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박: 길먼의 여성주의 유토피아 (3)

14. “여자들만의 나라”의 크기와 인구: 여자들만의 나라는 모권 중심의 구도로 이루어져 있으며, 고도의 산업 사회와는 무관한 지상의 낙원입니다. 이곳 여성들은 자연친화적인 방식을 사회적 전 영역에 도입했습니다. 땅은 수많은 꽃으로 가득찬 정원을 방불케 하며, 거주지는 아름답고도 실용적으로 축조되어 있습니다. 그곳에는 산업 쓰레기라든가 공장 폐수, 광산의 더러운 흙더미 등은 전혀 없습니다. 여자들만의 나라는 섬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해안에는 거대한 절벽이 솟아올라 있으므로, 마치 난공불락의 요새와 같습니다. 따라서 외지의 사람이 이곳에 침투할 가능성은 지극히 드뭅니다. 섬의 크기는 이를테면 네덜란드의 크기를 방불케 하고, 만에서 12,000 평방 마일의 폭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곳의 인구는 대체로 삼백만 정도입니다. 삼백만의 수는 여성들로 하여금 매우 다양한 삶을 영위하게 할 정도입니다.

 

15. “여자들만의 나라”의 배경과 역사: 원래 여자들만의 나라는 살기좋은 청정지역이 아니었습니다. 이천년의 세월을 지나치는 동안 “여자들만의 나라”는 주민들의 각고의 노력 끝에 서서히 어떤 모범적 국가로 거듭나게 되었습니다. 원래 섬의 주민들은 일부다처주의를 표방하는 인도 게르만족의 후손들이었는데, 우여곡절 끝에 결국 젊은 여자들만 이곳에 거주하게 됩니다. 외부에 머물고 있는 남자 노예들은 호시탐탐 이 섬을 노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주민들은 그들의 자유를 지키려고 안간 힘을 다합니다. 작가는 “여자들만의 나라”가 형성된 역사적 배경을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습니다.

 

“젊은 여자들은 굴복하는 대신에 저항을 선택하였는데, 절망감에 사로잡힌 채 그들을 잔인하게 억압하려는 자들을 살육하였다. (...) 아름답고 고적한 섬에는 히스테리의 발작에 시달리는 처녀들과 몇몇 나이든 노예여자들 외에는 어느 누구도 남지 않게 된다. 그때는 이천년 전의 일이었다. 처음에 주민들은 혹독한 절망 속에서 연명했으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이곳에 정착하기로 결심하게 된다. 그리하여 그들은 죽은 사람들을 땅에 묻은 뒤에 땅을 경작하고 씨를 뿌렸다.” (Gilman: 79f). 외부세계와 단절된 데에는 무엇보다도 화산의 폭발이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때 많은 사람들이 사망하고, 바다로 향하는 통로는 차단되었습니다. 왜냐하면 바다로 향하는 통로 위에 화산 폭발로 인해 거대하고 가파른 언덕이 형성된 것입니다. 화산 폭발 후에 이곳에 노예로 살아가던 여자들은 섬을 다스리는 남자들과 사내아이들을 살해하고, 여성들만의 나라를 건설하게 됩니다.

 

16. 처녀 생식과 공격 성향의 단절 (1): 그러나 여성들만으로 거대한 공동체에서 독자적으로 살아가는 것은 무척 힘든 일이었습니다. 몇몇 소수의 여성들은 자살로 힘든 삶을 마감합니다. 그러나 다수의 여성들은 생존을 위해서 처절할 정도로 힘들게 일합니다. 그들 대부분은 젊었으며, 시체를 땅에 묻은 다음에 황무지를 개간하여 그곳에 씨를 뿌렸습니다. 약 5년에서 10년에 이른 시간을 함께 살아온 그들은 결국 하나의 기적을 만들어냅니다. 자식을 낳으려면 남자가 있어야 하는데, 이곳 여자들은 여신을 숭배함으로써 자식, 즉 딸들을 낳게 됩니다. 그런데 『여자들만의 나라』에서는 통상적 자연과학의 상식으로는 납득할 수 없는, 일종의 처녀 생식을 통해서 출산이 가능하게 됩니다. 처녀생식이란 미수정란이 수정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단독으로 발생하여, 새로운 개체가 되는 일을 가리킵니다. 동물 가운데에는 꿀벌, 물벼룩, 진딧물, 식물 가운데에는 약모밀, 껄껄이풀 그리고 민들레 등이 처녀생식으로 개체를 확장한다고 합니다. 『여자들만의 나라』에서는 페미니즘과 우생학이 접목된 계획적 출산이 장려되고 있습니다. (김진옥: 58).

 

17, 처녀생식과 공격 성향의 단절 (2): 처음에 여성들은 고대 그리스의 사람들처럼 신들과 여신들을 강하게 신봉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는 전쟁과 약탈의 신들로부터 등을 돌리고, 오로지 모성으로서의 여신 한 사람을 신봉합니다. 그들의 신앙은 모친들을 모시는 여성적 범신론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소설의 등장인물들은 “여자들만의 나라”를 개미와 꿀벌의 국가와 비교합니다. 이는 이를테면 마치 윌리엄 헨리 허드슨William H. Hudson의 문학 작품, 『수정의 세대A Crystal Age』(1887)의 내용과 무척 흡사합니다. 이곳 수정 국가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오로지 남매로 살아가는데, 공동체의 수장과 그의 아내만이 후사를 둘 수 있습니다. (Hudson: 43, 75). 『여자들만의 나라』의 경우 남성들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우정 관계만이 존재하지만, 전체적으로 고찰할 때, 여성들은 마치 꿀벌의 사회처럼 성행위와 공격 성향을 전혀 알지 못한 채 상부상조합니다.

 

마치 새들이 봄을 사랑하고, 벌들은 근심 많은 여왕벌을 돌보듯이, 여성들은 남성과의 성관계 없는, 이른바 처녀 생식의 방식으로 후손을 이어갑니다. 이러한 방식을 통해서 여자의 나라는 어떠한 공격성향도 자리하지 않는 사회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로써 그들은 아무런 방해 없이 평화를 즐기고, 풍요로움을 누리며, 그들 스스로의 의지대로 건강하게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새들이 봄을 사랑하듯이/ 꿀벌들 역시 모든 것을 돌보아주는 여왕을 사랑한다.” (Saage: 89). 놀라운 것은 이러한 사상 감정으로 인하여 사람들이 더 이상 지배 내지 권력욕을 지니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작품 내에서 반은 다음과 같이 묘사합니다. “그들은 완전히 평형을 유지하고 있다. 인내심은 끝간 데 없을 정도이며, 친절한 마음으로 함께 생활하고 있다. 또 한 가지 사항을 놀라게 관찰할 수 있었는데, 그것은 그들 가운데 어느 누구도 자극적인 행동 내지 공격적 자세를 취하지 않고 있다.” (Gilman: 69).

 

18. 사유재산, 빵을 더 차지하기 위한 경쟁과 투쟁은 없다. 지배가 없으면, 경쟁이나 투쟁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작품에는 경제적 소유 관계가 명문화되어 있지 않습니다. 여자들만의 나라에서는 “나의 것” 그리고 “너의 것”이 구분되어 있지 않습니다. 보석과 장신구는 그들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으며, 공동적으로 사용가치를 지닐 경우에 한해서 여성들은 그냥 흡족해 합니다. 또한 그들은 경제적 부를 추구하기 위한 축재에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대신에 공동의 선 내지 조국의 이득에 도움이 되는 일에 관해서는 지대한 관심을 기울입니다. “그들은 땅을 좋아합니다. 왜냐하면 땅은 그들에게는 아이들의 보금자리, 놀이터 그리고 노동의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신의 일터 그리고 지금까지 이룩한 그들의 역사에 관해서 자부심을 지니고 있습니다.” (Gilman: 129). 여자들만의 나라의 경제적 목표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는 자본가의 이윤 추구가 아니라, 후세 사람들의 번영을 기약해주는 문화적 자양입니다. 그렇기에 여자들만의 나라는 상호 경쟁과 승리 등의 의미가 별반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곳 사람들이 인구 성장의 문제와 직면했을 때, 인구 성장으로 인해 고갈된 자원을 차지하기 위해서 서로 경쟁하거나 투쟁하지 않기로 결정합니다. 이를테면 먹을 것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타 민족을 정복하는 행위를 거부하였습니다.

 

19. 나무 재배, 경제적 구도와 수준: 여자들만의 나라에서는 나무가 매우 중요합니다. 나무는 음식을 공급하는 중요한 수단이므로, 굳이 쟁기를 들고 경작하지 않아도 많은 과실을 제공합니다. 그렇기에 이곳 사람들은 나무를 가급적 베지도 옮기지도 않습니다. 여자들만의 나라에서 중요하게 간주된 것은 과실수를 심는 일 그리고 식물을 재배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땅을 개간하여 많은 과일 작물을 심었습니다. 생산 과정에 관해서 작가는 많은 것을 거론하지 않습니다. 모든 일은 여성들의 협동으로 이루어집니다. “여성들이 남성들보다도 더 협동적으로 일할 수 있는 소질을 지니고 있어.” (Gilman: 95). 게다가 여성들은 협동적으로 일하면, 힘든 일을 얼마든지 잘 수행할 수 있다고 합니다. 모든 건물, 돌로 이루어진 장벽 그리고 거리 등은 모두 여성들의 협동 작업을 통해 완성되어 있습니다.

 

겨울이 되면 높은 지역의 땅은 눈으로 덮이지만, 낮은 지역은 아열대 기후의 영향으로 레몬, 무화과 그리고 올리브가 넘쳐납니다. 이를 위해서 여자들은 높은 수준의 과학기술을 농업에 활용합니다. 따라서 이곳의 경제는 농업 중심으로 이루어지며, 섬유 제품이 생산되고, 염색 공장 또한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곳 사람들은 알록달록한 의복을 걸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생산 과정에 있어서 협동 과정에 관해서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없습니다. 이를 고려하면 여성이라고 해서 특별히 제한되는 일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습니다. 여자들은 사치스럽게 살지 않지만, 어느 정도 문명사회의 수준을 유지하며 생활합니다. 이를 고려한다면 “여자들만의 나라”의 경제적 수준은 벨러미가 구상한 바람직한 국가의 그것에 근접해 있습니다.

 

20. 채식주의의 식사: 인구 증가의 문제에 봉착했을 때, 이곳 사람들은 채식주의의 식생활을 정착시킵니다. 이로써 소, 말 그리고 양 등은 더 이상 사육되지 않습니다. 이러한 동물들은 생존하기 위하여 많은 풀들을 섭취해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이곳 사람들의 식량이 줄어들게 됩니다. 모든 황야는 개간되지만, 소, 말, 양 그리고 닭들은 거의 발견되지 않습니다. 물론 날짐승은 예외적으로 존재합니다. 왜냐하면 새들은 쥐, 두더지 등과 같은, 식물을 해치는 작은 동물들을 잡아먹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새를 제외한 동물들이 “여자들만의 나라”에 없는 것은 아닙니다. 이를테면 고양이는 인간의 필요에 따라 애완동물로 길러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조처를 통해서 사람들은 이른바 동물을 매개로 한 여러 가지 전염병을 사전에 근절시킬 수 있었습니다.

 

21. 출산과 교육: 모성에 대한 믿음은 여자들만의 나라에서 행운을 기약해줍니다. 섬은 크지 않으므로, 인구가 많아지면, 난관에 봉착하게 될 것입니다. 두 명의 아이를 낳는 경우는 극히 이례적인 일로서, 사회적으로 훌륭한 일을 행한 여자만이 그러한 특권을 누릴 수 있습니다. 출생 제한의 조처로 인하여 인구가 적정 수준을 유지하게 되었으며 (Gilman: 113), 그때부터 어떠한 범죄도 발생하지 않게 됩니다. 플라톤의 『국가』에서는 국가가 나서서 군인들의 성생활을 조절하고 있습니다. 전쟁에서 공을 세운 유능한 젊은이들은 하나의 포상으로서 여자들과 육체적으로 사랑을 나누게 하여 가급적이면 정신적으로 영민하고 육체적으로 튼실한 아이들을 출산하도록 조처합니다. 이러한 조처는 “여자들만의 나라”에서도 처녀 생식의 방식으로 시행되고 있습니다. 즉 나쁜 성격의 소유자 내지 사회적 책임의식이 없는 처녀들은 어머니가 될 수 없습니다. 플라톤과 현대의 디스토피아 문학에서 나타나고 있듯이, 가족의 체제는 폐지되어 있고, 아이들의 공동 교육이 활성화되어 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길먼은 낳은 어머니보다 키운 어머니를 더욱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모성적 교육이야 말로 한 인간의 육체적 그리고 심리적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지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