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현대불문헌

서로박: (1) 망드라의 시골 유토피아 나라에로의 여행

필자 (匹子) 2017. 6. 21. 15:15

1. 앙리 망드라의 유토피아: 프랑스의 사회학자 앙리 망드라 (Henri Mendras, 1927 - 2003)는 시카고 대학교의 데이비드 리스맨의 제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1979년에 『시골 유토피아 나라로의 여행Voyage au pays de l'utopie rustique』을 발표하였습니다. 그는 지금까지 전해 내려오는 유토피아의 전통을 자신의 작품에 의도적으로 반영하였습니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유토피아의 전통 가운데에서 무정부주의적이고 개인주의적 특징을 담은 유토피아의 전통을 반영하려고 한 것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망드라는 알렉세이 차야노프의 농업 유토피아의 전통을 계승할 뿐 아니라, 이를테면 프랑스와 라블레라든가 크로포트킨의 무정부주의에 입각한 유토피아의 구상을 자신의 작품에 담으려고 했습니다. 망드라의 유토피아에는 68 학생 운동 세대들이 추구했던 문화 혁명의 방향성이 담겨 있습니다. 60년대의 그의 입장은 『농부의 종말』에서 자세히 언급되고 있습니다. 여기서 그는 농업의 영역에 부수적으로 첨부된 기술적 경제적 영역에 관한 제반 현상들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2. 프랑스 한 복판, 가스코뉴에서의 시골 유토피아의 실험: 망드라는 20세기 후반에는 물질 추구의 삶이 종언을 고했다는 점을 분명히 말합니다. 물질 추구의 삶은 자본주의가 자극한 이윤 추구의 삶입니다. 더 이상 이윤만을 추구하지 않으려 한다면, 우리는 이제 무슨 일을 하면서 살아야 할까요? 이는 새로운 가치를 추구하는 삶에 관한 근본적 질문이며, 대안의 삶을 모색하기 위한 물음이기도 합니다. 망드라는 물질 추구의 삶을 극복할 수 있는 삶의 가능성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망드라가 헉슬리의 『섬』의 경우처럼 동남아시아의 고립된 섬을 배경으로 설정하는 것도 아니고, 우주의 어느 혹성을 배경으로 하여 자신의 바람직한 문학 유토피아를 설계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망드라의 유토피아는 놀랍게도 우리가 현재 처하고 있는 지상의 산업국가 내지 문화 국가의 내부에 자신의 자리를 마련하고 있습니다. 

 

이미 언급했듯이, 망드라는 68 학생운동 세대로서 자신의 시골 유토피아의 가능성을 실험하였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농업 사회주의의 바탕 하에서 공동으로 살아가는 새로운 삶의 방식을 가리킵니다. 망드라는 자신의 농업 유토피아를 미래의 시점인 2007년으로 설정하고, 프랑스의 남서부 지방에 해당하는 가스코뉴 Gascogne를 장소로서 선택했습니다. 그것도 자본주의 이용 가치를 전제로 한, 잘못된 도시 계획을 전환시키게 할 뿐 아니라, 사회 전체의 양적 성장에 대해 전적으로 제동을 가한다는 점에서 가히 놀라운 혁명성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3. 농자천하지대본 農者天下之大本: 망드라는 처음부터 다음의 사실을 분명하게 제시하였습니다. 즉 프랑스 전체의 사회 경제의 문제를 전혀 건드리지 않은 채 독립적인 자치 공동체를 설계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이로써 망드라의 유토피아는 지금까지 전해 내려오는 고전적 유토피아의 속성을 과감하게 파괴하고 있습니다. 토마스 모어 이래로 고전적 유토피아는 유럽 사회와는 전혀 관계없는 먼 곳의 장소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게 미지의 섬인지, 아니면 역사철학적으로 선취된 미래의 장소에서 발견되는 시간 유토피아인지? 하는 물음은 여기서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시골 유토피아 나라 Pays de l’Utopie Rustique” (PUR)가 프랑스 한 가운데 위치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 사실은 윈스탠리Winstanley의 유토피아처럼 유토피아의 실현이 구체적으로 가능하다는 것을 느끼게 해줍니다. 68 학생운동을 이끌던 사람들은 프랑스 국가의 사회 구조를 용인하면서도 시골로 내려가서 새로운 형태의 공동체를 설립하였습니다.

 

4. 작품의 배경: 작가 망드라는 미래의 시점 2007년을 하나의 작품 배경으로 설정하고 있습니다. 코라그스탄 Khoragstan은 가상적 인민 공화국입니다. 공화국은 소련의 권력 구도를 해체하고, 중국의 사회주의 국가 권력을 와해시킨 사람들로 이루어진 국가입니다. 공화국의 중앙 위원회는 사회주의 국가의 미래의 방향을 설정하기 위해서 알렉시라는 남자에게 지금까지 시도했던 농업 유토피아에 관해서 보고서를 집필해달라고 요청합니다. 이로써 코라그스탄의 중앙위원회는 지금까지의 서구 자본주의의 경제 체제 및 소련과 중국의 전체주의 사회주의의 정책 및 이에 대한 부작용 등을 잘 알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중앙위원회는 공산주의의 사회 발전이 너무나 미약했다는 점을 인정하고, 모든 것을 민주적으로 해결하려고 여러 가지 자료를 필요로 한 것이었습니다. 알렉시는 1968년에 파이에서 민속학을 공부한 사람인데, 프랑스어를 유창하게 구사하고, 유럽 문화와 역사에 정통한 사람입니다. 이로써 작성된 것이 알렉시의 보고서, “시골 유토피아 나라 Pays de l’Utopie Rustique” (PUR)입니다.

 

5. “유비쿼터스Ubiquitous”로서의 시골 유토피아: 원래 “시골 유토피아 나라”는 하나의 원칙으로서 이해될 뿐 아니라, 시민의 자본주의의 욕구로 생겨나게 된 도시 내부에도 이미 실제로 존재합니다. 작품에서 이곳의 방문자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나는 사실 시골 유토피아 나라가 무엇인지 처음에는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자기 자신을 시골 유토피아 공동체라고 명명하였으니까요. 그들은 자신을 오시타니아인, 프랑스인 그리고 유럽인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분명히 말씀드리건대 국적은 더 이상 의미가 없었습니다. 서유럽은 사실 여러 국가, 지역들 그리고 영토와는 무관한 연맹과 유사한 형태를 드러내니까 말입니다. 시골 유토피아의 공동체에는 명확하게 확정된 영토가 없어요. 이는 자본주의의 욕구를 채우기 위해서 도시를 만든 경우와는 전혀 다릅니다. 그밖에 많은 도시 내부에 이미 시골 유토피아 공동체라고 일컫는 구역이 위치하고 있지요.“ (Mendras 1992: 27) 망드라의 경우 유토피아의 이상은 어디서든 간에 농촌 유토피아의 공동체로서 얼마든지 출현할 수 있습니다. 설령 대도시의 밀집 지역이라고 하더라도 농촌 유토피아의 공동체는 얼마든지 생겨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시골 유토피아 나라는 어떻게 가시적인 면모를 드러낼까요?

 

6. 땅은 식료품 공장이 아니라, 정원이어야 한다, 혹은 시골 유토피아 나라를 정차시키기 위한 세 가지 방안: 앙리 망드라는 1인칭 화자를 통해서 다음과 같이 서술합니다. 농촌 경제의 논리는 생산과 소비의 평균적 성장에 어떻게 해서든 맞추어나가야 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마르크스가 말하는 잉여가치를 위한 생산 대신에 필요 내지 사용가치를 위한 생산을 확립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렇기 위해서는 회사, 자본, 임금, 이윤 등은 자취를 감추어야 합니다. 농촌 경제의 원칙은 “우리가 생산하는 것을 바로 소비한다.”는 명제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농촌에서 생산되는 곡식과 과일은 일차적으로 공동체 사람들에 의해서 소비됩니다. 물론 여기에는 예외적인 “상품”이 존재합니다. 가령 우유, 육류, 말린 자두, 산양 치즈 등은 예외적으로 외부로 팔려나갑니다. 한마디로 경제 행위의 목표는 결코 자본을 확장시키지 않는 것이어야 하며, 상대적 범위에서 공동체 사람들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무엇이어야 합니다. 이들 사람들은 다음과 같이 말항니다. 농사는 그 자체 삶의 유형이지, 산업일 수는 없다고 말입니다. 땅은 식료품공장이 아니라, 정원이어야 합니다.

 

농촌 유토피아의 공동체 사람들은 상기한 사항을 실천하기 위해서 일차적으로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기본 원칙을 확립해야 했습니다. 첫째로 농촌 유토피아 공동체 사람들은 일차적으로 바로 소비되어야 하는 질 좋은 상품들을 선별하여, 외부로 판매했습니다. 이로써 반드시 지출되어야 하는 세금 문제가 해결되고, 컴퓨터 등과 같은 필요한 물품들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둘째로 사람들은 필요에 의해서 여러 물품들들 생산해낼 수 있었습니다. 이로써 이윤 추구 내지 산업을 위한 생산 행위로부터 등을 돌릴 수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공동체 사람들은 오로지 돈을 벌기 위해서 노동하지 않아도 좋았습니다. 셋째로 경제적 유통구조에 기술되지 않은 그림자 노동 역시 중요한 일감으로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일리치기 언급한 바 있는 임금 노동 외의 “그림자 노동” 역시 중요한 무엇으로 수용하게 된 것입니다. 가사노동 뿐 아니라, 아이들 , 노인들의 노동 행위도 거대한 가족 체제 내에서 인정 받게 되었습니다.

 

(계속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