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 현대영문헌

서로박: 피어시의 '그, 그미 그리고 그것' (1)

필자 (匹子) 2021. 5. 20. 10:59

친애하는 P, 마지 피어시는 1993년에 사이언스픽션 계열의 소설 『그, 그미 그리고 그것 Er, She and It』을 발표하였습니다. 이 작품은 처음에는 “유리의 육체 Body of Glass”라는 제목으로 해외에 소개되었는데, 영국에서 아더 클라크 Arthur Clarke 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하였습니다. 작가는 더 이상 페미니즘의 문제에 집착하지 않고, 성, 계급 그리고 젠더의 문제를 통합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인간과 기계, 인간과 동식물 등의 생명체, 물질과 형이상학 등과 같은 이원구조의 갈등은 어느 정도의 범위에서 극복 가능한가? 하는 물음을 생각해 보십시오. 이러한 물음은 종래의 인간학의 관점을 벗어나서 고도로 발전된 과학 기술 사회에서의 새롭게 제기될 수 있는 윤리학과 관련됩니다. 이는 자연과학자, 생물학자 그리고 페미니즘 이론가로 활동한 도나 하라웨이 (Donna Haraway, 1944 - )가 1985년에 발표한「사이보그를 위한 성명서 A Manifesto for Cyborg」에서 제기된 바 있습니다. 지금까지 전통 신학은 하라웨이의 견해에 의하면 남성 중심의 학문의 원칙을 내세우면서, 신적 권능이라는 거짓된 원칙을 내세웠다고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학문의 원칙은 인간의 역사에서 진리로 통용되었는데, 이로 인하여 수많은 폐해를 낳았다고 합니다. 가령 남성은 여성을, 백인은 흑인과 황인을, 인간은 동식물을 무한대로 억압하고 착취해 왔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논의를 통해서 하라웨이는 다음과 같은 문제를 제기합니다. 즉 성, 젠더 그리고 생명체 전체가 우주적으로 평등하게 상생할 수 있는 원칙은 과연 무엇인가? 하고 말입니다. 하라웨이는 이와 관련하여 사이보그의 개념을 두 가지로 설정합니다. 그 하나는 “과학기술과 조직의 결합체 cybernetic organism”로서의 인조인간을 가리키며, 다른 하나는 페미니즘의 시각에서 포스트모던의 시대에서 살아가는, 완강하게 저항하는 여성을 가리킵니다.

 

 

 

 

 

 

마지 피어시는 사이보그를 첫 번째의 인조인간의 개념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제목 “그, 그미 그리고 그것”은 내용상 “그이자 그것”, “그미이자 그것”에 해당하는 사이보그의 존재를 가리킵니다. 소설의 배경을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2017년 이스라엘과 중동 지방에서 약 2주에 걸쳐서 원자폭탄 테러가 발생합니다. 이로 인하여 중동 지역의 땅의 절반가량 초토화되고 지구상의 많은 땅들이 완전히 사라지고 맙니다. 지상에는 끔찍한 원자 폭탄의 여파로 작은 땅들만이 남게 되었습니다. 북아메리카 또한 이러한 피해를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작가는 쪼그라든 “북아메리카 North-America”를 “노리카 Norika”라고 명명합니다. 핵무기의 테러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새로운 질서를 만들지 않으면 안 됩니다. 바로 이러한 상황 속에서 도합 23개의 재벌들이 팔을 걷어붙이고, 제각기 새로운 국가를 창건하였습니다. 이 국가들은 “멀티 Multi”라고 불립니다. 이들이 국가를 창건한 것은 사람들의 안녕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미래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처한 여건은 과거와는 전혀 다릅니다. 제반 국가들은 자외선을 차단하기 위하여 하늘 위로 거대한 둥근 차단막을 설치해 두었습니다. 일상의 삶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폭력과 질병입니다. 일반 사람들은 “글롭 Glop”이라는 거대한 슬럼에서 하루하루를 연명해 나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실 상황을 교묘하게 이용하는 자들은 다름 아니라 국가의 재벌들, 즉 “멀티들”입니다. 모든 멀티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제각기 다른 법을 공표하였습니다. 그렇기에 이들 국가가 추구하는 목표 역시 조금씩 편차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제각기 질서를 지킨다고는 하지만, 세상은 무척 혼란스럽습니다. 2059년의 시점에도 멀티들이 존재하게 되지만, 그럼에도 이러한 권력자들의 영향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운 도시들이 드물게 존재합니다.

 

주인공 시라 시프맨 Shira Shipman은 야카무라 스팃헨 (Y-S)이라는 멀티 체제 내에서 살아가는 30대 나이의 여성입니다. 그미는 과학 기술의 영역에서 놀라운 재능을 드러냅니다. 시라는 젊은 시절에 “가디 Gadi”라는 남자와 사귄 바 있는데, 그와 헤어진 뒤부터 남자에 대해 더 이상 미련을 두지 않고 일에만 몰두합니다. 그미에게는 유치원에 다니는 아들, “아리 Ari”가 있습니다. 어느 날 시라는 남편, 요쉬 Josh과 이혼하게 되는데, 이때 당국으로부터 아들의 양육권을 포기하라는 명령을 받게 됩니다. 말하자면 당국은 이러한 조처를 내림으로써 전남편에게 유리한 판결을 내린 셈입니다. 시라는 멀티의 이러한 부당한 조처에 대해 경악을 금치 못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스스로 판결을 뒤엎을만한 능력을 지니지 않은 데 대해 몹시 낙심합니다. 그리하여 그미는 자신의 고향인 “틱바 Tikva” 공동체로 낙향합니다. “틱바”는 히브리어로 “희망”을 뜻하는데, 유대인의 자유로운 거주공간을 지칭합니다. 시라의 고향은 다른 지역에 비해 비교적 멀티의 영향을 덜 받고 있었으며, 자신을 보살피고 키워준 할머니, “말카 Malkah”가 거주하고 있었습니다. 시라는 자신의 억척스럽고 생명력 넘치는 할머니 곁에 머물면서, 휴식을 취하며, 앞으로 자신이 어떻게 살아야할지 구상하려 합니다.

 

 말카는 젊은 시절에는 완성한 생명력을 구가하던 여자였지만, 나이 들어서는 더 이상 사랑과 성에 집착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미가 남자로부터 완전히 등을 돌린 것은 아닙니다. 말카는 드물지만 가끔 끓어오르는 성욕을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육체적으로 건강합니다. 그미는 사이보그 발명 작업에 참여하며, 과학 기술 분야에 적극적 관심을 드러냅니다. 말카는 나이 들었지만, 여전히 놀라운 명석함을 지니고 있습니다. 주인공, 시라는 할머니 집에서 휴식을 취하다가, 아브람이라는 나이든 남자를 만납니다. 아브람은 자신이 과거에 사귄 바 있던 가디 Gadi의 아버지로서, 말카와 함께 사이보그 발명에 박차를 가하는 전문 기술자입니다. 그는 아내가 죽은 뒤부터 다른 여자들에게 어떠한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자신의 실험에 전력투구합니다. 가령 말카가 어느 날 밤에 술로써 그를 은근히 유혹했지만, 아브람은 여기에 빠져들지 않습니다.

 

 

 

 

 

아브람은 처음부터 외견상 인간과는 아무런 차이가 없는 사이보그를 개발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인간과 유사하게 생긴 사이보그를 만들면, 그는 군인으로서 틱바 공동체를 지키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공동체 사람들은 걱정 없이 평화를 누리며 살아갈 수 있으리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멀티들, 특히 야카무라 스팃헨 (Y-S)은 일반 사람들이 당국의 허락 없이 사이보그를 개발하는 일을 처음부터 용인하지 않았습니다.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사이보그의 개발은 비밀리에 추진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느 날 “요드”라는 이름을 지닌 사이보그가 만들어집니다. 아브람은 아홉 번이나 실패를 거듭했는데, 열 번째의 시도에서 마침내 성공을 거둔 것입니다. “요드”는 히브리어로 “10번째의 편지”라는 뜻을 지닙니다. 카발라 신비주의에 의하면 이것은 “새로운 신”을 상징합니다. 주인공 시라는 엄격한 통제 속에서 사이보그, 요드가 어떻게 인간으로 행동해야 하는가를 하나씩 가르칩니다. 요드는 주인공을 통해서 식사 예절, 에티켓, 대화하는 방법 등을 하나씩 배워나갑니다. 그렇게 해야만 사이보그가 적들의 눈에 띄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틱바 공동체의 보호를 위해서 만들어진 요드의 능력은 참으로 놀랍습니다. 그는 인간과 유사한 희로애락의 감정을 지니고, 양심으로 갈등을 느낄 수 있으며, 사랑, 협동 그리고 봉사가 무엇을 뜻하는지 분명히 감지하고 있습니다.

 

 새로 태어난 사이보그, 요드는 신체적으로 건강한 남자와 다를 바 없습니다. 탄생 후에 요드는 말카의 유혹을 받고, 순진한 아기처럼 그미의 품에 안깁니다. 사이보그는 엉겁결에 그미와 성교하게 되는데, 이는 여러 번 반복됩니다. 이때 요드는 성이 무엇인지를 감지하게 됩니다. 남녀의 성적 결합이 사랑을 확인하려는 인간적 몸부림인데, 스스로 말카를 사랑하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말카와의 성적 교합은 쾌락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시라가 틱바 공동체에 온 뒤부터 요드는 더 이상 말카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요드는 오로지 시라에 대해 사랑의 감정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시라는 단시간에 인간으로 행동하고 살아가는 모든 방식을 가르쳐줍니다. 사이보그에 대한 교육은 오로지 비밀리에 행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해야만 딕바 공동체는 실제 세계에서 그리고 온라인상에서 모든 해커들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습니다.

 

 “네트”는 오늘날의 인터넷 시스템이 발전된 공간을 가리킵니다. 네트가 존재하므로, 개별적 멀티들은 서로 그리고 독자적인 공동체에서 살아가는 타자들과 정보를 공유하고 소통할 수 있습니다. 네트의 참여자들은 모든 것을 공유합니다. 여기에는 어떠한 예외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의식 속에 도사린 세계관 또한 공유의 대상입니다. 말하자면 전기쇼크 등을 통해서 정신과 세계관 역시 타인에게 전달되곤 합니다. 이러한 방식의 물리적 결합은 때로는 커다란 부작용을 낳습니다. 가령 전기쇼크는 인간의 뇌를 손상시키거나, 생명을 위협하기도 합니다. 문제는 틱바 공동체의 사람들이 네트를 통해서 얼마든지 참혹하게 공격당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요드는 이러한 무차별적인 공격에 대항할 수 있습니다. 요드의 몸은 일부 기계로 구성되어 있으므로, 어떠한 경우에도 지치지 않습니다. 주인공 시라는 요트에게 인간의 행동을 가르치다가, 어느 순간 그에게서 어떤 훌륭한 성정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시라는 사이보그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끼기 시작합니다. 말하자면 요드는 어떠한 다른 남자보다도 더 강직하고 다정다감한 마음씨를 지니고 있었던 것입니다. 자고로 세상을 살아가면서 자신과 맞는 이성을 발견하는 것은 하나의 행운일 것입니다. 시라는 사이보그 요드를 통하여 바로 이러한 행운을 거머쥐게 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