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서 계속됩니다.)
11. 노동자의 단합과 프롤레타리아 혁명: 노동자들의 노동 가치는 마르크스에 의하면 자본가들에 의해서 일부 혹은 상당부분 착복당하고 횡령당합니다. 자본가들이 이익을 얻는 것은 오로지 노동자들의 노동이 여러 가지 다양한 방식으로 이용당하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러한 까닭에 마르크스는 1848년 29세의 나이에 엥겔스와 함께 발표한 「공산당 선언Das Manifest der kommunistischen Partei」에서 “만국의 노동자들이여 궐기하라!”하고 외쳤습니다. 이 글은 불과 23쪽의 분량의, 공산주의 운동을 추진하기 위한 최소의 문헌으로서 1848년 이후의 세계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이 책에서 마르크스는 지금까지의 역사를 계급투쟁의 역사라고 단정하고, 가난하고 고통당하는 프롤레타리아를 하나의 혁명을 수행할 수 있는 계급으로 규정하였습니다. 말하자면 마르크스와 엥겔스는「공산당 선언」을 통하여 하나의 구체적인 대안을 내세운 것입니다. 이것은 프롤레타리아의 독재를 가리키는데, 과거에 왕이 권력을 장악했다면, 이제는 무산계급이 자신의 권력을 장악하게 된다는 뜻으로 이해됩니다.
12. 구체적 현안: 「공산당 선언」에는 사유재산 제도의 폐해를 척결하기 위한 10가지의 개별 사항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1. 개인의 토지 소유는 폐지되어야 한다. 2. 부자는 자신의 재산에 합당한 누진세 규칙을 준수해야 한다. 3. 모든 상속권은 폐지되어야 한다. 4. 모든 망명객, 반역자의 재산은 국고에 환원되어야 한다. 5. 국가 자본을 지닌 독점 은행을 통해서 신용 자금을 국가의 수입으로 설정한다. 6. 모든 운송 수단 역시 국유화되어야 한다. 7. 국영 농장과 생산 도구를 보충하여 토지를 공동으로 개간한다. 8. 만인은 평등하게 자신의 노동을 수행해야 한다. 9. 농업과 공업 경영은 결합되어야 하고, 도시와 농촌의 재산 격차는 좁혀져야 한다. 10. 모든 아이들은 무상 교육을 받아야 하며, 배우지 않은 채 노동에 종사하게 해서는 안 된다.” (MEW. Bd. 22, 3A: 482). 만약 이러한 개별적 요구사항이 척결되면, 비로소 공산주의의 이상이 실현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될 수 있습니다. 자연과 인간의 본질적 통합되고, 인간의 자연화 그리고 자연의 인간화는 비로소 성립될 때 공산주의는 비로소 실현될 수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13. 마르크스주의의 유토피아 비판: 사실 마르크스주의는 내용과 의향을 고려한다면 토마스 모어 이후에 나타난 고전적 유토피아와 많은 공통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고전적 유토피아들은 대체로 사유재산제도의 철폐, 평등한 삶을 위한 여러 가지의 대안 내지는 개선책을 서술하고 있습니다. 마르크스주의 역시 계층 갈등과 빈부차이를 해결하고 노동자의 고유한 권익을 되돌려주기 위한 사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유토피아를 부정적 의미로 파악하였습니다. 특히 “공상주의Utopismus”라는 단어는 언제나 나쁜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마르크스는 “독일 공산주의를 단호하게 배척하는 자들은 공상주의자들이다.”라고 말했으며, 엥겔스는 유토피아 속에 도사린 가상적 환상의 요소를 신랄하게 비난한 바 있습니다. 독일의 사회주의 이론가들은 생시몽, 푸리에 그리고 오언의 이론적 바탕 위에 서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그렇지만 추상적 유토피아주의자들은 어떤 사회적 질서의 대안을 구상적으로 그리고 비학문적으로 설계하였다.“ (Engels: 194). 말하자면 생시몽, 푸리에 그리고 오언 등은 공상주의의 자세로 어떤 가상적 환상만 기술하였다는 것입니다. 엥겔스에 의하면 무산계급이 자신의 세력을 발전시키기 이전의 시기에 어떤 바람직한, 시대를 앞서는 현실상을 가상적으로 보여주었을 뿐이라고 합니다.
14. 상의 금지: 여기서 우리는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분명한 입장을 간파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더 나은 바람직한 삶을 구상적으로 기술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것은 학문적이고 엄밀한 사회주의 이론가가 행할 필요가 없는 구상적 상이라는 것입니다. 마르크스주의자는 더 나은 삶을 구체적이고 구상적인 상으로 선취하는 대신에 자본주의의 운동 법칙을 치밀하게 학문적으로 분석하여, 자본주의의 제반 법칙이 필연적으로 몰락하고 붕괴하리라는 것을 해명하면 그것으로 족하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입장은 마르크스주의가 추구해야 하는 태도로서, 미래에 관한 모든 상에 대한 금지로 규정되고 있습니다. (Adorno: 205). 마치 고대 사람들이 신의 얼굴을 직접 바라보는 것을 하나의 형벌로 간주되었듯이, 마르크스주의에서 더 나은 현실상을 예견하고 이를 구상적 상으로 확정시키는 행위 역시 금기시되었던 것입니다. 요약하건대 모든 혁명 이론의 상은 학문을 바탕으로 기론되어야 하지, 결코 유토피아의 성급한 구상적 실험 내지 이상으로 이해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15. “문제는 유토피아가 아니라, 학문이며, 실천이다.”: 마르크스주의는 찬란한 가상적인 삶의 구체적 범례를 필요로 하는 게 아니라, 학문적 논의를 필요로 합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유물 변증법의 방법론이며, 나아가 이를 통해서 참으로 인지되는 역사 법칙을 가리킵니다. 마르크스에게 중요한 것은 인간의 맹목적 운명으로서의 경험이 아니라, 인간이 능동적으로 역사를 간파하고 그 본질을 인식해내는 행위입니다. 그렇게 해야만 억압당하면서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은 현실의 변화에 실질적으로 관여할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오언 푸리에 생시몽과 같은 초기 사회주의자들은 엥겔스에 의하면 맹목적인 가상의 상을 제시함으로써, 기껏해야 폭력과는 무관한 사회적 변형의 의지만을 드러내었다고 합니다. 그들은 실제로 프랑스 혁명의 끔찍한 투쟁을 직접적으로 그리고 간접적으로 경험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초기 사회주의자들은 폭력 자체에 처음부터 혐오감을 표명하면서, 이에 대한 반대급부로서의 찬란하고 이름다운 현실상을 뜬금없이 소극적 자세로 미화했다는 것입니다. 이에 반해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혁명을 실현시키기 위해서 행위의 척도로서의 폭력마저 가능하다고 설파하고 있습니다. 마르크스는 부르주아가 자의에 의해서 대부분의 재산을 희사하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마르크스주의는 사회적 전복을 위한 필요악으로서의 프롤레타리아의 폭력을 용인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16.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유토피아 비판: 유토피아의 개념은 마르크스주의의 실천의 과정에서 계속 비판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1899년 블라디미르 일리치 레닌은 『우리의 프로그램』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습니다. “우리는 마르크스 이론의 토대 위에 있다. 이것이야 말로 사회주의를 유토피아에서 학문으로 만들게 했다.” (Lenin Bd. 4: 204). 나아가 레닌은 국가와 혁명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습니다. “우리는 유토피아주의자가 아니다. 우리는 막연히 꿈꾸지는 않는다.” (Lenin, Bd. 2: 194). 여기서 우리는 다음의 사실을 간파할 수 있습니다. 즉 유토피아는 19세기에 출현한 하나의 찬란한 가상적 상으로서, 이른바 낭만주의자들이 동경한 푸른 꽃으로 이해되고 있다는 사실 말입니다.
레닌 이후로 유토피아는 사회주의자들에게 언제나 부정적 의미를 지닌 개념으로 이해되어 왔습니다. 다시 말해 유토피아의 개념은 19세기 초에 나타난 낭만주의의 사고로서, 찬란한 과거의 상을 막연하게 동경하는 무엇이라고 파악되었습니다. 이로써 유토피아의 개념은 과거 역사에 일회적으로 나타난 사고로 국한되었습니다. 이러한 경향은 구동독까지 이어졌습니다. 1972년에 구동독에서 간행된 『마르크스 레닌주의 철학 사전』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과학적 사회주의는 유토피아의 종말을 의미하고, 또한 유토피아는 (현대) 사회주의 속에서 원래의 고유한 의미를 상실해버렸으므로, 유토피아의 개념은 이제 임의적으로 사용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19세기 그리고 20세기의 문학 작품 속에 담긴 유토피아는 근본적으로 탈 역사적인 의미를 지닌다.” (Buhr: 375).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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