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동화

서로박: 동화, 혹은 가벼움 속의 무거움 (2)

필자 (匹子) 2020. 4. 30. 09:29

1. 친애하는 여러분, 이 자리를 빌려 나는 동화 속에 담겨 있는 주제 그리고 모티브를 오로지 심리학적으로 설명해 볼까 합니다. 지난 시간에 설명한 바 있듯이, 동화에 관한 문학 이론은 아직도 완전히 정립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나아가 동화를 심리 분석의 차원에서 설명하려는 노력 역시 동화의 본질을 전적으로 규명해주지는 못합니다. 다만 우리는 동화의 기능과 본질을 이해하는 데 심리적 연구 방법이 상당히 도움을 준다는 사실만을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나의 강의는 책 속에 담겨 있는 내용만을 담고 있다고 단정하지는 말아주십시오. 진리의 파편은 때로는 언어 이전의 일상적인 삶 속에서도 발견될 수 있으니까요.

 

2. 고립 모티프: 대부분 어린이들이 지니고 있는 공통적인 특성으로서 우리는 은폐 욕구를 들 수 있습니다. 그들은 어른의 세계로부터 담을 쌓고, 자기 자신만의 공간을 지니려고 합니다. 나무 위에 숨는다거나, 친구와 함께 동굴 속에서 그들의 몸을 은폐시키는 경우를 생각해 보십시오. 이는 어쩌면 성인 세계에 대한 두려움에서 비롯하는지 모릅니다. 낯선 외부 세계가 강요하는 모든 제약들이 어린이로 하여금 은신처를 찾게 하는지 모릅니다. 오로지 그 속에서 아이들은 심리적인 안정을 얻곤 합니다. 동화 속에 나오는 고립된 성의 이야기, 난쟁이 소굴에 관한 이야기는 모두 상기한 은폐 욕구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어린이들의 은폐 욕구는 사춘기 시절까지 이어질 경우도 있으나, 대체로 14세에 이르면 사라집니다.

 

3. 방랑 모티프: 방랑에 대한 어린이들의 꿈은 외로움과 관련될 수도 있습니다. 모험적인 이야기를 꿈꾸는 아이들은 대체로 수동적이며, 내향적인 경향을 띄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대체로 자신이 다른 사람으로 혹은 다른 동물로 변모하는 꿈을 꾸곤 합니다. 더욱 강한 존재로 변하고 싶은 욕구는 자신의 나약성을 대리 만족시키는 하나의 방편이 될 수 있기 때문이지요. 이러한 꿈은 -정도가 지나치지 않는 한- 어린이의 정서 발전에 커다란 도움을 줄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동화는 심리적으로 성숙하게 하는 방편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4. 교육의 모티프: 사랑과 관심을 받은 어린이들은 차분하고 집중력을 지닙니다. 방치된 아이들일 수록 부모의 관심을 끌기 위하여 분주할 정도로 난잡하게 행동합니다. 독일 사람들은 무척 난잡한 아이를 “허우적거리는 필립 Zappelphilipp”이라고 부르지요. 인간의 집중력은 어쩌면 특히 어머니의 사랑에 의해서 영양을 공급받는지 모릅니다. 남편의 사랑을 듬뿍 받는 여자는 자식들에게 많은 사랑을 베풉니다. 부모가 머리 좋거나 공부 잘했다고 해서 자식이 공부 잘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대부분의 우등생에게는 놀랍게도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그들의 부모들의 금슬이 매우 좋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교육의 성패는 지적 능력 자체가 아니라, 주어진 사회적 심리적 환경, 구체적으로 말해서 부모의 금슬에 달려 있는 게 아닐까요?

 

 

 

5. 동화 속에는 일상의 이야기보다도 정도에서 벗어나는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이야기의 주요 인물로서 우리는 아이들, 부모들, 형제자매, 친구들을 들 수 있는데, 이들은 한결같이 “기이한 존재” 내지는 “기적” 등과 마주칩니다. 이는 어쩌면 더 높은 세계에 대한 아이들의 흐릿한 예견과 관계될 수 있습니다. 아이들은 언제나 전대미문의 세계와 사물을 갈망하지요. 문제는 동화의 주인공들이 낯설고 기이한 사건 내지는 인물들로부터 전혀 등을 돌리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동화 자체가 처음부터 모험적인 요소를 지니고 있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6. 동화는 작가든 독자든 간에 인간의 근본적인 욕망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근본적인 욕망은 쉽게 말해서 식욕, 성욕 그리고 여러 가지 유형의 명예욕 등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가령 굶주림은 사람들로 하여금 “음식이 솟아 나오는 마술 탁자 Tischlein deck dich!”를 꿈꾸게 하였습니다. 에른스트 블로흐 Ernst Bloch도 설명한 바 있듯이  하인리히 만 Heinrich Mann의“놀고먹는 세상 Schlaraffenland”에서는 소시지가 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고, 온 산이 치즈 덩어리로 이루어져 있으며, 개울에는 사향 포도주가 졸졸 흐릅니다. 이러한 이야기의 배후에는 배고픔 그리고 강제 노동을 떨치려는 인간의 욕구가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동화 속의 사랑 

 

 

7. 동화 속에서는 은폐된 성욕 역시 도사리고 있습니다. 이를 규명한 사람은 바로 프로이트 Freud였습니다. 가령 유럽 동화에서 “신발”, “빨간 모자” 그리고 “가시 울타리” 등과 같은 비유는 성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나아가 동화 속에는 무시무시한 용과 싸우는 이야기가 많이 나타납니다. 여기서 “용”이란 자신의 “연적 (戀敵, Nebenbuhler)”에 대한 객관적 상관물로 사용되곤 합니다. 용을 퇴치한다는 것은 라이벌을 무찌르고 꿈에 그리던 임을 차지한다는 것을 상징합니다. 이러한 내용은 비단 동화에 국한되는 것은 아닙니다. 유럽 신화 그리고 전설에서 나타나는 용과의 싸움을 생각해 보십시오. 독일의 전설적 영웅, 지크프리트 그리고 바빌로니아의 신 마르두크 등이 벌린 용과의 싸움은 그러한 방식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8. 가령 “장미”는 피드로 다 모라 Piedro da Mora에 의하면 세 가지 사항을 상징한다고 합니다. 첫째로 장미는 “순교자의 합창 chorus martyrium”입니다. 순교자의 목에서 떨어지는 피는 장미처럼 붉다고 합니다. 둘째로 장미는 “신과 인간 사이의 중개물 mediator Dei et hominum”이라고 합니다. 셋째로 장미는 “순결한 여성의 성기 virgio virginum”이라고 합니다. 실제로 여성의 질 (膣)은 진분홍 장미꽃을 연상시킵니다. 이를테면 움베르토 에코 Umberto Eco의 소설 『장미의 이름 La Nom de la Rose』을 생각해 보십시오. 이 작품에서 “장미”는 여성의 생식기에 대한 우의적인 표현일 수 있습니다. 마치 두 마리의 나비가 평생 단 한번 성을 교합하듯이, 주인공 아드손 Adson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장미”와 단 한 번의 육체적 사랑을 나눕니다.

 

 

 

 장미 - 그것은 많은 것을 상징한다. 단테는 신곡에서 천국의 상을 장미로 묘사한 바 있다.

 

 

9. 프로이트는 “사악한 계모의 상”을 마치 약방의 감초처럼 동화에 등장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딸은 본능적으로 아버지를 사랑하고, 어머니에 대해 무의식적으로 질투합니다. 이러한 질투심이 바로 사악한 계모 (혹은 계부)의 상을 창안했는지 모릅니다. 실제로 영국의 어느 문학 이론가는 동화 뿐 아니라, 리어왕에 나타난 갈등을 엘렉트라 콤플렉스로 설명한 바 있습니다. 가령 왕이 자신의 딸에 대해 느끼는 애착은  -오토 랑크 Otto Rank의 견해에 의하면- 동화에서 은근히 묘사되곤 하는데, 이 배후에는 근친상간의 욕망이 숨어 있다고 합니다.

 

10. 형제간의 갈등: 동화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와의 관계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이미 지적한 바 있습니다. 형제들이 서로 싸우는 까닭은 막강한 아버지의 존재로 귀결될 수 있습니다. 형제 사이에서 나타나는 질투심 내지 적개심은 근본적으로 아버지 혹은 어머니에 대한 애정의 차단으로 설명될 수 있습니다. 가령 카인이 아벨을 죽인 것도 자신을 인정해주지 않는 부모에 대한 간접적인 보복이요, "요셉과 그의 형제들" 사이의 갈등은 부모의 편애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프로이트는 작품 "인간 모세 Der Mensch Mose"에서 이에 관하여 자세히 언급한 바 있습니다.

 

11. 대부분의 영웅 신화는 아버지에 대한 젊은 세대의 저항으로 설명될 수 있습니다. 제우스가 아버지 크로노스를 무찌르는 이야기는 아버지로부터의 억압에 대한 심리적 보상의 결과일 수 있습니다. 오토 랑크 Otto Rank에 의하면 신화는 젊은 세대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합니다. 아버지의 살인 그리고 형제 사이의 다툼은 이른바 가부장 제도의 질서에서 사회의 단계로 이전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문화적 단계로 이해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12. 동화를 심리적으로 해석한 그룹으로서 우리는 카를 구스타프 융 (Carl G. Jung)을 들 수 있습니다. 반동적 파시스트라는 혐의를 지닌 융이 배출한 제자들은 의외로 상당히 많습니다. 자유주의자, 프로이트가 개별적 동화 속에 담긴 심리 구조를 하나씩 독립시켜 추적한 반면에 융의 제자들 (Franz, Dieckmann, Jacoby, Kast 등)은 동화 속에 담긴 전체적 발전 내지는 성숙의 단계를 파악하려고 했습니다.

 

 

 

 

 

카를 구스타프 융의 모습 1910년 

 

 

13. 융의 제자들이 행한 동화의 분석에 의하면 인간의 성숙 단계는 사춘기 시절이 아니라고 합니다. 오히려 20대에서 40대, 다시 말해서 삶의 중년기를 논의의 대상으로 삼고 있습니다. 나이 서른이 되면 삶에 대해서 새로운 시각을 지닌다고 합니다. 이 시기에는 지금까지 지니고 있던 외부 지향성이 사라지고, 자신의 내면에 대한 관심사가 생긴다고 합니다. 이로써 외부 세계와 내부 세계는 서로 결합되고, 에로스와 타나토스는 일원화된다고 합니다. 이로써 밝혀지는 것은 원형으로서의 집단 무의식입니다. 과연 그들의 주장이 어느 정도 타당한지, 어느 범위 내에서 그것이 동화에 적용될 수 있는지? 는 여기서 논외입니다.

 

14. 동화 속에 등장하는 “나이 든 왕”의 상 속에는 혁신을 필요로 하는 자의 욕망이 은폐되어 있습니다. 아들, 바보 왕자 돼지치기 등과 같은 인물이 동화에 등장하는 까닭은 무의식을 찾으려는 노력이 은근히 반영되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용과의 싸움은 -프로이트처럼 연적과의 갈등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에 담긴 사악함에 대한 싸움이라고 합니다. 특히 독일 작가 가운데에서 클라이스트 Kleist 문학이 융의 이론으로 해석되곤 하는데, 이는 부분적으로 타당할 뿐입니다. 왜냐하면 클라이스트 문학은 부분적으로 계몽적 지조를 완전히 떨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15. 이상으로 간략히 동화에 대한 심리적 분석의 입장을 약술하였습니다. 이는 하나의 시도에 불과하므로, 그 자체 수정 사항 그리고 보완 사항 등을 내재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개별적 논의들을 하나씩 세부적으로 전개해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여러 동화 속에서 전체적 특성을 추출해서 보편화시키는 작업보다는 개별적 특성을 약술하고 제반 특징을 개별화시키는 작업을 선호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참고 문헌 

이성훈: 푸케 동화 '운디네'를 중심으로, in: 독어 교육, 63권 2015, 303 - 3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