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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박: 하우프트만의 플로리안 가이거

필자 (匹子) 2018. 1. 5. 11:03

친애하는 K, 오늘은 게어하르트 하우프트만 (1862 - 1946)의 극작품, 에 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현재 당신은 하우프트만에 관한 졸업 논문을 집필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극작가의 잘 알려지지 않은 작품 한 편을 거론하는 게 당신의 연구에 간접적인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플로리안 가이어 (Florian Geyer)」는 서막을 포함한 5막으로 이루어진 비극입니다. 플로리안 가이어는 프랑켄 출신의 기사이지만, 1525년 독일 농민전쟁이 발발했을 때 농민 편에 가담하여 싸웠던 사람입니다. 작품은 1896년 1월 4일 베를린의 독일 극장에서 초연되었다고 합니다. 1891년에 극작가는 작품 구상에 들어갔는데, 당시에는 작품 「직조공들」이 채 완성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친애하는 K, 작가는 책상에 앉아서 공허한 이야기만 기술하는 자가 아닙니다. 때로는 주어진 사실을 고증하기 위해서 문헌을 뒤지고 답사 여행을 떠나야 합니다. 하우프트만이 그러했습니다. 그는 작품을 집필하기 전에 침머만 (W. Zimmermann)의 독일 농민 전쟁 연구서 『위대한 독일 농민전쟁 (Großer deutscher Bauernkrieg)』(1891)을 깊이 파고들었습니다. 나아가 하우프트만은 당시에 사용되던 방언까지 세밀하게 연구했다고 합니다. 이를 고려할 때, 문학 작품이 본연의 탁월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작가는 고도의 학문적 노력을 필요로 합니다. 특히 작가는 작품 집필에 앞서서, 자신이 다루려고 하는 사건에 대해 세밀하게 알아야 합니다.

 

작품에서는 개개인이 등장하는 게 아니라, 주로 대중 전체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농부들 그리고 이들과 연합 전선을 구축한 도시 사람들이 바로 그 대중들입니다. 이들을 선도하는 자가 바로 플로리안 가이어입니다. 그렇지만 그는 전통적 의미에서 영웅적인 인물이 되지 못합니다. 플로리안은 과감한 추진력 내지 결단성을 지니지 못해 결국 주위 사람들에게 커다란 영향력을 끼치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그는 놀랍게도 극작품의 주인공으로 등장합니다. 극작가는 작품 「직조공들」을 쓰기 전에 개인 대신에 대중 내지 공동체를 기술하려고 시도했습니다. 친애하는 K, 작품에서는 독일 농민전쟁의 운명적 사건이 기술될 뿐 아니라, 종교 개혁운동의 내면적 와해로부터 돌출하는 어떤 비극적 사건이 묘사되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독일 농민 혁명이 어떠한 이유에서 실패하고 말았는가? 하는 문제를 비판적으로 고찰하고 있습니다. 자고로 혁명은 첫째로 하나의 분명한 계획을 지녀야 합니다. 둘째로 혁명의 성공을 위해서는 방법적으로 분명한 하나의 노선을 미리 확보해 놓아야 합니다. 셋째로 혁명이 발발하면, 지도층은 서로 협동하여, 일 처리를 일사 분란하게 진행해야 합니다. 이 가운데에서 하우프트만이 가장 중요한 취약점으로 파악한 것은 세 번째 사항이었습니다. 작품 속에서 지도층은 서로 협동하기는커녕 서로 반목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혁명이 처음부터 성공을 거둘 리 만무합니다. 이 경우 전선은 적과 동지 사이에 그어져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전선은 이중적으로 설치되어 있습니다. 즉 외부의 적과 내부의 적과 싸우는 일을 생각해 보십시오. 게다가 혁명가에게 요구되는 사항은 거사를 끝까지 관철시키려는 굳은 의지입니다만, 이는 플로리안에게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이제 작품의 줄거리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서막에서 농부들의 폭동이 발발합니다. 귀족들은 이러한 폭동을 경멸하면서, 자신들에 대항하는 분노한 농부들에 대해 조소를 터뜨리고 있습니다. 기사 계급 역시 귀족들의 편입니다. 기사들은 뷔르츠부르크 근처에 있는 “우리 여성들의 산 (Unserer Frauen Berg)”이라는 성에 집결하여, 시민들과 연합 전선을 구축한 농부들에 대항하여 싸우기로 결정합니다. 다시 말해 시골에서 달려온 농부들은 뷔르츠부르크의 시민들과 힘을 합하여 귀족과 제후세력에 저항하지만, 대부분의 기사들은 기득권에 합세하여 농부와 도시 평민들을 무력으로 진압하려 합니다. 

 

다른 한편 뷔르츠부르크의 성당의 방에는 농부들과 시민들이 함께 모여서 평의회를 구성합니다. 평의회에서 몇몇 사람들은 기사, 플로리안 가이어를 지지하면서, 그를 농민전쟁의 인도자로 추대합니다. 그렇지만 상당수의 사람들은 이에 대해 반대합니다. 왜냐하면 플로리안은 귀족 출신의 기사이므로 농민 전쟁의 지도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들의 견해에 의하면 농민 전쟁의 수장을 맡을 사람은 플로리안 가이어가 아니라, 다른 기사, 괴츠 폰 베를리힝겐 (Götz von Berlichingen)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제 1막에서 독일 농민전쟁의 비극은 가시적으로 드러납니다. 농민 전쟁에 가담한 사람들은 수많은 그룹으로 나누어집니다. 이들은 권력자에 대해서 제각기 다른 요구 사항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러한 분화 과정 내지 분파주의 등으로 인하여 혁명을 위한 어떤 공동적 슬로건 내지 정치적 구상에 관한 싹은 처음부터 잘려나가 버립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지도자가 없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지도자는 하나의 분명한 목표를 설정하여, 부하들에게 어떤 방향을 제시하는 자입니다. 목표가 불분명하니, 사람들은 우왕좌왕 다른 길로 나아가려고 합니다. 물론 플로리안 가이어는 농민 지도자들 가운데에서 모든 계급을 포괄하는 사회에 관한 어떤 질서를 미리 바라볼 수 있는 유일한 자임에는 틀림없습니다. 그렇지만 농민들이 좋은 결말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플로리안 스스로 농민 혁명의 지도자 역할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이러한 판단에는 어떤 정치적 필연성이 결핍되어 있습니다.

 

예컨대 플로리안 가이어는 평의회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합니다. 농민들이 의견 대립의 상태로 머물면, 혁명 자체가 실패로 돌아가므로, 모든 주도적인 역할이 새롭게 구성되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평의회의 모임이 끝난 뒤에 주인공은 무장한 농부들과 시민들을 이끌고, 로텐부르크로 향합니다. 이곳 지역의 농부들의 견해는 다른 지역에 비해 더욱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었습니다. 주인공은 반목하는 농부들을 결집시켜놓고, 그들을 설득하려고 합니다. 그러자 농부들의 동료들에 대한 노여움은 서서히 가라앉게 됩니다. 그러나 로텐부르크의 농부들은 주인공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그들은 주인공이 없는 틈을 이용하여, “우리 여성들의 산 (Unserer Frauen Berg)”이라는 성으로 향합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기사들에 의해서 끔찍한 패배를 당합니다.

 

플로리안 가이어는 분노와 낙심으로 오락가락하다가,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기로 결심합니다. 농민 전쟁에 가담해봐야,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말을 따르지 않기 때문에 더 이상 성공을 보장받을 수 없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주인공의 어떤 박약한 의지를 감지하게 되지요. 자고로 혁명가는 전부를 얻든가, 아니면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한 가지 거사를 결심하면, 그것을 끝까지 밀어붙여야 하지요. 거사의 어려움을 감지하면 처음부터 아예 거사에 착수하지 말았어야 옳았습니다. 플로리안 가이어는 혁명의 과정 속에서 자주 머뭇거렸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전쟁은 농부들의 패배로 끝날 위기에 처하게 됩니다. 이때 주인공은 뒤늦게 다시 장검을 집어 듭니다. 부상당한 농부들을 추슬러서, 마지막 전투에서 승리하려고 노력하지만, 주인공은 끝내 패배의 상황을 승리의 상황으로 반전시키지 못합니다.

 

플로리안 가이어는 결국 야밤을 틈타서, 자신의 처남인 빌헬름 그룸바흐 소유의 성으로 도주합니다. 그렇지만 자신의 처남은 기회주의적으로 처신하는 자로서 귀족 세력에 가담해 있었습니다. 주인공은 사태의 심각함을 절감하고, 처남의 성을 빠져나와, 농민들이 은거해 있는 곳으로 향합니다. 그곳에서 그는 까만 말 한 필을 구한 뒤에, 까만 옷으로 변장합니다. 이른바 정의의 흑기사가 된 플로리안 가이어는 다시 농부들을 이끌고 아수라장이 된 전쟁터로 향합니다. 그곳에서 그는 승리감에 도취한 기사들에게 결투를 제안합니다. 이제 농민 전쟁이 진압 직전이기 때문에 아무도 그와 대적하려 하지 않습니다. 결국 주인공은 매복한 적군의 화살에 맞아서 장렬하게 전사합니다.

 

작품 「플로리안 가이어」는 아주 공정한 태도를 고수하면서, 농민 전쟁의 전개 과정을 세밀하게 반영하고 있습니다. 작품 속에 반영된 동작과 언어 표현 등은 과거의 사실을 너무나 생생하게 그리고 정확하게 묘사합니다. 그렇지만 실제 사실에 너무나 충실한 나머지, 작품은 극적 긴장감을 부각시키지 못한 감이 있습니다. 게다가 마르틴 루터의 어색한 독일어가 사용되고 있으며, 수많은 등장인물이 나타납니다. 이 두 가지 사항은 1896년 초연이 어째서 실패로 돌아갔는가를 반증해주는 대목이 아닐 수 없습니다. 1904년에 루돌프 리트너 (R. Rittler)라는 배우가 주인공을 맡았는데, 이 공연은 어느 정도 호평을 얻었습니다. 또한 제 1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인 1918년에 하우프트만의 작품은 대대적인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이는 극작 기술 내지 배우의 능력 때문이 아니라, 작품의 주제가 전후의 시대정신에 걸맞기 때문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