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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박: 포이히트방거의 유대인 전쟁 (1)

필자 (匹子) 2018. 8. 2. 09:48

1. 포이히트방거의 삼부작 소설: 리온 포이히트방거 (1884 - 1958)는 유대인 출신의 작가이지만, 유대주의에 관해 상당한 비판적 시각을 견지하였습니다. 특히 유대인 쥐스(1925)에서 유대인의 소시민적 이기주의 내지는 선민의식을 헐뜯었는데, 포이히트방거는 자신의 둥지를 비난하는 자로서 유대인들로부터 심하게 비난을 당했습니다. 또한 개인적으로 베르톨트 브레히트를 발굴하여 브레히트의 극작품을 소개한 것으로 문학사에 자신의 이름을 올렸습니다. 오늘은 삼부작으로 이루어진 포이히트방거의 장편 소설 유대인의 전쟁(1932)을 다루어볼까 합니다. 원래 포이히트방거는 유대인의 역사가, 요제프 벤 마티아스 (Flavius Iosephus)에 관한 두 권의 소설을 구상한 바 있었습니다. 요제프는 기원 후 1세기에 로마에 반대하는 정치적 입장을 내세우다가, 돌연 로마의 베스파시아누스 황제의 총애를 받았던 인물입니다. 그러다가 그는 다시 변절하여, 고향으로 돌아온 뒤부터 로마 제국에 대항하는 폭동에 가담하다가 끝내 장렬한 최후를 맞이하게 됩니다.

 

2. 유대인의 정체성과 세계 시민의 태도: 가령 다음과 같은 물음은 작품 유대인 쥐스와 마찬가지로 포이히트방거 문학의 핵심 사항입니다. 수많은 다양한 문화권 속에서 유대인의 정체성은 어떻게 보존될 수 있는가? 하는 물음을 생각해 보세요. 포이히트방거는 이 작품을 나중에 삼부작으로 확장시켰습니다. 왜냐하면 19333월에 국가사회주의자들이 그의 집으로 급습하여 두 번째 권에 해당하는 원고들을 모조리 파기하고 말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때 포이히트방거는 다음과 같이 술회하였습니다. “잃어버린 부분을 다시 원래대로 복원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한 것으로 판명되었다. 나는 주인공, 요제프가 고민하던, 이른바 민족주의와 세계 시민이라는 테마 외에도 다른 것을 습득하였다. 그렇기에 소설의 소재는 작품의 주제를 훌쩍 넘어서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모든 사항을 어쩔 수 없이 세 권으로 나눌 수밖에 없었다.” 1935년에 두 번째의 책 아들들Die Söhne이 간행되었고, 1942년에는 세 번째의 책 요제프와 황제가 영어 판으로 간행되었습니다. 세 번째 책은 독일어 판으로 그날은 온다라는 제목으로 간행되었습니다.

 

3. 주인공, 요제프 벤 마티아스: 유대인의 전쟁의 배경은 맨 처음에는 로마입니다. 주인공의 고향인 유다 지역에서는 거대한 방화사건이 발생합니다. 이때 젊고 야망을 지닌 작가이자 수상인 요제프 벤 마티아스는 예루살렘의 거대 평의회에 소속된 유대인들의 부탁을 받고 로마로 왔습니다. 말하자면 로마에 수감된 채 강제노동으로 생활하는 평의회의 회원을 해방시키는 일이 그의 임무였습니다. 요제프에게는 평생의 학문적 경쟁자 유스투스 티베리아스가 있었습니다. 그는 로마에서 살고 있는 유대인 출신의 배우 데메트리우스 리반을 통해서 을을 추진하라고 조언합니다. 그래서 요제프는 데메트리우스 리반을 만나, 자신의 뜻을 전합니다.

 

리반은 로마에서 가장 유명한 희극배우였습니다. 두 사람은 티부르로 가서, 세 명의 수인이 강제수용소에서 벽돌을 만들고 있는 모습을 바라봅니다. 리반은 주인공을 도와주겠다고 약속합니다. 두 사람이 왕비를 알현한 다음에 세 명의 유대인의 석방을 청원했을 때, 왕비 포페아는 처음에는 거절합니다. 뒤이어 데메트리우스 리반의 독창적인 극작품 유대인 아펠라의 공연을 전제로 세 명의 유대인 정치범을 석방해줍니다. “유대인 아펠라는 엉큼하고 사악한 로마 사람들의 위트에 의하면 타협을 모르는 꽉 막힌 인간이고, 미신을 신봉하는 인물이라고 했다. 그의 몸에는 악취가 풍기기 때문에 가까이 다가가면 구역질이 난다고 했다.” 여기서 언급되는 왕비는 63년부터 65년까지 활약했던 네로 클라우디우스의 왕비 포페아 사비나를 지칭합니다.

 

4. 역사서 집필로써 로마와 예루살렘 사이에 전쟁이 발발하다: 요제프는 로마에 체류하는 동안 자신의 역사서인마카베오 이야기를 집필하여 그곳에서 발표했는데, 로마에서 대단한 성공을 거둡니다. 그는 로마에 체류하는 동안 이스라엘과 로마 사이의 커다란 긴장감을 생생하게 체험합니다. 특히 로마 당국에는 반유대주의자, 탈라스가 외교를 담당하면서, 식민지인 유다 지역을 지속적으로 통제하려는 속내를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어쨌든 요제프의 책은 기원 후 66년에 본의 아니게 유대인 전쟁을 촉발시키게 됩니다. 왜냐하면 로마당국은 세 명의 유대인을 방면하게 했지만, 유다의 수도, 카이사레아의 지배권을 유대인들로부터 강제로 빼앗았기 때문입니다. 탈라스의 여러 가지 외교 정책이 유다 지역을 정치적으로 그리고 경제적으로 불안에 휩싸이게 만든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조처에 참을 수 없던 유대인들은 로마에 대해 전쟁을 선포했는데, 이로써 예루살렘과 로마 사이에 끔찍한 유대인 전쟁이 발발하게 됩니다. 맨 처음의 전쟁은 유대인의 승리로 일시적으로 끝납니다.

 

5. 요제프, 유대인을 배반하고 로마의 베스파시아누스의 충복이 되다.: 예루살렘에 있는 유대인 중앙정부는 시골의 지역 티베리아스에 인민 총독을 파견합니다. 이 지역은 요제프의 학문적 경쟁자 유스투스의 고향이었습니다. 유대인 중앙정부는 로마 군대의 공격을 차단시키기 위해서는 유대인 군대가 여러 명의 총독에 의해 자치적으로 일사분란하게 움직여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요제프 역시 로마 군대를 방어하는 갈릴리 지역의 총독으로 차출됩니다. 중앙정부는 갈릴리에 주둔하던 로마군과 휴전을 맺고 전쟁을 종식시키려고 계획하였습니다. 그런데 요제프는 이러한 명령을 무시하고, 역모를 일으킨 유대인들의 편에 서서 로마 군대와 싸우려고 합니다. 그리하여 그는 유대인 군대를 동원하여 로마군이 주둔하던 티베리아스의 아그리파 왕의 궁성을 모조리 파괴합니다. 이 소식을 접한 로마는 베스파시아누스 장군의 부대를 갈릴리 지역으로 보내어 예루살렘을 완전히 쑥밭으로 만들 계획을 실천에 옮깁니다. 당국은 어떻게든 로마 군대를 일주일 동안 방어하라고 요제프에게 명령을 내립니다.

 

요제프는 예루살렘의 길목에 위치하고 있는 요타파트 요새에서 지휘관으로 일하면서, 성을 완강하게 사수합니다. 그는 당국에 약속한 대로 일주일을 버팁니다. 그러나 요제프는 로마의 용병들과 더 이상 대적할 수 없게 됩니다. 동료 장수들이 죽다가 싸우거나 도주한 반면에, 요제프는 자신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 항복을 선언합니다.. 그는 베스파시누스 대장 앞에 무릎을 꿇고 다음과 같이 간언합니다. “당신이 나중에 로마의 황제로 등극할 것이오.” 말하자면 주인공은 변절하여, 베스파시아누스 장군의 부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이 소식이 전해졌을 때 예루살렘의 유대인들은 요제프를 변절자라고 규정하고, 오랫동안 그를 저주합니다. 그렇지만 요제프는 자신에게 가해지는 이러한 비난을 달게 받아들입니다. 게다가 로마 여인과 결혼까지 마다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