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장미 십자단원의 영향: 장미십자단의 사상은 독일에서 영국으로 그리고 다시 폴란드로 전파되었습니다. 이들을 이끈 인물로서 우리는 미하엘 마이어Michael Maier, 존 디John Dee, 로버트 플러드Robert Fludd, 토마스 보언Thomas Vaughan 등을 들 수 있습니다. 이들의 운동과 사상은 나중에 데카르트, 코메니우스, 스피노자, 뉴턴, 라이프니츠 등으로 이어졌다고 하는데, 이에 관해서는 학자들 사이에 의견이 분분합니다. 장미십자단원들은 대부분의 경우 파라켈수스의 의학 서적과 연금술의 책자들을 소지하고 있었으며, 환자를 무료로 치료해주는 등 여러 가지 뜻 깊은 박애 활동을 펼쳤습니다. 그러나 1614년 이후에 칼뱅 교회의 목사가 된 다음에 안드레애는 노골적으로 장미십자 단원과의 관련성을 부인하였습니다. 왜냐하면 기독교 사상이 일반 사람들에게 이른바 천년왕국이라는 허황된 꿈을 부추기고 있다고 판단되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나타나듯이 안드레애는 오랜 기간 일반 대중 사이에 퍼져나가던 천년왕국설을 부인하고, 깊은 신앙과 훈육에 근거하는 칼뱅의 신학적 가르침을 추종하였습니다.
9. (부설) 연금술의 유토피아: 참고로 말씀드리면 안드레애는 연금술을 단순히 금속 제련의 방법 내지 야금술로 이해하지 않았습니다. 연금술은 안드레애에 의하면 사회적 죄악으로 더럽힌 세상을 기독교 사상이라는 황금으로 변화시키려는 노력을 가리킵니다. 이 경우 금은 순수하고 고결한 믿음에 대한 객관적 상관물이지요. 안드레애가 이미 발표한 「수도사의 명성Fama Fraternitatis」 그리고 「수도사의 고백Confessio Fraternitatis」를 읽으면 우리는 다음의 사실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즉 연금술은 일주일간의 축제를 통하여 아름다운 신부를 납치하는 여인 “알키미아 Alchimia”와의 조우로 비유될 수 있다고 말입니다. 일주일 동안의 축제는 연금술의 실험 방식과 관련됩니다. 그것은 “증류destillatio”, “용해 solutio”, “순화purefactio”, “검게 태우기nigredo”, “태양광으로 강도 높이기albedo”, “정제fermetatio”, “의학적 구성projectio medicinae”이 바로 그 일곱 가지의 실험 방식입니다. (블로흐: 1298). 이를 위해서 필요한 세 가지 기본적 매개물은 모든 것들을 용해시키는 수은 Mercur, 모든 것들을 불태워 결합시키는 황 Sulphur 그리고 모든 것들을 응고시키는 소금Sal입니다. 결국 연금술이란 기독교 사상이라는 황금의 빛으로 “인간다운 사회Sicietas humana”를 건립하기 위한 실험과도 같습니다. 바로 이러한 방식을 통해서 중세의 연금술은 과학 기술의 실험이라는 단순한 영역을 벗어나서, 하나의 이상 추구라는, 의미심장한 역사철학적인 의미를 획득하게 됩니다.
10. (부설) 연금술의 유토피아가 지니는 개혁적 특징: 안드레애가 생각했던 보편적 의미의 종교 개혁은 그리스도의 도시 국가에 태양의 빛을 환하게 퍼뜨리겠노라 라는 각오에서 출발합니다. 세계를 기독교 사상의 황금빛으로 정화하겠다는 생각은 연금술과 일맥상통하는 것입니다. 세계는 태양의 빛에 의해서 밝아지듯이, 그리스도의 도시 국가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 역시 빛 (황금)의 지속적인 열정으로 끓어오르게 되기를 안드레애는 갈구하였습니다. 이는 한마디로 “계몽 Enlightenment”의 정신과도 일치하는 것입니다. (블로흐: 1300). 그렇지만 안드레애가 꿈꾸는 찬란한 사회는 결코 막연하게 천년 왕국을 갈구하는 사이비 집단의 신앙에 의해서 이룩되는 게 아니라, 성서의 근본을 깨닫고, 이에 근거한 신앙을 실천하는 방법을 통해서 가능하다고 합니다. 이 점을 고려한다면 『기독교 도시 국가』는 계몽주의가 아직 꿏 피우기 이전의 시대에 황금의 기독교 사상으로 착색된 인간다운 사회를 설계하고 있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연금술의 목표와 일맥상통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안드레애의 유토피아 역시 “근본적으로 부패한 뒤집힌 세상의 진창”으로부터 어떤 대립의 과정을 거쳐, 그곳을 빠져나온 가상의 공간이기 때문입니다. (블로흐: 1300).
11. 모어의 『유토피아』 그리고 아른트의 『진정한 기독교』의 합작품: 『기독교 도시국가』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문헌으로서 우리는 모어의 『유토피아』, 요한 아른트 Johann Arndt의 『진정한 기독교에 관하여Vom wahren Christentum』을 들 수 있습니다. 실제로 안드레애는 요한 아른트에게 자신의 책을 헌정하고 있습니다. 요한 아른트는 1605년 『진정한 기독교에 관하여』를 집필 발표하였는데, 이 책은 당시에 상당한 물의를 불러일으켰습니다. 왜냐하면 이 책은 종교 개혁의 사상을 표방하고 있으나, 정통 루터 사상으로부터 벗어난다는 비판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아른트의 책은 종교적 문제보다는 정치적 문제로 인하여 구설수에 올랐습니다. 사실인즉 책은 자신의 작품에서 세속의 권력이 상업을 중시하는 도시의 부호들에게 주어져야 한다고 역설하였으므로, 비판을 당했던 것입니다. 요한 아른트는 자신의 책에서 삶의 개혁을 통해서 종교 개혁이 완성되어야 한다고 굳게 믿었습니다. 이후에 그는 자신의 책을 개작하여, 1610년 마그데부르크에서 4권으로 발표하였습니다. 안드레애는 일찍이 요한 아른트의 책을 접한 바 있는데, 이 책은 모어의 『유토피아』와 함께 안드레애에게 가장 커다란 영향을 끼친 문헌인 셈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안드레애는 “기독교 도시국가”가 “거대한 예루살렘의 유일한 식민지”이기를 바란다고 기술합니다. (Andreae: 491). 그렇지만 저자는 서문에서 모어를 명시적으로 언급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책은 모어가 용인하지 않는 바의 내용을 유희적으로 다루고 있다고 했습니다.
12. 캄파넬라의 『태양의 나라』의 영향: 우리는 또 한 가지 영향을 끼친 책으로 캄파넬라의 『태양의 나라』를 들 수 있습니다. 물론 안드레애는 캄파넬라의 『태양의 나라』를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나폴리의 감옥에 갇혀 있던 캄파넬라는 자신을 찾아온 토비아스 아다미에게 자신의 원고 뭉치들을 건네주었는데, 이자는 1623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태양의 나라』를 발간하였습니다. 1618년에 아다미는 튀빙겐에서 직접 안드레애를 만나, 캄파넬라의 라틴어 친필 원고를 보여준 적도 있었습니다. 이로써 우리는 다음의 사항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즉 캄파넬라의 사상과 문헌에 깊이 감동한 독일인, 안드레애는 독일에서 지금도 신교도가 많이 거주하고 있는 뷔르템베르크의 어느 작은 도시를 바탕으로 자신의 도시 국가를 설계하였다는 사항 말입니다. 이로써 우리는 다음과 같이 추론할 수 있습니다. 안드레애의 『기독교 도시 국가』는 모어의 작품 내용과 아른트의 작품 내용을 합성한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렇지만 안드레애의 작품은 모방에 그친 것이 아니라, 새로운 도시 국가의 참신한 내용을 형상화하는 데 성공을 거두고 있습니다. 이 작품이 없었더라면, 프랜시스 베이컨의 『새로운 아틀란티스』의 내용은 많이 달라져 있었을 것입니다.
13. 안드레애의 시대 비판 (1): 당시 유럽에서는 신교와 구교 사이의 갈등이 국가 간의 분쟁으로 비화되어 있었습니다. 안드레애는 모든 것을 프로테스탄티즘의 시각으로 고찰하려고 했습니다. 비록 루터가 기독교 신앙을 전폭적으로 개혁하는 불씨를 당겼지만, 당시의 교회, 왕궁 그리고 대학에는 여전히 이기심, 인색함, 탐욕 그리고 시기 등이 온존했습니다. 국가는 악덕을 사고파는 시장으로 전락하고 말았으며, 삶의 수준은 끝을 모른 채 추락하고 있었습니다. 이로 인해 피해를 입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일반 백성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안드레애의 시대비판이 -비록 간접적이기는 하지만- 지배계급으로 향한 것은 당연했습니다. 서문에서 작가는 다음과 같이 주장합니다. 즉 보다 순수한 신앙의 빛은 마르틴 루터에 의해서 환하게 타올랐지만, 왕궁과 교회 그리고 대학은 질투, 탐욕, 인색함, 시기, 나태함 그리고 그밖의 지도층이 지니고 있는 온갖 악덕으로부터 여전히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Andreae: 8). 유럽의 국가에서는 사람들이 온갖 악덕을 매매하는 시장이나 다름이 없다고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작가의 완강한 현실 비판을 읽을 수 있습니다. (Schölderle: 74). 그밖에 안드레애의 비판은 이른바 기독교 신자들에게 반드시 천년왕국을 기약해준다고 하는 (요한 계시록에 언급된 바 있는) 허황된 약속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기독교 사상의 진면목은 성서에 기술된 진정한 의미의 이웃 사랑과 자유로운 신앙의 삶을 추구하는 것이지, 내세를 빌미로 현세에 살아가는 민초들에게 천국의 망상을 심어주는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요약하건대 빈부차이로 인한 사회적 양극화 현상 그리고 도덕의 파괴가 『기독교 도시 국가』의 집필 계기로 지적될 수 있습니다.
14. 안드레애의 시대비판 (2): 저자의 시대 비판적 특성은 그 밖의 다른 곳에서 발견됩니다. 안드레애는 무엇보다도 법을 관장하는 재판소에 비판의 화살을 겨누었습니다. 법정은 신을 우롱한 자, 간음한 자들에게 가벼운 형벌을 내린 반면에, 빵을 훔치는 좀도둑에게 과도한 형벌을 가해 왔습니다. 심지어는 몇 가지 식량을 훔친 죄로 사형선고를 당하는 일까지 벌어졌습니다. 법정은 무고한 자들을 피 흘리고 고통당하게 한 반면에, 정작 끔찍한 처벌을 받아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죄에 합당한 형벌을 내리지 않았던 것입니다. 법관들은 폭력, 거짓말 그리고 위선을 무기로 삼아서,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부당한 판결을 내렸습니다. 그들은 망나니들로 하여금 무차별적으로 사형을 집행하게 하였지만, 스스로는 법을 준엄하게 지키는 신하일 뿐이라고 만천하에 공언하였습니다. (Andreae: 39). 안드레애의 비판은 경제적 문제로 인한 도덕의 타락 그리고 믿음의 상실로 향하고 있습니다. 수많은 하층민들은 배를 움켜쥐고 쓰러린 채 고통을 호소하는 반면에, 일부의 상류층들은 끝없이 재화를 축적하고 살고 있었습니다. 특히 사악한 고위수사의 횡포는 심각하기 이를 데 없고, 이들은 부자들과 결탁하여, 가난한 민초들을 교묘하게 착취하면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안드레애는 이러한 사항을 예리하게 통찰하였고, 『기독교 도시 국가』를 서술함으로써 어떤 나름대로의 대안을 마련하려고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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