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박: 길먼의 여성주의 유토피아 (1)

1. 페미니즘의 유토피아, 『여자들만의 나라』: 19세기 후반에 유럽에서 거대한 이슈는 마르크스의 사상과 실천이었습니다. 이 와중에서도 남녀평등의 문제는 마르크스의 조류 내에서 지엽적으로 논의되었습니다. 페미니즘 성향의 작가들 가운데에는 샬럿 퍼킨스 길먼 (1860 – 1935)이 있습니다. 그미는 벨러미와 마찬가지로 “미국 페이비언The American Fabian”이라는 잡지에 자극을 받아서, 발전된 현대 국가 그리고 성의 역할 등에 관하여 오랫동안 고심하였습니다. 처음에 길먼은 사회학적 논문을 발표하다가, 유토피아 소설 『여자들만의 나라Herland』(1915)를 발표하였습니다. 작품은 종래의 유토피아 소설들과는 한 가지 사항에서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여자의 나라』는 순수하게 여성들만 살아가는 사회입니다. 동시대의 작가들의 경우와는 달리, 길먼은 소설의 배경으로서 먼 미래의 사회가 아니라, 멀리 떨어진 섬을 선택하였습니다. (Gilman: 18). 메르시에, 벨러미, 모리스 등이 작품의 현실을 미래로 설정한 데 비하면, 길먼은 전통적인 장소 유토피아를 설정한 것입니다. 동시대적 가부장 사회와 모권 사회를 극명하게 대비시키려면, 동시적 관점이 요청된다고 판단한 게 분명합니다.

 

2. 길먼의 삶 (1): 길먼은 1860년 7월 3일에 코네티컷 지역의 하트포드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미의 아버지, 프레데릭 비쳐 퍼킨스는 소설가, 도서관 사서 그리고 도서 편집자로 활약했습니다. 딸이 태어난 직후 그는 아내와 결혼생활을 접고, 어디론가 떠났습니다. 이로 인하여 길먼은 가난과 고독 속에서 유년 시절을 보내야 했습니다. 특히 어머니는 자주 이사를 다녔으므로, 어린 시절에 친구를 사귈 수 없었습니다. 당시 길먼은 큰고모인 캐서린 비처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큰고모는 해리엇 비쳐 스토우Harriet Beecher Stowe의 『엉클 톰스 캐빈Uncle Tom’s Cabin』(1852)을 읽고 노예해방을 지지하는 진취적인 변호사였습니다. 길먼을 도와준 또 다른 고모는 이사벨라 비쳐 후커였습니다. 그미는 사회적 개혁을 요구하는 전투적 여성 운동가였는데, 두 명의 고모는 길먼에게 커다란 영향을 끼쳤습니다. 길먼은 어린 시절부터 외로움을 떨치기 위해서 수많은 책들을 독파하였습니다. 그미는 1878년부터 2년간 로드 아이랜드 디자인 학교에 다녔고, 졸업 후에는 여러 가지 그림엽서를 그려서 조금씩 생활비를 벌었습니다.

 

3. 길먼의 삶 (2): 1884년에 길먼은 화가인 찰스 스텟슨과 결혼했는데, 결혼 생활 자체를 몹시 힘들어 했습니다. 결혼 후에 길먼은 심한 우울증을 앓았는데, 이러한 증세는 그미의 딸이 출산 뒤에 더욱 심해졌습니다. 가족들은 캘리포니아로 휴양 여행을 떠났는데, 이때 길먼의 증세는 어느 정도 호전됩니다. 나중에 부부는 합의 하에 이혼하게 되고, 길먼은 딸과 함께 캘리포니아의 파네다로 이주하게 됩니다. 이후로 그미는 여관에 기거하면서 소설가로서 일하면서 살아갑니다. 처음에는 시와 단편을 집필하였습니다. 길먼은 놀라운 언변의 소유자였는데, 자신의 재능을 발휘하여 여성들을 위한 주제로 강연하였습니다. 이때 그미를 도와준 사람은 21세 나이 많은, 사회주의의 지조를 지닌 소설가, 헬렌 캠펠Helen Campell 이었습니다.

 

4. 19세기 말의 신경 정신과 의사의 처방은 엉터리였다. 길먼은 어린 시절부터 우울증으로 치료를 받았습니다. 자고로 정신병원은 고립된 시골이 아니라, 도시 한복판에 위치하는 게 바람직합니다. 그렇게 해야 환자들은 치유 외에도 친구와 가족들로부터 사랑과 관심을 받아야 사회성을 키워나갈 수 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문학 치료와 미술치료는 자신의 내면적 응어리를 배설할 수 있는 좋은 방편입니다. 특히 문학 치료는 직접적으로 사물이나 의미에 속하지 않는 이미지를 형성하기 때문에 심리적 아픔을 지닌 자에게 커다란 효과를 발휘합니다. (변학수: 122). 그런데 이러한 예술적 치료 방법은 길면에게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길먼을 치료하던 정신과 의사는 그미에게 요양원에서의 휴식을 명하면서, 어떠한 경우에도 펜, 연필 그리고 붓을 거머쥐지 말라고 권고하였습니다. 먼 훗날 그미는 이를 엉터리 처방이라고 말했습니다. (Lane: XVI). 이로써 의사는 그미를 미성년의 상태로 묶어둠으로써, 길먼과 같은 섬세한 여성에게 다시 한 번 심리적 상처를 입힌 셈입니다. 길먼은 이러한 엉터리 처방을 1892년에 발표된 소설 『누런 벽지The Yellow Wallpaper』에서 비판하였습니다. 이로써 길먼은 심리적 하자를 지닌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방편이 문학치료임을 작품의 집필로써 증명해낸 셈입니다.

 

5. 길먼의 삶 (3): 1894년 길먼은 일자리 때문에 샌프란시스코로 이주했습니다. 사회의 변화를 불러일으키기 위해서는, 소규모 고립된 유토피아 대신에 사회의 모든 계층 사람들의 연합 전선이 필요하다고 길먼은 확신했습니다. 1894년에서 이듬해까지 캘리포니아의 여성 평화당의 당원으로 일했습니다. 미국 전역을 돌아다니면서 여성의 동등권을 외쳤습니다. 1896년 캘리포니아의 사절단으로 영국으로 건너가서 페비언 협회에 가입하였고, 버나드 쇼 등과 만나기도 했습니다. 1898년에 『여성과 경제』라는 길먼의 강연 모음집이 간행되었습니다. 이 책에서 길먼은 다음과 같은 생각을 피력하였습니다. 현대 사회에서 여성은 대체로 낮은 지위를 누리며, 경제적으로 남편에게 의존하며 살아가는데, 이는 여성이 생물학적으로 저열하기 때문이 아니라, 여성이 문화적으로 어떤 역할을 강요받았기 때문에 비롯되는 잘못된 현상이라는 것입니다.

 

6. 작품의 틀: 길먼의 작품 『산을 옮기기. 유토피아 소설Moving the Mountain, Utopischer Roman』(1911)에 비하면 『여자들만의 나라』는 길먼의 상상력에 의해 직조된 독창적인 작품입니다. 소설의 틀은 다른 문학 유토피아와 별반 다르지 않는 인습적 특성을 드러냅니다. 그렇지만 작가는 여행과 모험을 바탕으로 어떤 가상적인 사회를 설계하면서도, 등장인물의 발전 과정을 생동감 넘치게 묘사했습니다. 수천 년 동안 여성들만 살아온 나라에, 남성 사회에 익숙한 등장인물이 어떠한 갈등을 빚는가? 하는 문제는 지금까지 어떠한 문학 유토피아에서도 세밀하게 다루어진 바 없습니다. 게다가 세 명의 남자주인공들은 제각기 다른 인간적 특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테리, 제프 그리고 주인공인 나, 반다이크는 제각기 다른 특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독자들은 작품이 어떠한 방식으로 전개될지 미리 예측할 수 없으며, 약간의 박진감을 느끼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