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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박: 베데킨트의 검열

필자 (匹子) 2018. 7. 12. 16:56

프랑크 베데킨트의 단막극 「검열. 단막으로 이루어진 신정론 (Die Zensur. Theodizee in einem Akt)」은 1907년에 탄생하였으며, 1909년 7월 27일 뮌헨에서 처음으로 공연되었다. “신정론 (神正論)”이란 다음의 사고를 지칭한다. 즉 세상에 온존하고 있는 죄악이 신의 뜻이며, 인간은 이를 거역하지 말고 감내해야 한다는 것이다. 베데킨트는 1906년까지 자신의 비극 「판도라의 상자」의 검열 과정을 배경으로 하여 이 작품을 집필하였다. 여기서 그는 빌헬름 시대의 문화 정책에 자신의 문학이 이용당하는 데 대해 항의하고, 이와 함께 자신의 예술적 작업이 과연 어떠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가? 하는 문제를 성찰하려 하였다.

 

베데킨트의 작품은 언제나 검열로 인하여 발표 금지 처분을 받았다. 게오르크 브란데스에게 보내는 베데킨트의 편지는 이를 증언하고 있다. “나의 작품 자체가 이미 나의 작업에 대한 광고입니다. (..) 「검열」에서 다루고자 했던 주제는 노출증 내지 무례함,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등장 인물인 무녀가 뻔뻔스럽다는 게 아니라, 나 자신이 파렴치한지 모릅니다. 내가 다루려는 소재는 오래 전부터 나의 뇌리에 머물던, 아직 한 번도 문학 작품으로 묘사하지 않은 것입니다. 즉 사회주의 국가 내에서 교회와 홍등가를 재결합시키는 작업이 바로 그것입니다.”

 

첫 장면은 비극적 삶을 끝낸, 중세 프랑스 작가, 월터 부리당 (1300 - 1358)의 심리적 위기를 다루고 있다. 뷰리당은 두 마리의 당나귀에 대한 비유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학자이다. 뷰리당의 애인은 자유분방한 무녀, 희대의 카르멘으로 비유될 수 있는 카디자 (Kadidja)이다. 부리당은 카디자를 사랑하지만, 일시적으로 헤어지려고 결심한다. 그는 자신을 완성시키고 완전한 자유를 위해서, 창작에 전념하려 한다. 그렇지만 일시적인 결별이 카디자에게는 궁극적으로 이별을 뜻한다. 어리석게도 뷰리당은 이를 직시하지 못하고 있다. 카디자가 뷰리당의 계획을 접한 뒤에 음독자살까지 시도한 사실이 이를 반증한다.

 

두 번째 장면에서 부리당과 카디자는 헤어지는 문제로 서로 다툰다. 이때 프란틀 박사가 등장한다. 프란틀 박사는 국가의 검열 관청의 책임자이자, 폐하의 고해 성사를 담당하는 최고 비서이기도 하다. 이미 언급했듯이 뷰리당은 무엇보다도 창작에 몰두하려고 한다. 현상적 세계가 자신에게 부여하는 명예를 잡아들임으로써, 그는 스스로 정신적 자유를 만끽하려 하는 것이다. 뷰리당은 프란틀 박사와 대화를 나눈다. 이때 뷰리당의 사고는 프란틀과 전적으로 대립된다. 두 사람 사이의 언쟁은 결국 두 사람의 견해가 하나로 일치될 수 없다는 사실을 백일하에 드러낸다.

 

프란틀 박사는 합리적으로 사고하지만, 그의 실증주의적 태도는 이데올로기적으로 확정되어 있다. 가령 그는 인간을 예술로부터 보호해야 한다고 굳게 믿는다. 프란틀에 의하면 예술은 그 속성상 인류의 행복에 적대적이라고 한다. 뷰리당은 프란틀 박사를 설득시키려고 애쓴다. 예술이란 뷰리당에 의하면 국가의 관심사와는 무관하게 고유의 법칙성을 지니고 있다. 나아가 예술적 표현 형식 역시 필연적으로 이중성을 띌 수밖에 없다고 한다. 아름다운 무엇은 예술을 통해서 성스러운 무엇과 재결합될 수 있다는 게 뷰리당의 이념이었다.

 

그러나 프란틀 박사는 이를 도저히 용인할 수 없다고 말한다. 성스러움을 예술과 일원화시키는 모든 사고는 그 자체 신성 모독이라는 것이다. 이 순간 카디자는 배우의 의상을 입은 채 고혹적으로 아름다운 나체를 드러낸다. 거의 벌거벗은 카디자의 몸을 바라보는 순간, 프란틀 박사는 그녀가 미인계를 써서 자신을 유혹하려고 한다고 믿고, 자취를 감춘다. 이로써 두 사람 사이의 언쟁은 결말 없이 끝나버린다.

 

 

마지막 장면은 극적 긴장을 불러일으키면서, 첫 번째 장면에서 나타났던 갈등이 재차 출현한다. 뷰리당은 카디자의 아름다운 몸매를 경멸하고, 그 대신 추하기 이를 데 없는 서적만 동경하는 데 대해 불쾌하게 생각한다. 결국 카디자는 발코니 아래로 몸을 던진다. 이때 뷰리당은 다음과 같이 외친다. “신을 조소할 수 없구나. 오 신이여! 그대의 뜻은 어찌 그리 헤아릴 수 없는가!” 극작품의 신정론적 결말은 가운데 장면의 마지막 대목과 기막히게 연결되고 있다. 즉 프란틀은 신이 징벌을 내리리라고 뷰리당에게 경고한 바 있다.

 

카디자의 죽음은 한편으로는 부리당을 자유롭게 만들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의 일부를 잃은 것이나 다름없다. 이로써 감각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을 하나로 일치시키려는 부리당의 희망은 그저 유토피아에 불과할 뿐이다. 베데킨트의 「검열」은 부조리극의 형식적 구조를 미리 보여준다. 베데킨트는 두 번째 판에서 베를린 검열관 글라제나프의 다음과 같은 말을 모토로 사용하였다. “만약 베데킨트가 다음과 같이 마구잡이로 생각한다면, 이는 엄청난 착각이나 다름이 없다. 즉 우리가 「판도라의 상자」 때문에 그의 단막극 「검열」에 관대한 처분을 내리리라고 말이다.” 예술의 역할에 관한 성찰 그리고 신정론의 모티브 등은 전적으로 아이러니로 이해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의 가식적 비극을 담은 극적 상연은 어쩌면 자기 비판의 느낌을 불러일으킬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