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 동독문학

서로박: 프리스의 문학세계 (1)

필자 (匹子) 2023. 3. 14. 10:07

1. 서언

친애하는 F, 프리스는 폴커 브라운과 함께 동독 문학에서 가장 중요한 상상력의 작가에 해당하지만, 기이하게도 제대로 소개되지 않은 소설가이며 번역가입니다. 그는 1935년 에스파냐의 빌바오에서 태어났고, 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부친의 사망 후에 어머니와 함께 구동독의 라이프치히로 이주하였습니다. 프리스는 김나지움의 과정을 마친 후에 라이프치히 대학에서 영문학, 불문학 그리고 에스파냐 문학을 전공하였습니다. 그에게 영향을 끼친 사람은 라이프치히 대학의 철학자, 에른스트 블로흐, 독문학자, 한스 마이어 그리고 불문학자, 베르너 크라우스들이었습니다. 특히 크라우스는 프리스를 자신의 내제자로 받아들이고, “동독 학술 아카데미에서 많은 것을 전수한 바 있습니다. 에스파냐의 고전문학 그리고 현대 문학은 오랜 시간 동안 작가의 문학적 미학적 자양으로 활용되었습니다.

 

프리스는 동독에서 작품을 발표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의 작품, 오블라두로 향하는 길 Der Weg nach Oobladooh1966년에 우베 욘존 그리고 가브리엘레 보만 등의 도움으로 구서독의 주어캄프 출판사에서 어렵사리 간행되었다는 사실이 이를 잘 말해줍니다.오블라두라는 표현은 미국의 흑인 재즈 음악가, 디지 질레스피 Dizzy Gillespie의 노래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질레스피는 주로 트럼펫으로 연주하였는데, 간간이 보컬리스트로 활약했다고 합니다. “나는 오블라두라는 나라에 살고 있는 멋진 공주를 알고 있네. I knew a wonderful princess in the land of Oo-bla-dee”. 나중에 언급하겠지만, 오블라두는 어떤 다른 현실에 관한 객관적 상관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소설은 1956년에서 1957년 사이의 시점의 이야기이며, 드레스덴, 라이프치히 그리고 베를린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프리스의 소설에는 언제나 두 남자가 등장하는데, 이러한 페턴은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를 연상시키곤 합니다. 1996년에 사람들은 프리스가 1972년부터 1985년까지 페드로 하겐이라는 가명으로 슈타지의 비공식 협조요원 (IM)으로 일했다는 사실을 보도하였습니다. 이로 인하여 프리스는 펜클럽 등과 같은 문인 단체를 떠나야 했습니다.

 

2. 오블라두로 향하는 길(1)

작품은 페터 아를레크 Peter Arlecq, 클라우스 파아쉬 Klaus Paasch라는 두 명의 남자의 삶과 우정을 고찰하고 있습니다. 아를레크는 에스파냐 고전문학 번역가인데, 가끔 통역의 일로 생활비를 벌곤 합니다. 아를레크는 섬세한 심성의 소유자로서, “쉽사리 판타지를 떠올리는작가적 재능을 지니고 있습니다. (190). 그가 에스파냐 출신이라는 사실 그리고 에스파냐 문학을 번역하고 간간이 통역사로 일한다는 점 등은 프리스와 매우 흡사합니다. 또 다른 주인공, 파아쉬는 학교 다닐 때부터 재즈 음악에 심취하는 청년입니다. 그는 공부하지 않고, 카운트 베이시, 오스카 페터슨 그리고 델로니우스 몽크 등의 재즈 피아노 연주에 매료되곤 합니다. 시험 당일에도 피아노 연주에 몰두할 정도였습니다. 그렇기에 파아쉬가 의사 채용 국가시험에 여러 번 낙방하는 것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두 사람은 동독의 사회주의의 삶에 지루함과 고통을 느낍니다. 게다가 진보를 찬양하는 사회적 강령은 그들에게는 역겹게 느껴집니다. 자연과학에 대한 맹신적 사고는 그들의 눈에는 천박한 유용성으로 비칠 뿐입니다. 유토피아는 현실을 변화시키는 일이 아니라, 현실과 화해하는 일이라고 두 사람은 굳게 믿습니다.

 

특히 파아쉬의 경우는 국외자의 전형을 보여줍니다. 치과의사로서 하루 종일 시술하는 그의 생활은 단조롭고 갑갑합니다. 그래서 저녁만 되면 찾아가는 곳이 피아노를 연주하고, 음주를 즐길 수 있는 살롱입니다. 우연한 기회에 파아쉬는 평범한 여성, 브리기테와 알게 되었는데, 아무런 사랑의 감정 없이 그미와 살을 섞습니다. 술이 화근이라면 화근이었습니다. 어느 날 브리기테는 갓 태어난 아기를 안고 찾아옵니다. 그러나 파아쉬로서는 그미와 결혼하여 갑갑한 삶의 패턴에 얽매이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그렇기에 그는 자기 자신, 이름, 신분, 직업 및 가족 등을 망각하고, 오로지 음악을 통해서 스트레스를 풀려고 합니다. (52).

 

 

다른 한편 아를레크는 어린 시절 자기 정체성의 위기를 겪었습니다. 그는 어린 시절에 안온한 에스파냐를 떠나서, 낯선 라이프치히로 거주지를 옮겼습니다. 당시의 라이프치히는 전후의 끔찍한 폐허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아를레크는 아버지의 급작스러운 사망으로 인하여 충격을 받았으나, 오랜 기간 자신의 상흔을 마냥 은폐해 왔습니다. 따라서 그가 슬픔을 억누르는 것은 심리적으로 자신의 불안을 드러내지 않으려는 방어기제와 같습니다. 아를레크는 지금까지 오로지 여성의 품에서 안온함과 편안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여성의 따뜻한 가슴은 마치 태아가 어머니의 자궁 속에서 감지할 수 있는 안전한 집과 같았습니다. 그렇기에 그는 끔찍하고도 참혹한 세계에서 유일하게 보호받기 위하여 영원히 여성적인 무엇을 찾습니다. (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