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크 라캉의 이론
“인간은 언제나 기만당하는 존재이다.” (라캉)
“자아는 상상 속의 완전한 존재라면, 주체는 한 기표에 의해서 다른 기표로 제시되는 무엇이다.” (라캉)
“라캉이 중요하게 여기는 기표로서의 팔루스는 마치 랑그Langue처럼 남성성과 여성성을 이해하는 데 적절하지 못하며, 구체적 사회 속의 인종과 계급의 정체성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되지 못하는 추상적 틀에 불과하다.“ (프레이저)
1. 이론과 이론의 비교는 추상적 결론에 이르기 마련이다.: 오늘날 사람들은 이론과 이론을 서로 비교하여 거기서 어떤 공통되는 해답을 찾으려 합니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의 이론을 언급할 때 우리는 반드시 그 이론이 파생된 현실을 전제로 해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의 사고는 주어진 시간과 공간의 구체적 정황 속에서 확정되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우리는 하나의 이론을 다룰 때 그 배경이 되는 역사성을 고려해야 하면, 이론과 이론을 비교할 때 서로 다른 주어진 현실 내지 시대정신을 동시에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자크 라캉 (Jacques Lacan, 1901 - 1981)의 문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의 문헌은 난삽하고, 그의 이론 역시 심리학 전체의 영역에서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대 프로이트의 이론을 가장 세밀하게 추적하여 독자적 영역을 개척한 정신분석학자로서 알려진 사람이 바로 자크 라캉입니다. 라캉의 이론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서 일곱 단계로 의미 변화를 거듭하였습니다. 다시 말해 라캉은 자신의 이론을 끝없이 수정하였는데, 이는 개별 환자의 이질성 그리고 주어진 현실적 토대의 변화를 반영했기 때문으로 이해됩니다. 게다가 라캉의 이론은 치료의 메커니즘 속을 파고드는 데 전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상기한 두 가지 이유로 인하여 그의 정신 분석 이론을 하나의 틀에 의해서 요약하는 것은 사실상 무리에 가깝습니다. 라캉 전공자도 아니고, 불문학자도 아닌 필자로서 라캉의 이론의 핵심을 언급한다는 게 몹시 힘든 작업입니다. 그렇기에 라캉 이론의 개괄적 사항을 오로지 이해되는 범위에서 알기 쉽게 재구성하려고 합니다.
2. 주체는 그 자체 기표에 불과하며 타자에 의해 비쳐질 뿐이다.: 라캉은 “인간의 모든 욕망은 다른 사람에게 향한다.”라는 입장에서 출발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본질적으로 어떤 인정받고 싶은 욕망으로 귀결되기 때문입니다. 타자를 전제로 하지 않은 인간의 사고는 그 자체 하나의 메아리 없는 착상으로 사라진다는 게 라캉의 지론입니다. 인간의 사고는 타자를 통해 부메랑처럼 자신에게 돌아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무언가를 갈구하는 자는 자신과 동일한 무엇을 거울을 통해 처음으로 인지합니다. 그는 거울의 상을 자기 자신에게 전달 받음으로써 비로소 어떤 무엇을 인지하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주체는 내적인 것의 외적인 관계를 통해 하나의 육체로서 인식됩니다. 자신의 몸이 제 3자로서의 객체에 의해서 인지되는 순간 그 몸은 특정한 주체의 몸으로 이해되는 것입니다. 만약 자아가 타인에게 드러나지 않을 경우, 우리는 당연한 말이겠지만 자아에 관해 의식할 필요가 없습니다. 바로 이러한 까닭에 자아는 거울의 다른 형태의 상으로부터 이전됩니다. 다시 말해 라이벌로서의 자아의 상은 주체를 벗어나게 됩니다. 라캉은 이를 주체의 추방이라고 말합니다. 자아는 고유한 자아의 존재 그리고 거울 속에 비친 타자로서의 자아의 존재로 구분됩니다. 따라서 “나를 이해하기Me connaître” 는 항상 “오해하기méconnaître”를 지칭할 수밖에 없습니다. (Renner: 111)
3. 거울 단계: 일단 주체의 기표가 어떻게 타자에 비치는가를 설명하기 전에 라캉의 몇 가지 용어를 살펴보는 게 좋을 듯합니다. 그것은 거울 단계, 주체, “팔루스Phallus” 그리고 성차이 등과 관계되는 것입니다. 첫째로 거울 단계는 생후 6개월에서 18개월 사이에 영아가 느끼는 첫 번째 자기애의 단계입니다. 영아는 어머니, 혹은 자신이 애착을 느끼는 자의 표정을 인지하면서 쾌락을 느낍니다. 다시 말해 영아는 상대방의 얼굴에 그려진 이미지를 자신의 모습으로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이때 영아의 몸은 파편화된 부분들로 인지되는 반면에, 어머니의 얼굴에 비친 자아의 상은 자신의 전체적인 면모로 인지됩니다. 영아는 바로 여기서 자아를 의식합니다. (Lacan 2015: 70). 영아는 놀랍게도 어머니의 표정 내지 애착을 느끼는 보모의 이미지를 자신의 모습이라고 상상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거울의 상입니다. 거울의 상이라고 해서 실제 거울에 비친 상을 염두에 두면 곤란합니다. 거울의 상은 영아의 의식에 완전하게 통일된 이미지로서 각인된 자아로서 주체와는 처음부터 분명히 다릅니다. 영아는 실제 현실에서 자신의 존재, 즉 주체를 기껏해야 파편적이고 부분적으로 인지할 뿐입니다. 그렇기에 거울에 비친, 정확히 말해서 어머니의 얼굴에 반사되는 거울에 비친 자아는 주체와 어긋나 있습니다. 실제 현실에서 소외되어 있는 주체는 상상 속의 자아와 일치되지도 않고 완전히 포괄하지도 않습니다. 바로 이 점이 라캉에 의하면 한 인간을 갈등 속에 빠져들게 한다고 합니다.
4. 무의식 그리고 언어: 프로이트는 무의식을 “완전히 인식되지 않는 미지의 영역”으로 생각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무의식의 영역의 의식이라는 빙산 일각의 아랫부분의 거대한 영역으로서 인간의 능력으로 완전히 밝혀낼 수 없는 무엇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라캉에 의하면 무의식은 마치 언어처럼 구조화되어 있다고 합니다. 언어가 특정 언어 체계를 지칭하는 “랑그langue”와 특정 발화 행위를 지칭하는 “파롤Parole”로 구조화되어 있듯이 무의식도 그런 식으로 구조화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특정 언어는 페르디낭 드 소쉬르 (Ferdinant de Saussure, 1857 - 1913)의 구조주의 언어학에 의하면 “기의signifié” 그리고 “기표signifiant”로 나누어질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단어 속에는 의미를 지칭하는 부분인 “기의” 그리고 단어의 의미 외적인 특징인 이미지 내지 뉘앙스를 지칭하는 “기표”의 특징이 도사리고 있다고 합니다. (Pagel: 41). 이와 관련하여 라캉은 무의식을 타자의 담론으로 규정합니다. 즉 무의식은 우리의 통제 너머에 있는 의미 작용의 구성 성분이자, 의미 작용의 과정에서 부분적으로 출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언어는 하나의 거대한 타자로서 이해된다고 합니다. 인간은 언어 안에서 태어나고, 언어를 통해서 타자의 욕망이 조직화되며, 언어를 통해서 자신의 욕망을 드러내도록 강요받는다는 것입니다. 이를 고려한다면 언어는 그 자체 타자로서의 거대한 상징계를 지칭합니다.
5. 주체 그리고 「도둑맞은 편지」: 라캉은 “주체란 그 자체 하나의 기표로서 다른 기표에게 제시되는 무엇이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이것은 대체 우리에게 무슨 뜻을 전해줄까요? 라캉은 에드거 앨런 포 (Edger Allan Poe, 1809 – 1849)의 소설 「도둑맞은 편지The purloined letter」(1845)를 예로 들고 잇습니다. 이 작품은 작가 자신이 술회한 바 있듯이 “가장 훌륭한 직관과 지성이 결합된 소설”입니다. (Jens L: 495). 줄거리는 두 개의 장면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첫 번째 장면은 프랑스의 왕궁입니다. 파리의 어느 왕궁에 편지 한통이 당도합니다. 왕비는 기이한 편지를 받아들고 몹시 당혹스러워합니다. 바로 이 순간 왕이 등장하고, 뒤이어 장관 D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이때 왕비는 아무런 일이 없었던 것처럼 편지를 황급히 신속하게 테이블에 놓아둡니다. 왕은 이를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장관 D는 무척 혼란스러운 표정을 짓는 왕비의 모습을 목격하면서, 테이블에 놓인 편지 한 통을 예리하게 간파합니다. 장관은 왕이 이 편지를 읽게 되면 무척 난처한 일이 발생하리라고 추측합니다. 그래서 장관 D는 두 사람이 사라진 틈을 타서 그 편지를 몰래 가지고 가서, 자신의 집무실의 벽난로 아래의 편지꽂이에 꽂아둡니다. 벽난로 아래의 편지 꽃이는 만인에게 개방되어 있습니다.
두 번째 장면은 장관의 집무실입니다. 왕비는 편지가 사라진 데 대해 무척 안타까워합니다. 편지의 분실을 몹시 걱정하면서, 아마 장관이 가져갔을 것이라고 그미는 추측합니다. 그래서 왕비는 파리 경찰관 G에게 어떻게 해서든 그 편지를 찾아달라고 부탁합니다. 몇 달의 잠복근무에도 아무런 성과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왕비는 이번에는 뒤팽이라는 수사반장에게 편지를 찾아달라고 청원합니다. 왕년에 수학자이자 시인으로 활동한 바 있는 뒤팽은 장관의 집 벽난로 아래의 편지꽂이에서 무언가를 예리하게 응시하는데, 이것이 바로 왕비가 찾는 편지, 바로 그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원래 비밀스러운 물건은 으레 깊은 안처에 숨겨져 있는 법이기 때문에, 경찰은 지금까지 편지꽂이를 수색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다음 날 뒤팽은 가짜편지를 한 통 써서, 다시 장관을 찾습니다. 그는 편지를 수중에 넣은 다음에 거기 가짜 편지를 그 자리에 꽂아둡니다. 수사반장은 이 편지를 왕비에게 건네주면서 5만 프랑의 상금을 수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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