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의 글은 나의 저서 "떠난 꿈 남은 글" (한마당 1999)의 서문으로 발표된 바 있다. 이 글이 아직도 유효하다는 것은 시대정신이 20년 전과 변함이 없다는 것은 반증한다.
1.
고인 물은 으레 썩게 마련이다. 이는 작게는 나 자신에게, 크게는 어떤 특정한 문화 전체에 해당하는 말이다. 일단 거창한 것부터 먼저 언급할까 한다. 원래 문화란 외부적으로 이질적 문화와 뒤섞이지 않거나, 내부적으로 생동하지 않을 때 반드시 정체되어 썩어버린다. 학문이나 문화는 비유적으로 말해 -동일한 우량종자의 씨 내림과는 달리- 가급적이면 잡 교배를 통해서 발전, 수정 그리고 보완된다. (인맥, 학맥 등을 따지는, 이른바 자화자찬 식의 섹트주의 내지는 학문적 근친상간 행위야말로 문화 발전에 대한 악재가 아닐 수 없다.) 따라서 우리는 함량 미달의 독자적 제품을 어설프게 짜 맞춘 뒤에, 국산품 애용을 강요하지 말고, 우선 학문과 문화의 기본적 토대, 즉 보다 심도 있는 토양부터 정착시켜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제반 문화의 교류, 이질 문화에 대한 파악과 이해, 문화와 문화 사이에 온존한 차이점의 비교 분석 작업 등이 먼저 해결되어야 할 것이다. 다른 문화를 접할 때 우리는 끊임없이 새로운 좋은 것을 받아들이고, 오래된 나쁜 것을 토해내야 한다. 또한 우리는 새로운 나쁜 것을 때로는 거부 내지는 비판해야 하고, 오래된 좋은 것을 잃지 않으려고 애써야 하지 않겠는가? 이는 추상적이며, 실천하기 어려우나, 결코 그릇된 말이 아니다.
2.
우리는 문화의 수용과 관련하여 한국이 어떠한 과정을 겪었는가를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주지하다시피 우리나라는 옛날에 대륙으로부터 신석기, 청동기 그리고 철기 문화를 동시에 받아들였다. 그런데 상기한 문화를 유사한 (혹은 같은) 시기에 수용했다는 점에서 발견되었다는 점이 치명적인 잘못일 것이다. 이로써 신석기 그리고 청동기의 문화는 우리나라에서 토착화되지 못했고, 결국 마치 수입 물품처럼 쓰이다가 폐기처분되고 말았다. 오래 남은 것은 예술적으로 조야한, 그러나 실용적으로 훌륭히 기능하는 철기 문화뿐이었다.
이러한 수용은 (내용은 다르지만, 그 방법에 있어서) 20세기의 경제사의 영역에서도 그대로 반복된다.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초기) 자본주의, 사회주의 그리고 신식민주의적 독점 자본주의 등은 한꺼번에 우리나라에 유입되었다. 그런데 보다 근본적인 취약점은 여러 가지 문화의 동시적 수입에 도사리고 있었다. 신식민주의적 독점 자본주의의 위력은 실로 어마어마했다. 그것으로 인하여 초기 자본주의적 혹은 사회주의적 생산 양식은 실제 삶 속에 제대로 뿌리를 내리지도 못했으며, 적절히 체화 (體化)되지도 못했다.
특히 안타까운 것은 반공 이데올로기의 오랜 횡포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상기한 생산 양식 속에 제각기 도사리고 있는 (최소한의) 부분적 장점마저 활용되지 못했다는 점이다. 가령 우리나라는 사회 보장 제도와 여러 가지 유형의 노동조합 운동이 완전히 정착되지 않은 채 그저 초보 단계에 머물고 있다가, 현재의 심각한 경제적 위기를 맞게 되었다.
3.
여러 외국 문화들이 우리나라에 한결같이 동시 다발적으로 그리고 일방통행 식으로 전해지는 까닭은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나라가 정치적으로 문화적으로 지금까지 한 번도 세계사에서 주도적 역할을 담당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사실은 한인들에게 비참하고 참혹하게 들릴지 모르나, 엄연한 사실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자신이 “세계의 중심에 서 있는, 역사의 주체”라고 배워 왔다. 그러나 이는 거짓임이 백일하에 드러났다. (설령 사실이라 손치더라도 그것은 우물 안 개구리의 시각이리라.) 그 동안 폐쇄적인 한국 사회에서는 정치적으로는 유교주의, 경제적으로는 신식민주의적 독점 자본주의, 사회적으로는 가부장적 금욕주의, 문화적으로는 씨족 이기주의 등이 창궐하게 되었다.
돈과 권력은 주로 살찐 돼지와 이기주의자에 의해 장악되고, 착하고 현명한 사람은 대체로 사회의 밑바닥에서 그리고 감옥에서 보내야 했다. 그러나 이는 바뀔 수 있다. 역사의 소용돌이는 모름지기 활동 무대를 이전시키는 법이다. 한국이 문화적으로 주변 내지 변방의 위치에 놓여 있(었)다는 사실은 역설적으로 말해 장차 정반대로 기능할 수 있다.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외부의 제반 정치적 문화적 이론을 액면 그대로 모방하지 않도록 작용할 뿐 아니라, 새로운 심도 있는 이론을 역으로 창출하도록 자극하고 있다. 남성과 여성 사이의 갈등 역시 심도 넘치게 논의되지 못했다. (박정희: 통일 독일 이후 동독 여성들의 정체성 문제, in: 독어 교육, 24권, 2002, 271 - 291.)
4.
필자가 여기서 지적하고 싶은 것은 동독 문학의 수용 역시 상기한 패턴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동구와 동독의 문학에 대한 관심사는 남한에서 뒤늦게, 80년도부터 솟기 시작했다. 물론 80년대 초부터 사회주의 문예 이론이 집중적으로 소개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작업은 한국 노동 운동과의 접목 속에서만 진척되었을 뿐 아니라, 이론적 영역에 국한되어 있었다. 실제 동구의 현실이나 동독 사람들의 삶을 반영한 문학 작품들은 -북한 문학과 마찬가지로- 그다지 활발하게 소개되지 못했던 것이다.
사회주의적 이상과 역사적으로 때묻은 현실 사이에는 엄연히 이질적 차원이 존재하는 법이다. 그럼에도 연구자들은 체제 비판적 차원과 사상적 입장의 차원 사이에는 “빈 공간”이 형성되어 있음을 용인할 수 없었다. 한마디로 동구 문학에 대한 관심이 우리나라에서 고조될 무렵, 구서독은 125억 달러를 채권업자인 소련에게 지불하면서, 구동독을 사들였다. 말하자면 동독 문학과 동구의 문화적 발전 과정이 채 파악되기도 전에, 역사적 사건은 벌써 우리의 의식 앞서서 진행된 셈이다.
원래 의식이 행위보다 빠르지만, 의식은 이 경우 행위를 따르지 못했던 것이다. 미네르바의 부엉이가 캄캄한 밤에 비상하는 것과는 달리, 뒤늦게 수탉이 목 놓아 울었다고나 할까. 동독 문학의 수준이 북한 문학의 그것을 앞지르고, 몇 가지 독자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다 하더라도 사회주의, 동독 문화 정책 그리고 동구의 문학 등의 테마는 90년대에 이르러 유감스럽게도 관심 밖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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