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 동독문학

서로박: 폴커 브라운의 미완성의 이야기

필자 (匹子) 2022. 12. 27. 09:52

 

1981년 베를린 작가회의에 참석한 브라운

 

친애하는 R, 당신은 극작가로 대성하고 싶어 합니다. 그 꿈이 이루어지기를 나는 진심으로 바랍니다. 오늘은 동독 출신의 가장 다재다능한 작가, 폴커 브라운 (1939- )의 소설 “미완성의 이야기”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부디 이 글이 당신 꿈의 실현에 약간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브라운은 70년대의 중요 작가 가운데 한 사람이었으며, 구동독에서 언제나 커다란 토론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브라운은 사회 정치적으로 적극적 태도를 취하는 사회주의자로서 “정체된 현재 (Status quo)” 대신에, 사회의 끝없는 변화 과정을 촉구하였습니다. 브라운의 작품에서는 장르의 한계가 없습니다. 친애하는 R, 작가들이 많이 살아가는 나라 K에서는 시인은 시만 쓰고, 소설가는 소설만 쓰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곳의 작가들은 행여나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영역을 침범할까봐 노심초사하고 있습니다.

 

브라운의 소설 “미완성의 이야기”는 작가의 나이 36세였던 1975년에 잡지 “의미와 형식”에 발표되었습니다. 그러나 책이 간행된 시기는 1982년이며, 그것도 구서독에서 가능했습니다. -많은 동독 작가들이 서독에서 작품을 간행할 수 있었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동서독의 문화 교류가 남북한처럼 경직되지는 않았음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작품을 그냥 대충 훑어보면, 소설 내용은 한마디로 가정 문제 내지 비극적인 연애 사건으로 요약될 수 있을지 모릅니다. 이 작품 속에서는 구동독 사람들의 인간관계 뿐 아니라, 정치적 갈등이 극명하게 암시되고 있습니다. 특히 이 소설은 구동독에서 처음으로 “국가 안기부 (Stasie)”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의를 지니고 있지요.

 

 

 

 

 

카린은 대학을 졸업하고, 신문사에서 신입 사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직장을 수월하게 얻게 된 데에는 아버지의 도움이 컸습니다. 카린의 아버지는 당의 높은 관료입니다. 어느 날 그는 딸의 사생활을 간섭하기 시작합니다. 즉 프랑크라는 젊은 남자와 교우하지 말라는 아버지의 명령이었습니다. 프랑크가 비밀리에 서독 사람들과 접촉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카린은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몹시 고민합니다. 왜냐하면 프랑크는 자신과 성격상으로 잘 맞을 뿐더러, 자신을 뜨겁게 사랑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와의 만남이 천생 연분이라고 생각될 때도 종종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아빠의 뜻을 거역하고 그를 계속 만난다는 것은 그미의 가슴을 아프게 했습니다.

 

 친애하는 R, 카린은 모든 행동에 있어서 철저하고 분명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이후에 드러나는 그미의 태도는 갈팡질팡 그 자체였습니다. 그미의 의지는 “남친”과의 결별을 선택하고 있었으나, 그미의 발걸음은 정에 이끌려 프랑크에게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카린은 아예 부모의 집을 떠나, 프랑크의 방으로 이주하게 되고, 두 사람은 부모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간에 동거 생활에 들어갑니다. 젊은 남녀가 함께 살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요? 그것은 임신입니다. 임신하게 되었을 때, 카린은 친지들에게 이 사실을 떳떳이 알립니다. -이는 처녀가 임신하면, 모두 “쉬쉬” 비밀로 하며, 은밀히 피 덩어리를 낙태시키는 남한의 경우와는 아주 다르지요.- 이때 아버지 그리고 신문사의 사장은 “잘못된 선택”이라고 말하며, 그미의 결단을 심하게 비난합니다. 아버지와 사장이 카린의 태도를 비난한 까닭은 출산 때문이 아니라, (아이를 가진 구동독의 젊은 여자는 자신의 모든 계획을 접어두고 “육아”에만 신경 써야 합니다.) 프랑크가 요주의 인물로 의심받기 때문이었습니다.

 

 카린은 다시금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내다가, 어떤 결정을 내립니다. 그것은 사랑을 포기하고, 부모와 직장 상사의 뜻에 따르는 것이었습니다. 카린은 프랑크에게 자신의 결심을 전합니다. “우린 함께 살 수 없어. 그러니, 영원히 헤어져야 해.” 카린의 이 말을 듣고, 프랑크는 고민하다가, 고통을 감내하지 못해서 약을 먹고 자살을 기도합니다. 그러나 프랑크는 죽지 않고 다시 살아나지요. 프랑크의 자살 미수 사건으로 카린은 다시금 충격을 받습니다. 그리하여 두 사람은 다시 재결합합니다. 소설은 다음과 같이 끝맺습니다. “두 사람은 창백하게 서로를 바라보았다. (...) 그들은 서로에게서 떠날 수 없었다. 한 사람의 이야기는 종결되지 않았기 때문에 또 다른 이야기가 시작된다.”

 

친애하는 R, 브라운의 소설의 줄거리는 두 남녀의 행복과 고뇌 등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그렇지만 소설은 기존 사회주의의 사회적 현실이라는 배경을 염두에 둘 때, 또 다른 문제를 시사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국가의 권력 이데올로기가 얼마나 개인의 사적 행복을 가로막고 있는가? 하는 문제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카린의 아버지는 국가의 이익을 대변하는 사람으로서 자식의 내적 심리적 상황을 조금도 고려하지 않습니다. 그는 사회주의 국가에 유익한 일원으로 살아가도록 딸에게 요구할 뿐입니다.

 

카린의 아버지는 프랑크가 서독 사람들과 “접선”하고 있다고 의심합니다. 프랑크는 카린의 아버지가 보기에는 “껄렁한 젊은이”에 불과합니다. 그렇지만 프랑크가 과연 정치적으로 연루되어 있는지에 관해서는 끝내 밝혀지지 않습니다. 프랑크가 정치적으로 의심받는 까닭은 그의 친구 때문이었습니다. 프랑크는 오래 전에 서독으로 건너간 친구와 사귄 적이 있는데, 이 때문에 그는 안기부에 의해 요주의 인물로 낙인찍히게 되었던 것입니다. 가령 카린은 아버지의 요구대로 어느 날 프랑크의 방에서 서독으로부터 온 편지 두 통을 발견하여, 아버지가 일하는 당국에 전합니다. 이는 무심코 행한 행동이었으나, 그녀는 나중에야 비로소 애인에 대한 밀고 행위라는 사실을 간파합니다.

 

친애하는 R, 당신도 느끼듯이 극작품 속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물의 입장 변화입니다. 등장인물이 극적 과정 중에서 고뇌하다가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과감히 바꾸어 행동하는 경우는 셰익스피어에 의해서 이루어졌습니다. 셰익스피어 이전에는 등장인물이 수미일관 동일한 성격, 동일한 사상과 감정을 견지하였지요. 마찬가지로 브라운의 “미완성 이야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주인공, 카린의 심리적 사상적 변화 과정입니다. 카린은 아버지의 요구대로 여러 번에 걸쳐 프랑크의 품으로부터 떠나려고 시도합니다. 지금까지 그미는 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이상주의적 사회주의자로서 그렇게 순진하게 살아왔습니다. 맨 마지막에 카린은 “국가적 초자아 (das staatliche Über-ich)”를 비판적으로 의식합니다. 국가적 초자아란 아버지 그리고 근엄한 이데올로기로 상징되는 것입니다. 카린은 처음에는 이를 당연시하다가, 나중에는 이에 대해 고뇌하고 어쩔 수 없이 따르다가, 결국 이로부터 완전히 해방됩니다. 마침내 그미는 아버지의 초자아에서 벗어나서 개인적 사랑의 삶이라는 “자연적 이드 (Id)”를 마침내 선택하는 것입니다.

 

친애하는 R, 과연 카린이 프랑크와 함께 어떻게 계속 살아갈까요? 분명한 것은 그미가 사회, 국가, 가족 친척 등 어느 누구에게도 의존하지 않고, 힘들지만 자발적으로 아기를 키우며 살아가리라는 사실입니다. 소설 속에는 간간이 아기에 대한 환영이 등장하는데, 이는 구동독 사회의 미래에 대한 비유적 상과도 같습니다. 그렇기에 아기를 함부로 낙태하게 하는 것은 아버지의 뜻에 굴복하는 것이나 다를 바 없을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