육적 목적을 내재하고 있다. 나아가 그람시는 이탈리아의 시성, 단테의 신곡을 분석하고, 이탈리아의 국민 문학의 가능성을 거론하고 있다. 그람시의 편지는 평소에 생각했던 여러 가지 사상을 간명하게 기술하면서도, 가장 중요한 사항을 빠뜨리지 않고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이탈리아의 파시즘의 위험 그리고 이에 대한 저항적 필요성에 대한 적극적 설파를 가리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