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근대독문헌

서로박: (1) 실러의 '간계와 사랑'

필자 (匹子) 2024. 5. 8. 09:21

오늘은 프리드리히 실러 (1759 - 1805)의 5막 극, 「간계와 사랑 Kabale und Liebe」을 다루기로 하겠습니다. 이 작품은 1784년 4월 13일 프랑크푸르트 극장에서 처음으로 공연되었습니다. 주지하다시피 실러는 1782년 9월 24일 자신의 친구이자 훗날 음악가로 이름을 떨치는 요한 안드레아스 슈트라이허 (Johann Andreas Steicher, 1761 - 1833)와 함께 카를 오이겐 공작이 다스리는 뷔르템베르크 공국을 탈출하였습니다.

 

바로 이 시기에 그는 「도둑떼들」,「제네바에서의 피에스코의 반란」 다음으로 세 번째의 극작품을 구상 중이었습니다. 이 사실은 실러가 1783년 1월 14일 만하임의 인민 극장의 단장인 달하임에게 보낸 편지에 적혀 있습니다. 프리드리히 실러는 그해 7월까지 극작품의 집필 및 수정을 거듭하였습니다. 작품의 제목은 처음에는 “루이제 밀러린”으로 정해졌는데, 나중에 만하임의 배우 이플란트의 조언으로 「간계와 사랑」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간계와 사랑」은 레싱 Lessing의 「미스 사라 삼손」 그리고 프리드리히 헵벨 Friedrich Hebbel의 「마리아 막달레네」의 사이의 시기에 출현한 시민 비극입니다. 실러는 봉건 시대의 서로 다른 계급 간의 사랑과 결혼의 문제를 하나의 문제점으로 다루려고 하였습니다. 이로써 극작가는 마치 레싱의 경우가 그러하듯이 18세기 이후로 성장한 시민의 자의식을 부각시키려고 하였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간계와 사랑」은 상기한 측면에서 「에밀리아 갈로티」와 유사한 특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것은 시민 계급의 삶의 방식이 무엇보다도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고, 이를 노골적으로 드러낸다는 사실입니다. 실제로 시민 비극은「에밀리아 갈로티」 이후로 대체로 귀족과 시민 사이의 갈등의 장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간계와 사랑」 역시도 이러한 계급 갈등을 저변에 깔고 있는 작품입니다. 그밖에 실러의 작품은 종교이냐, 아니면 무조건적인 사랑이냐? 하는 물음을 아울러 포괄하고 있습니다.

 

 

페르디난트는 독일 제후의 궁정에 근무하는 수상의 아들입니다. 말하자면 귀족의 자제이지요. 어느 날 그는 음악가, 밀러의 딸을 처음으로 보는 순간 깊은 연정을 느낍니다. 이때부터 주인공은 루이제에 게 향하는 사랑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려고 합니다. 그러나 루이제는 그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신분과 계층의 차이는 무엇보다도 신에 의해서 주어진 것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미는 무엇보다도 주어진 인습을 따라야 한다고 믿습니다. 누군가 주어진 신분을 뛰어넘는다는 것은 신의 뜻을 거슬리는 처사라는 것입니다. “내가 당신에게 드릴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순결밖에 없어요. 그렇지만 아버지는 항상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지요. 주께서 식장에 모습을 드러낸다면 보석과 화려한 귀족 칭호조차도 하찮은 것들이라고 말이에요. 그러면 사랑하는 마음의 가치는 그만큼 상승할 테니까요.

 

문제는 양가의 부모들이 두 사람의 결합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한편으로 음악가 밀러는 인습적인 도덕에 순응하는 전통적 가부장이므로, 딸이 귀족의 자제와 결혼하는 것 자체를 부담스럽게 생각합니다. 다른 한편으로 페르디난트의 아버지, 발터는 전제 군주를 측근에서 모시는 부패한 수상일 뿐 아니라, 사악한 이기심으로 가득 찬 인간입니다. 그는 아들을 레이디 밀포드 Lady Milford라는 여자와 결혼시킴으로써 더 많은 이득을 차지하려고 합니다.

 

(계속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