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 현대영문헌

서로박: 웰스의 모던 유토피아 (5)

필자 (匹子) 2021. 9. 13. 09:53

27. 세계 국가의 문제점 (1): 웰스는 19세기 후반부터 서서히 강성해지는 국가의 시스템에 관해서 깊이 숙고하였습니다. 나아가 자본주의의 경제 질서가 힘 있는 국가의 가장 절친한 조력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예리하게 간파하였습니다. 따라서 미래의 막강한 국가 체제는 수틀릴 경우 얼마든지 사악한 엘리트에 의해서 좌지우지될 수 있으며, 끔찍한 폭력으로써 인류를 말살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웰스는 제 1차 세계대전 이후에 이러한 우려감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우려는 결국 그로 하여금 『모던 유토피아』를 설계하게 하였습니다. 이 작품에는 웰스가 추구하는 거대한 세계국가의 모습이 문학적으로 설계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세계국가는 무조건 훌륭한 국가의 모델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습니다. 세계 국가는 무제한의 사유재산을 용인하고, 부자들의 재산은 국가의 법 규정에 굴복당하고 있으며, 모든 지하자원 내지 사회적 간접자본은 모조리 국유화되어 있습니다. (Jens W: 534). 따라서 세계 국가는 현대인 개개인이 절대적으로 고개 숙여야 하는 새로운 신의 절대 존재와 동일합니다. 이로써 국가 중심적 폭력은 의도적이든 의도적이 아니든 간에 개개인의 자유를 얼마든지 억압할 수 있습니다.

 

28. 세계 국가의 문제점 (2): 웰스가 활동가의 계층을 사무라이라고 표현한 것 자체가 엄청난 문제점을 안고 있습니다. 사무라이는 일본에서 탄생한 무사계급을 비유하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무라이의 정신은 일본의 군국주의 내지 우익 사대부의 관심사를 실천에 옮기려는 의지로 의미 변화를 이루게 됩니다. 사무라이들은 실제 일본에서 주인의 명령을 죽음으로 실천하는 충직한 행동을 마다하지 않았으며, 천황에 대해 절대적으로 복종하며, 나아가 가미가제의 자폭 등의 방식을 실천하는 행동 대원으로 발전되었습니다.

 

요약하자면 사무라이는 권력 내지 금력을 지닌 (범법?) 집단에 대한 무조건적인 충성을 중요시한다는 점에서 이탈리아의 조폭 마피아 집단과 매우 흡사합니다. 물론 웰스는 사무라이에 긍정적 엘리트의 의미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사무라이는 권력 집단이 아니라, 자원봉사자의 임무를 수행할 뿐이라는 것입니다. 웰스가 사무라이를 이런 식으로 서술한 배경에는 엘리트 중심의 페이비언 사회주의 내지 기존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전체주의 국가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김남영: 38).

 

29. 세계 국가의 문제점 (3): 세계 국가의 상류층을 구성하는 사무라이들 역시 엄밀히 따지면 “주의 충직한 개 domini canes”의 역할을 수행합니다. 가령 모든 학교장, 대학장, 모든 판사, 변호사, 거대한 직원을 거느리는 고용주, 모든 의사 그리고 입법자들은 사무라이들에 의해서 배정되어 있습니다. 『모던 유토피아』에 묘사된 세계국가는 파리 근처에 거대한 행정청을 마련하고 있는데, 이곳의 컴퓨터에는 약 15억의 수에 해당하는 개개인의 고유 번호, 지문, 거주지 변경, 나이, 사망 원인, 결혼 여부, 부모, 전과 여부 등이 입력되어 있습니다. (Wells 67: 163). 바로 여기서 “감시와 처벌” (Foucault)이라는 국가의 메커니즘이 작동되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세계 국가의 시스템이 기술적으로 혹은 인간의 실수에 의해서 잘못 작동될 경우, 엄청난 파국이 도래한다는 점입니다.

 

물론 이러한 파국을 막기 위해서 처음부터 개발된 것이 자연과학의 이성이라고 상정할 수 있는데, 어차피 칼자루를 쥐고 있는 것은 과학 기술 자체가 아니라, 자연과학자, 즉 인간들입니다. 따라서 문제는 인간의 실수, 혹은 어떤 사악한 의도가 국가 전체의 시스템을 얼마든지 교란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과학 기술의 진보에 대한 웰스의 낙관주의에 대해 근본적인 이의를 제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몇 년 후에 보그다노프 역시 이러한 세계관에 근거하여 『붉은 행성』에서 어떤 놀라운 화성 유토피아를 설계했는데, 이 역시 상기한 문제점을 은근히 드러내고 있습니다.

 

30. 영향: 웰스의 『모던 유토피아』는 독일에서는 『시리우스의 저편에서』라는 제목으로 간행되었는데, 20세기의 모든 유토피아의 유형에 대한 하나의 획기적인 이정표를 마련해주었습니다. 구체적으로 말해서 웰스의 문학작품들은 특히 20세기의 디스토피아 문학이 출현하는 데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해주었을 뿐 아니라, 사회 내지 국가 공동체에 과학 기술이 얼마나 막강한 영향을 끼치는가? 하는 점을 알려주었습니다. 그렇기에 웰스의 『모던 유토피아』는 과학과 테크놀로지를 합치시킨 원형적인 유토피아의 대열에 편입될 수 있습니다. E. M. 포스터, 헉슬리, 오웰, 보이어 등의 디스토피아 문학은 웰스의 문학 유토피아 없이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참고 문헌

 

- 김남영 (2014): 유토피아의 초상. 웰스의 『모로 박사의 섬에서 디스토피아를 읽다,』, 실린 곳: 해석과 판단 비평공동체, 유토피아라는 물음, 산지니.

- 웰스, 허버드 조지 (2005): 우주전쟁, 이영욱 역, 황금가지.

- 이상화 (1996): 20세기 영국 유토피아 소설 연구, 중앙대 출판부.

- 푸코, 미셀 (2009): 감시와 처벌. 감옥의 역사, 고광식 역, 다락원 2009.

- Berneri, Marie Luise (1982): Reise durch Utopia, Berlin.

- Erzgräber, Willi (1985): Utopie und Anti-Utopie in der englischen Literatur, München.

- Forster, Edward Morgan (1980).: The Machine stops, Collected Short Stories, London.

- Jens (2001): Jens, Walter (hrsg.), Kindlers neues Literaturlexikon, 22 Bde, München.

- Kumar, Krishan (1987): Utopia and Anti-Utopia in Modern Times, Oxford.

- McLean, Steven (2009): The Early Fiction of H. G. Wells: Fantasies of Science, ebook.

- Mumford, Louis (1922): The Story of Utopias, New York 1922 (한국어판) 루이스 멈퍼드 (2010): 유토피아 이야기, 박홍규 역, 텍스트.

- Saage, Richard (2006): Utopische Profile, Bd. 4. Widersprüche und Synthese des 20. Jahrhunderts, 2. korrigierte Aufl. Münster.

- Sherborne, Michael (2016): Another Kind of Life, Kindle.

- Wells, Herbert George (1904): Zeitmaschine, MInden.

- Wells, Herbert George (1967): A Modern Utopia, Lincol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