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내 단상

(단상 485) 아메리카 인디언과 몽고 인종

필자 (匹子) 2021. 7. 27. 11:41

 

몽고 계 인종의 일부는 베링 해협을 거쳐 북아메리카로 이주했을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인디언들 가운데 95% 이상이 RH+ O형 혈액형이라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인디언 종족은 오랜 시간 동안 폐쇄적으로 생활한 것 같습니다. 자고로 단일 인종은 타국의 질병에 매우 취약합니다.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이후에 아메리카 원주민들을 경악으로 몰아간 것은 정복자의 학살 그리고 유럽에서 건너온 질병 (천연두, 홍역 그리고 매독 등)이었습니다.

 

약 1만 년 전에 인간은 고산 지대에서 살아남았습니다. 홍적세 시대에 대부분의 땅이 물에 잠겼기 때문입니다. 이로써 “높은 산”은 구원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인류는 파미르 고원에서 동서로 분산되었습니다. 일부는 현재의 이라크 지역에 머물렀으며, 다른 일부는 북동 방향으로 이주했습니다. 전자는 티그리스 유프라테스 강 사이에서 이집트 문명보다도 1000년 이상 더 오래된 수메르 문화를 발전시켰으며, 후자는 환국(桓國), 즉 동이족의 홍산 문화의 뿌리가 되었습니다.

 

기원전 4000년 전후에 환국이 존재했음을 전제로 한다면, 동양의 문명은 중국인들이 아니라, 동이족이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고대 문명을 4대 문명 (이집트 문명, 메소포타미아 문명, 인도 문명 그리고 중국 문명)으로 구분한 카를 야스퍼스의 이론은 오류입니다. 왜냐하면 야스퍼스는 수메르 문명과 고조선 이전의 환국 (桓國)의 문명을 접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최근의 고고학적 발굴은 기원전 5000년에서 4000년 사이에 이른바 4대 문명보다 더 앞선 문화가 존재했다는 가설을 사실로 확인하게 해주었습니다.

 

또한 동양의 도교, 불교 그리고 유교의 본산은 동이족의 생활방식에서 비롯한 것입니다. 기원전 3000년 이후 고조선은 극동 지방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고조선의 현묘지도는 노장 사상, 불교의 무 사상 그리고 유교의 인 사상을 낳았습니다. 한, 예, 맥이 동이족 한인 (韓人)이라는 것을 전제로 한다면, 동양의 문화의 본산은 중국이 아니라, 주도적으로 한국인에 의해서 주도되었다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가령 공자는 중국 사람이지만, 그의 사상은 종이족의 순 왕, 즉 제준에게서 찾아낸 것입니다.

 

한민족의 선조들과 수메르 사람들은 가장 오래된 원시 공동어를 사용했는데, 이것은 어쩌면 바벨탑 이전의 인류 공동어의 가능성이 높습니다. 단군 3세 가륵 2년에는 삼랑 을보륵에게 명하여 정음 38자를 지었는데, 가림다 (加臨多), 즉 가려진 땅 끝 마을에 선택받은 땅의 글이라고 했습니다. 이 가림다는 그 모양이 한글과 너무나 흡사합니다. 이와 유사한 문자는 일본의 대마도에서 발견되었는데, 일명 아히루 문자라고 합니다. 일본 학자는 이를 자신의 문화라고 주장하는데, 이는 거짓입니다.

 

어쨌든 수메르 인종과 몽고 인종은 네 가지 점에서 공통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1. 머리털이 검고 곧으며, 체구가 작고, 후두부가 평평하다. (이는 황인종이 인류의 선조라는 것을 말해줍니다. 2. 두 민족은 설형 문자와 태음력을 사용했다. (바빌로니아 지역은 천문학이 강세였습니다.)  3. 두 민족은 순장을 강요하였다. (순장이 좋은 제도는 아니지만, 그만큼 공동체 정신이 강했음을 알려줍니다.) 4. 두 민족은 회도 (灰陶), 다시 말해서 구운 도자기를 사용했다. (이에 반해 중국인들의 그릇은 채도 (彩陶)였습니다.)

 

수메르 천문학은 다음의 사항을 알려줍니다. 기원전 4000년에서 기원전 1000년까지 환국과 고조선이 극동을 지배했습니다. 기원전 1000년에서 기원후 2000년까지는 중국과 일본이 극동을 장악했습니다. 3000년 동안 중국은 호랑이처럼, 일본은 빈대처럼 한반도의 흰옷들에게 고통을 가했습니다. 그러나 천문학은 기원후 2000년부터 한민족이 아시아와 세계의 으뜸이 되리라는 것을 알려줍니다. 이는 전쟁을 통해서가 아니라, 인간성의 위대성을 통해서 그리고 문화적 번영을 통해서 가능하리라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