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근대독문헌

서로박: (2) 실러의 '간계와 사랑'

필자 (匹子) 2024. 5. 8. 09:23

(앞에서 계속됩니다.)

 

친애하는 K, 레이디 밀포드가 도대체 어떠한 여자입니까? 그미는 독일 제후와 내연관계에 있었던 귀족 처녀였습니다. 말하자면 아버지는 자신의 권력과 부귀영달을 위해서 제후가 몰래 데리고 놀던 음탕한 여자를 아들과 결혼시키려고 주선했던 것입니다. 페르디난트는 아버지의 제안을 단호하게 거절합니다. 왜냐하면 그는 루이제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더 이상 아버지에게 복종하지 않고, 루이제와 함께 어디론가 도주하려고 합니다. 이로 인하여 주인공은 아버지와 커다란 갈등관계에 처하게 됩니다.

 

비극은 두 사람 사이의 깊은 대화 부족에서 파생됩니다. 말하자면 루이제의 침묵이 화를 부추기는 셈입니다. 작품 내에서 페르디난트는 혁명적 열정으로서 계층 차이를 허물어뜨리고, 자신의 사랑하는 감정을 행동으로 실천하려고 애를 씁니다. 그런데 그의 발언이 격정적으로 그리고 거대한 외침으로 표출되고 있다면, 루이제의 태도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그만큼 더욱더 위축됩니다.

 

급기야 그미는 고통스러운 갈등으로 아예 입을 닫아버립니다. 왜냐하면 그미의 마음은 페르디난트에 향해 있는 반면에, 그미의 머리는 아버지의 판단으로 향해 있기 때문이지요. 그렇지만 페르디난트는 그미의 침묵을 오해합니다. 자신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루이제가 소극적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고 잘못 판단합니다. 이러한 성급한 판단은 주인공의 타오르는 마음에 더욱더 부채질을 가합니다.

 

두 사람 사이의 관계를 더욱 어렵게 만드는 것은 주인공의 아버지 발터와 그의 시종, 부름의 치밀하고도 악랄한 계략이었습니다. 그들은 일단 음악가 밀러와 밀러 부인을 납치하여 감옥에 가두어버립니다. 뒤이어 부름은 루이제에게 몰래 찾아가서 다음과 같이 협박합니다. 부모님을 살리고 싶으면, 궁정의 근위대장, 칼프에게 한 통의 애절한 연애편지를 집필하라, 그렇지 않으면 부모님을 죽여 버리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나아가 부름은 루이제가 신 앞에서 다음과 같이 맹세해야 한다고 덧붙입니다. 즉 그미의 연애편지는 강요가 아니라 오로지 자의에 의한 것이라고 말입니다. 루이제로서는 연애편지를 작성하는 것 외에는 다른 방도가 없습니다.

 

아버지의 간계는 결국 등장인물들을 끔찍한 파국으로 몰고 갑니다. 페르디난트는 누군가 자신에게 건네준 루이제의 연애편지를 읽고 극도의 절망감에 빠집니다. 그의 절망감은 내면에서 복수심을 부추깁니다. 루이제는 부모를 살리려고 본의 아니게 사랑하는 남자를 배신했지만, 사랑하는 남자와 함께 목숨을 끊음으로써 자신의 결백을 밝히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미의 아버지인 밀러는 딸이 자살 의도를 미리 알아차리고 이를 말립니다. 자살은 부모와의 인연마저 끊어버리는 커다란 죄라는 것입니다.

 

루이제는 페르디난트와 마주칩니다. 페르디난트가 그미를 비난하면서 실망감을 드러냅니다. 어찌 다른 사람을 사랑하면서 자신을 이다지도 속일 수 있는가? 하는 게 그의 항변이었습니다. 이때 루이제는 다시 자신의 속내를 드러낼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미는 자의에 의해서 연애편지를 작성했노라고 신 앞에서 맹세했기 때문입니다. 루이제는 간계의 희생양으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정황에 처해 있습니다. 자신의 무죄를 찾을 수 없다는 절망감은 자살로 이어집니다. 결국 그미는 독약을 마십니다. 페르디난트는 뒤늦게야 사태를 간파하고 아무런 죄 없는 루이제를 찾았으나, 그미의 몸에는 이미 독 기운이 퍼져 있었습니다. 페르디난트 역시 독약을 마시며 비극적인 최후를 마치게 됩니다.

 

 

영화 간계와 사랑의 마지막 장면. 페르디난트의 역에는 아우구스트 딜이, 루이제의 역에는 파울라 칼렌베르크가 담당하였다.

 

「간계와 사랑」은 공연되자마자 격렬한 비판에 시달렸습니다. 이를테면 카를 필립 모리츠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대체 머릿속에 무슨 생각을 하기에 그따위 허튼 이야기를 극작품으로 만든단 말인가?” 그릴파르처와 헵벨 역시도 이와 비슷하게 실러의 작품을 비난하였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에 이르러 문학평론가들은 봉건국가의 권력 횡포에 대한 작가의 신랄한 비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기실 어떠한 극작품도 절대주의 국가의 권력에 그처럼 노골적으로 단도를 들이대지 못했습니다. 친애하는 K, 특히 우리가 망각해서는 안될 사항은 인신매매에 관한 내용입니다. 작품의 한 장에서 궁정 관리와 밀포드 부인이 서로 대화를 나누는데, 이 대화에서는 칠천 명의 시골 아이들이 군인으로 차출되어 미국으로 팔려나가는 이야기기 등장합니다. 이는 참으로 끔찍한 노예 판매의 짓거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나아가 우리는 실러의 극작품을 종교사적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루이제 밀러린의 가족들의 종교적 입장에 관한 것입니다. 이들은 독일의 소시민 계급의 세계관을 그대로 표방하고 있습니다. 예컨대 어떠한 경우에도 신 앞에서의 맹세는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고 믿는 루이제의 경우를 생각해 보십시오.

 

페르디난트가 궁정의 부자유스러운 관습에 부딪쳐 자신의 고유한 자유를 실천하지 못하듯이, 루이제 역시 종교관에 근거한 부모의 계명을 어길 수 없습니다. 그미는 성 문제에서 순결을 지켜야 하고, 아버지에게 복종해야 하며, 종교적 계명을 반드시 따라야 합니다. 나가가 그미의 아버지인 궁정 악사인 밀러 역시 갈등에 시달립니다. 그는 궁정이 자기 자신을 매수하려고 내미는 돈 때문에, 신의 양심대로 살아가려는 자신의 기본적 원칙마저 저버리지 않습니까? 한마디로 「간계와 사랑」은 실러가 고발하려던 모든 사항을 모조리 드러내는 작품입니다.

 

간계와 사랑은 이원양 교수에 의해서 번역되어 1990년 범우사에서 간행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