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나의 친구들,
그리운 제자들,
만나서 대화를 나누고싶은 동학들,
그리고 후학 여러분에게
2020년 2월을 마지막으로 나는 학교를 그만 두게 되었습니다. 만우관의 강의실, 내가 가르친 학생들의 형형한 눈빛, 그들의 따뜻한 미소, 세마대 아래의 철학자의 길 그리고 햇빛을 그리워하는 나의 연구실 등을 생각하면, 그야말로 만감이 교차하는군요. 직장인으로서의 모든 의무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시원하고 후련하지만, 연구실의 방을 빼고 떠나야 하니 약간 아쉽기도 합니다. 회자정리 (會者定離)라고, 만남은 이별은 낳고, 이별은 또 다른 만남을 기약합니다. 일순 나의 존재는 양산동 가을의 낙엽처럼 어디론가 쓸려가겠지만, 함께 했던 시간들은 우리의 기억의 한 구석에 고스란히 남아 있겠지요. 그리고 누군가 서로박 샘이 잠시 여기 머물면서, 사랑 조금 남기고 떠났음을 아련하게 기억해주겠지요.
퇴임식을 단호히 거절했습니다. 지금까지 필자는 뮌핸 대학교에 입학할 때, 빌레펠트 대학교를 졸업할 때, 한 번도 식을 올린 적이 없습니다. 마치 삶과 죽음 사이에는 문지방이 없듯이, 이전의 삶과 이후의 삶에는 별반 차이가 없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흐르더라도, 달력을 찢는 마음으로 조용히 살다가 갈 것입니다. 몇몇 학생들은 감사하게도 다음 학기 강의를 요청했지만, 나는 이를 정중하게 거절했습니다. 젊고 유능하며, 가난한 강사들에게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반드시 글을 통해서 다시 조우하게 될 것입니다.
가령 서양 유토피아의 흐름은 제 2권, 제 3권, 제 4권, 제 5권, 제 6권으로 계속 간행될 것입니다. 나는 참 모자라는 게 많은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일말의 희망을 품습니다. 언젠가 젊은 서로박이 리영희 선생님의 저작물들을 읽고, 그분을 자신의 정신적 은사로 삼았듯이, 오늘날 몇몇 젊은이들 역시 필자의 책을 읽고 나를 "잊을 수 없는 선생"으로 떠올려주기를 그리하여 애정 어린 마음으로 필자의 책 속의 오류를 지적해주기를 진심으로 바라면서..
그리고 언젠가는 내 사랑하는 마음이 문학작품 속에 남게 되기를. 그리하여 그 속에 나와 함께 시간을 보냈던 젊은이들의 얼굴이 영롱하게 새겨지기를 바랍니다.
Auf Wiedersehen.
Remember me, please
Es war sehr schön, euch getroffen zu haben.
C'était très gentil avec toi.
Se reúnen de nuev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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