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a Lacan

서로박: 자크 라캉의 이론 (2)

필자 (匹子) 2018. 7. 12. 17:12

6. 편지의 내용은 중요하지 않다.: 그렇다면 편지의 내용은 무엇일까요? 추측컨대 왕비가 비밀리에 내연의 남자로부터 사랑의 고백을 받았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는 하나의 가설에 불과합니다. 편지의 내용은 끝내 명확히 밝혀지지 않습니다. 에드거 알란 포는 작품 집필 시에 극작품 한 편을 참고했습니다. 그것은 프랑스의 극작가 프로스퍼 J. 크레비용 (Prosper Jolyot Crebillon, 1674 1762)의 비극 아트레우스와 티에스테스 Atrée et Thyeste(1707)입니다. 작품의 내용은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지만 그래도 언급하는 게 라캉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작품은 그리스 신화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Vapereau: 545).

 

아트레우스 왕은 왕비의 편지를 훔쳐보게 됩니다. 편지는 왕의 형인 티에스테스에게 보내는 것이었습니다. 편지에는 어떤 비밀이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왕의 아들, 프리스테네스는 사실인즉 티에스테스의 친아들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왕비는 왕의 형과 정을 통하여 프리스테네스를 출산했던 것입니다. 왕은 놀라운 사실을 접하고 한동안 고통스러워 합니다. 왕은 약 20년 동안 질투와 분노를 삭이다가, 끝내 복수의 칼날을 갈게 됩니다. 그것은 프리스테네스로 하여금 자신의 친아버지를 죽이게 하는 계략이었습니다. 그렇지만 티에스테스를 살해하는 일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아트레우스 왕은 음험한 마음을 품고 자객을 보내어, 아들인 프리스테네스를 살해해버립니다. 그 다음에 요리사로 하여금 프리스테네스의 인육으로 음식을 만들게 합니다. 왕비와 티에스테스는 자신의 아들의 육신인지도 모르고 기이한 맛을 풍기는 음식을 맛봅니다. 말하자면 티에스테스는 자신이 저지른 패륜의 대가로 친아들의 살코기를 먹어야 하는 기막힌 처지에 처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줄거리는 포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인 뒤팽이 직접 쓴 가짜 편지에 교묘하게 부분적으로 암시되어 있습니다.

 

7. 주체는 기표에 의해 포획되어 있다. 포의 작품에서 편지는 주체에 대한 객관적 상관물입니다. 라캉은 주체를 다음과 같이 정의내립니다. 주체는 하나의 기표에 의해서 다른 기표에게 전달되는 무엇이라고 말입니다. 다시 말해 주체는 기의 없는 기표로서 이해될 뿐입니다. (물론 라캉의 이러한 입장은 60년대에 이르러 대폭 수정됩니다.) 여기서 편지 속에 무슨 내용이 기술되어 있는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오로지 편지가 여러 사람들에게 전달된다는 사실입니다. 편지는 처음부터 끝까지 기표에 의해 포획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왕비로부터 장관에게, 장관으로부터 뒤팽에게, 뒤팽으로부터 경찰국장에게, 경찰국장으로부터 다시금 왕비에게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렇듯 주체는 타자의 시각에 의해서 규정되고 그 존재가 밝혀질 뿐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의 깊게 고려해야 하는 사항은 편지를 바라보는 세 개의 어긋난 시선입니다. 첫 번째 시선은 아무 것도 바라보지 못하는 시선입니다. 가령 왕은 편지를 발견하기는커녕 편지의 존재조차 까마득히 망각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 시선은 경찰의 시선입니다. 경찰은 집안의 구석구석을 뒤지지만, 정작 벽난로 아래의 편지꽂이를 찾아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가장 잘 알려진 개방된 공간이 역설적으로 비밀을 감추는 데 최적의 공간이었던 것입니다. 경찰은 실재론자의 우둔함 때문에 편지의 위치를 알아차리지 못하는 우를 범하고 있습니다. 세 번째는 탐정, 뒤팽의 시선입니다. 그것은 누구나 착각할 수 있도록 방치된 무엇을 예리하게 발견해내는 시선입니다. 이렇듯 주체는 세 가지 시선에 의해서 관찰되는 대상과 같습니다. 첫 번째 장면에서 편지는 왕, 왕비 그리고 장관 D에 의해 둘러싸여 있습니다. 그런데 두 번째 장면에서 편지는 경찰, 장관 그리고 뒤팽에 의해서 둘러싸여 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라캉은 다음과 같은 가능성을 암시합니다. 만약 편지가 하나의 주체라면, 경찰, 장관 그리고 뒤팽은 제각기 다른 영역, 이를테면 현실계, 상상계 그리고 상징계를 지칭할 수 있다고 말입니다. 경찰이 현실계 속에서 주체의 위치를 가리킨다면,, 장관은 상상계 안에 있는 주체의 위치를, 뒤팽은 상징계안에 있는 주체의 위치를 시사해줍니다. (Pagel: 52). 요약하건대 주체는 그 기표에 의해서 포획된 채 끊임없는 반복의 과정을 통해서 부수적 의미를 연상시키게 합니다. 편지는 주체의 이러한 의미 작용에 대한 객관적 상관물과 같습니다.

 

8. 팔루스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1): 이번에는 팔루스Phallus”의 개념에 관하여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팔루스는 흔히 남근으로 번역되지만, 라캉의 경우 남근과 동일시될 수 없는 개념입니다. 오히려 그것은 남근을 지니고 싶은 갈망, 다시 말해서 남근 선망이라는 의미와 관련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팔루스는 어머니의 몸속에 도사린 남근의 기표와 연결될 수 있습니다. 일단 부모와 아이를 상정해보기로 하겠습니다. 아버지 그리고 팔루스 등은 현실에 존재하는 존재가 아니라, 결핍 내지는 소멸과 관련되는 기표 내지 은유로 이해됩니다. 남근이 실재하는 존재라면, 팔루스는 남근에 대한 결핍의 기표로 추론됩니다. 기표로서의 팔루스는 의미론에 있어서 영국 출신의 정신분석학자, 어니스트 존스Ernest Jones가 독창적으로 제시한 파기 내지 소멸aphanisis”과 밀접한 관련성을 지닙니다. (Lacan 2014: 195). 이러한 소멸의 특성은 라캉에 의하면 수치의 여신, 아이도스Αδώς의 예에서 나타납니다. 아이도스 여신은 팔루스의 실체를 벗겨서 신전의 대들보로 활용했는데, 바로 이러한 대들보에 매달린 것들은 명정의 신, 디오니소스가 남긴 혼혈의 자식들이라는 기표였습니다. (Lacan 2014: 195, 201).

 

 

 

라캉은 이와 관련하여 아버지의 이름을 거론합니다. 아이는 어린 시절에 어머니와 애정적으로 결합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의 이름이 등장함으로써 아이와 어머니 사이의 관계는 분할됩니다. 여기서 아버지의 이름이 반드시 남성일 필요는 없습니다. 아이는 어머니에게 어떤 사랑의 대상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은연중에 알아차립니다. 그렇기에 아버지의 이름은 아이와 어머니의 결합을 떼놓게 하는 하나의 기표입니다. 그것은 아이로 하여금 욕망과 결핍의 상징 영역 속으로 들어가게 만듭니다. 이렇게 되면 초자아가 발생합니다. 초자아는 내재적으로 상징화된 아버지를 가리키게 됩니다. 흔히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프로이트의 경우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의 사랑을 차지하는 오이디푸스의 심리를 대변하는 말로 이해됩니다. 그런데 그것은 라캉의 경우 좀 더 복잡합니다. 왜냐하면 라캉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설명하는 데에서 여성의 관점 또한 적극적으로 반영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어느 아이는 동성의 부모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갈망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이성의 부모에 대한 성욕에서 비롯된 갈망일 수 있습니다.

 

9. 팔루스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2): 프로이트에 의하면 3세에서 5세 사이에 자신의 동성의 부모에 대한 콤플렉스를 해소한다고 합니다. 4세에서 사춘기에 이르는 시기에 영아들은 어떤 성의 잠복기를 거친다고 합니다. 그런데 라캉에 의하면 영아들은 상상 속의 콤플렉스를 상징의 영역으로 이행시킨다고 합니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유아 성욕의 남근기에 해당합니다. 사랑하는 어머니에 대한 욕망이 아버지의 존재로 인하여 차단되기 때문에 마음속에서 어떤 갈등이 출현하기 시작합니다. 그 이전에 유아들은 이를테면 자기 성애를 통해서 성적인 만족을 얻습니다. 기실 유아들에게는 성적 대상이 없습니다. 유아의 성욕은 성기 만지기, 항문 더듬기 그리고 손가락 빨기 등의 모습으로 출현합니다. 그런데 성인과 유아의 성욕에서는 결정적 차이가 있습니다. 유아기에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하나의 성기, 즉 팔루스의 중요성만이 부각됩니다. 이를테면 남자아이들은 어느 정도의 나이에 이르기까지 여성이 음경을 지니지 않았다는 사실을 부인합니다. 그런데 어느날 여성에게는 음경이 없다는 것을 인지합니다. 이로써 아이들은 여성을 어떤 거세된 남자로 이해합니다. 라캉에게 중요한 것은 여자아이가 음경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남자아이가 거세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는가? 하는 물음이 아닙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오로지 팔루스가 성차이의 기표로 기능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를테면 상상적 팔루스가 여기서 논의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10. 상상적 팔루스: 아이들은 어느 날 어머니의 품에서 다음의 사실을 감지합니다. 즉 어머니의 욕망이 오로지 자신에게로만 향하지는 않는다는 사실 말입니다. 어머니의 마음속에는 남편 (혹은 애인)으로부터 사랑받고 싶은 욕구가 도사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머니는 오로지 자신만을 사랑하는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은 아이의 마음속에 처음으로 깊은 실망감을 안겨줍니다. 그래서 아이는 어머니의 사랑을 전적으로 차지하기 위해서 노력합니다. 라캉은 아이들의 이러한 노력을 상상적 팔루스를 찾는 일로 설명합니다. 어머니를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자신이 능동적으로 팔루스의 역할을 스스로 수행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스스로 상실된 모성과 동일시됨으로써 자신이 어머니의 성욕을 채워줄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그렇지만 아이들은 실제 현실에서 자신이 상상의 팔루스롤 소유하지 못하고 있음을 절감합니다.

 

남자아이의 경우 자신이 상징적으로 팔루스를 지닐 수 있다고 믿는 반면에, 여자아이의 경우 자기가 어머니의 팔루스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포기하고 맙니다. 즉 여자아이는 스스로 상상 속의 팔루스와 동일하지 않다고 여기면서, 비로소 자신에게 남근이 없다는 것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입니다. 이로써 그미는 상징적 질서로서의 언어의 존재, 즉 팔루스 없는 자아를 은연중에 수용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상징화란 다음의 사항을 뜻합니다. 즉 어머니의 욕망이라는 기표는 아버지의 이름이라는 다른 기표로 치환되는 과정 말입니다. 그렇게 되면 아버지의 이름은 다음과 같이 기능하게 됩니다. 즉 어머니에 대한 근친상간의 욕구는 이른바 금기라는 아버지의 법칙으로 변모되는 기능 말입니다. 멜라니 클라인Melanie Klein의 대상관계 이론에 의하면 여자아이의 상상의 팔루스에 관한 라캉의 견해는 너무 과장되었다고 합니다. 실제로 아버지가 어머니의 육체 안에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아버지의 영향력은 일상 삶에서 그리 크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라이트: 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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