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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박: 토마스만의 '마의 산' (1)

필자 (匹子) 2017. 12. 29. 09:41

친애하는 M, 사회가 어지러우면, 민초들은 어떤 신비로운 땅을 동경하게 됩니다. 이조시대에 사람들은 각박한 삶을 견디기 위해서 정감록을 읽었습니다. 그 곳에 머물면, 세상의 풍파를 어느 정도 견디며, 난세에 부평초와 같은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나중에 황당무계한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는 정감록이 동학사상을 낳게 하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한 것을 생각하면, 우리는 비록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황당무계한 이야기 역시 부분적으로 진리를 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토마스 만 (1875 – 1955)의 "마의 산 Der Zauberberg"이라는 작품이 바로 20세기 초의 정감록에 해당하는 작품입니다. 작품은 1913년에서 1924년 사이에 집필되었습니다. 토마스만은 제 1차 세계대전의 시기 때문에 1915년 여름부터 1919년까지 집필을 중단해야 했습니다. 토마스만의 아내는 1912년에 몇 개월 동안 스위스의 다보스에 있는 폐결핵 요양소에 머물렀습니다. 만은 거기서 강렬한 인상을 받았고, 이를 작품 속에 문학적으로 형상화시켰던 것입니다.

 

 

마의 산의 배경이 된 다보스 산의 정경

 

가령 "마의 산"은 이전에 발표된 작품 "베니스에서의 죽음" (1912)과 여러 가지 면에서 대조를 띄고 있습니다. 주인공 한스 카스트로는 시민 사회의 젊은 남자입니다. 이에 비하면 『베니스에서의 죽음』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사회적 명성을 이룩한 예술가, 구스타프 폰 아센바흐입니다. 작품 『마의 산』에는 주인공을 유혹하는 남자 타치오 Tadzio 대신에, 클라우디아 소샤 Claudia Chauchat 부인이 등장합니다. "베니스에서의 죽음"은 동성연애의 정서를 떠올리게 하면서, 몰락을 상징하는 전염병으로서 콜레라를 전면으로 내세운다면, "마의 산"에서는 결핵이라는 당시의 끔찍한 질병이 소재가 되고 있습니다. 

 

토마스만은 전쟁 이전의 후기 시민 사회의 삶의 유형 내지 사고 유형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처음에 토마스만은 제 1차 세계대전을 썩어빠진 유럽의 시민 사회의 병폐를 모조리 쓸어버리는 일로 이해했지만, 나중에는 그래도 전쟁의 폐해를 무조건 좋게 생각할 수는 없었습니다. 작가는 이 작품에 수없이 많은 인용문을 등장시키며, 소설의 기법 상의 실험을 감행하고 있으며, 여러 가지의 세계관을 등장시키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소설은 오늘날에도 교양 소설 내지 지적인 형이상학적인 소설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함부르크 귀족 출신의 한스 카스토르프 Hans Castorp는 일찍이 부모를 잃었습니다. 그는 기술자 국가고시에 합격한 직후에 어느 조선소에서 기술자로 일하려는 꿈을 품게 됩니다. 이때 그는 잠깐 틈을 내어 결핵으로 스위스의 다보스에 있는 어느 요양원에서 머물고 있는 사촌 요아힘 침센 (J. Ziemßen)을 방문하게 됩니다. 사촌은 맨 처음에는 이곳의 분위기에 낯설음을 느끼지만, 서서히 그곳에 적응하기 시작한 터였습니다. 

 

이곳의 환자들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일상 사회에서 행하던 모든 의무감으로부터 벗어난 채 편안하지만, 무료하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머무는 인간은 자신의 모든 견해를 바꾸게 되지.”하고 사촌 형은 주인공에게 말합니다. 그런데 이 말은 주인공 한스 카스토르프의 삶의 어떤 놀라운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마의 산”은 지형적으로 매우 높은 곳으로서 섬뜩하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토마스만은 다보스에 있는 요양소를 어떤 신비로운 꿈을 상실한 공간으로 묘사합니다. 그래, 이곳은 마치 고대의 지하 세계 (Hades), 괴테의 "파우스트"에 나오는 마녀의 산, 바그너의 「탄호이저」에 등장하는 “비너스의 산” 등과 같다는 느낌을 줍니다. 주인공 한스 카스토르프는 처음에는 3주간 이곳에 머무를 계획이었습니다.

 

그러나 심하게 감기가 들어서 요양원에 더 체류하기로 합니다. 이로써 그는 질서와 훈육으로 이루어진 “평지” (바깥세상)에 대해 더 이상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려고 합니다. 세상은 인간을 시간의 노예로 만들고 주어진 틀대로 살아가도록 질서 잡혀 있습니다. 한스 카스토르프는 마의 산에서 의무, 약속, 노동 등으로 인간의 자유를 옥죄이는 바깥세상을 서서히 망각하게 됩니다.

 

주인공은 이태리인, 로도비코 세템브리니를 만납니다. 그는 자신을 계몽적 낙관주의자이며, “문명 작가”라고 소개합니다. 또한 그는 열정적으로 공화주의를 신봉하는 휴머니스트이기도 합니다. “신사 양반, 사악함이야말로 비판의 정신이지요. 역설적이기는 하지만 비판이란 근원적으로 진보와 계몽을 낳게 한답니다.” 세템브리니는 이곳을 떠나라고 주인공에게 충고합니다. 그러나 카스토르프는 요양원에 체류하는 러시아 여자, 클라우디아 소샤에게 매혹 당해 있습니다. 

 

소샤는 28세의 기혼녀인데, 그미의 남편은 다게스탄의 높은 관리라고 합니다. 말하자면 그미는 남편과 별거 중에 있습니다. 손가락에는 결혼반지조차 없는 것으로 미루어, 부부 관계가 매끄럽지 못하는 것을 독자는 느낄 수 있습니다. 다보스 요양원의 관리인 베렌스는 그미를 모델로 하여 그림을 그립니다. 이에 대해 주인공 한스는 몹시 질투심을 느낍니다. 클라우디아 소샤는 언제나 노곤하다고 말합니다. 몸에는 미열이 있고, 병적 증상을 드러내곤 합니다. 그러나 그미의 열정은 불과 같습니다. 소샤는 보들레르가 말하는 “악의 꽃 Les Fleurs du Mal”이며, 오디세우스를 수년간 가두어 놓고 욕정의 대상으로 삼은 요정, “치르체 Circe”와 같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소샤는 주인공에게 요양소에 더 오래 머물러 달라고 계속 간청합니다. 작품의 제 5장에서 제 7장에 이르기까지의 내용은 괴테의 ?발푸르기스의 밤?과 유사하게 사육제의 축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화자는 주인공과 소샤 사이의 뜨거운 사랑에 관해 암시를 던지고 있습니다. 소샤는 천성적으로 육체의 감각이 매우 발달한 여성입니다. 그러나 독자는 주인공이 그미와 뜨거운 사랑을 나눈 것을 다만 유추할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