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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박: 카프카의 변신 (1)

필자 (匹子) 2021. 12. 29. 11:37

21세기에 이르러 전쟁은 사라진 듯 보입니다. 다시 말해서 한 인간이, 혹은 한 나라가 타인 혹은 다른 나라를 무력으로 짓밟고, 무지막지하게 전리품을 차지하는 경우는 사라진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이는 허상입니다. 독점 자본주의가 무소불위의 권력을 발휘하는 오늘날을 생각해 보세요. 개인이든 나라든 간에 밥줄을 잃거나, 경제 구도가 외국세력에 의존하게 되면, 당사자는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되지요.

 

이렇듯 “보이지 않는 손”의 횡포는 참으로 무섭고도 교활합니다. 사람들은 누군가 자신의 주머니에 있는 돈을 빼앗아 가면, “도둑이야!” 하고 외치지만, 국가가 교활한 방법으로 자신의 월급 명세서에서 세금을 빼돌리면,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을 뿐 가만히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국가의 독점 자본주의의 횡포에 대해 누구보다도 관심을 기울이며 비판의 자세를 취해야 할 것입니다.

 

친애하는 J, 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을 다루려고 합니다. 카프카의 문학은 그 자체 깊이 있고, 중요하지만, 독문학 영역에서 수없이 다루어졌습니다. 그렇기에 그것은 나에게 새로운 자극을 가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여기서 다시금 카프카를 언급하려는 까닭은 오로지 당신의 졸업 논문 집필에 도움을 주고 싶기 때문입니다. 「변신」은 1912년 12월에 집필되었으며, 1915년에 이르러 발표되었습니다.

 

“어느 날 아침 불안하게 꿈꾼 뒤에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그레고르 잠자는 자기 자신이 침대에서 끔찍한 벌레로 변해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작가는 어떤 기상천외한 변신의 장면을 지극히 냉담하고도 간결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동물 생태학자 브렘 Brehm은 『동물의 삶 Tierleben』에서 침대에서 거주하는 빈대에 관해서 자세히 묘사한 바 있습니다. 카프카는 브렘의 묘사를 참고하여 소설을 집필하였습니다. 맨 처음에 작품의 제목은 “빈대”였는데, 나중에 “변신”으로 확정되었습니다.)

 

그레고르 잠자는 새롭게 변해 있는 자신의 존재에 대해 처음에는 그다지 놀라워하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이러한 자신의 모습이 헛된 망상에 불과한 것이라고 여기고 그것을 뇌리에서 지우려고 합니다. “이러한 엉터리 같은 형상을 잊어버리고 잠을 더 자는 게 낫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오히려 그는 네 시에 맞춰둔 초인종 소리를 듣지 못했다는 데 대해 무척 놀라워합니다. 반드시 제 시간에 기상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무의식적으로 자신이 즉시에 깨어나지 않으려고 의도했는지 모릅니다.

 

주인공은 직업상 매일 어디론가 멀리 떠났다가 밤늦게 다시 집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그는 참으로 힘든 직업을 선택하였습니다. 말하자면 평소에 여행자로 살아가는 자신의 고단한 생활 방식을 싫어하고, 이에 대해서 무의식적으로 저항해 왔습니다. 말하자면 매일 새벽마다 기상하여 멀리 여행을 떠나야 하는 것은 참으로 고통스럽습니다. 이는 결국 끔찍한 벌레로 변신하게 된 계기가 되는 셈이지요. 해충 내지 벌레는 어디론가 돌아다닐 수 없습니다. 어쩌면 자신의 직업적 삶에 대한 무의식적 불만이 결국 자신을 벌레로 변신하게 한 셈입니다.

 

그렇다면 주인공이 어떠한 이유에서 하필이면 혐오감을 불러일으키는 벌레로 변했을까요? 벌레의 모습은 너무도 흉측하여, 주인공의 가족들이 그를 바라보고 소스라치게 놀랄 정도입니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표현에서 어떤 중요한 모티프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만약 부모님이 말리지 않았더라면, 나는 오래 전에 이미 사직서를 제출했을 것이다. 사장 앞으로 다가가서, 그만 두겠다고 말하면서, 마음속에 있는 모든 말을 털어놓았을 것이다.

 

그레고르의 저항은 이미 오래 전에 자신의 무의식을 가득 채우고 있었지만, 겉으로 드러나지 않고 있었습니다. 자신이 하기 싫은 일을 계속하는 것은 오로지 부모님을 위해서 그리고 여동생과 가족을 부양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가족을 위해서 자신이 희생적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생각은 그저 하나의 피상적 사고에 불과합니다. 이를 고려한다면 자신이 끔찍한 해충으로 변신한 것은 주인공의 무의식 속에 도사린 저항의 표현입니다. 그레고르 잠자는 이제 더 이상 (가족을 포함한) 타인을 위해서 하기 싫은 직장생활을 억지로 영위하고 싶지 않습니다.

 

하나의 기괴함은 카프카 문학에서 항상 은폐된 어떤 진실을 분명하게 밝혀주는 수단으로 작용합니다. 그레고르의 가족들이 그의 변신에 대해 무척 놀라워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왜냐하면 가족들은 주인공의 변신에 일말의 책임이 있기 때문입니다. 어머니는 천식을 앓고 있으며, 매사를 수동적으로 관망합니다. 아버지는 지난 몇 년 동안에 빈둥거리며 신문이나 읽고 소일했으며, 여동생은 직장 없이 그냥 편안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가족은 주인공을 경제적으로 억압하며 살아갑니다. 왜냐하면 가족 구성원들은 주인공의 월급으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주인공이 끔찍한 벌레로 변신한 것을 목격한 가족들은 스스로 주인공에 대한 자신의 비인간적인 태도를 간파하게 됩니다. 주인공의 끔찍한 모습은 너무나 강렬했기 때문에 가족 구성원들은 일단 피신합니다.

 

한마디로 그레고르 잠자는 벌레로 변신한 다음부터 다른 세 명의 가족 구성원들에 의해서 서서히 파멸합니다. 가족들은 주인공을 등한시하거나, 그에게 마구잡이로 폭언을 가합니다. 왜냐하면 가족 모두가 그레고르 때문에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카프카는 주인공이 피해당하며, 심리적 고통에 시달리는 기괴한 과정을 치밀하게 묘사합니다. 여동생은 매일 상한 야채, 뼈 조각 그리고 약간의 먹을 것을 가져다줍니다. 약간의 먹을 것이라곤 건포도, 아몬드, 치즈 몇 개 그리고 빵 몇 조각이 전부입니다. 모든 것은 상한 것이라서 제대로 먹을 수 없습니다.

 

주인공은 고통스러운 생각을 떨치기 위해서 바닥과 벽에 기댄 채 몸을 비비곤 합니다. 여동생은 이러한 기이한 습관을 알아차리고, 방에 있는 가구를 빼내자고 어머니에게 제안합니다. 옆방으로 가구를 옮기면, 누군가에게 방을 세놓을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레고르는 가구가 밖으로 나가는 것을 멍하니 바라보면서, 그레고르는 고통을 느낍니다. 가구는 자신의 존재를 느낄 수 있는 유일한 물건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가족들이 최소한 상자 하나만은 남겨두기를 애타게 바랐던 것입니다.

 

그는 다시 인간으로 변신하게 되기를 애타게 갈망하고 있습니다. 어머니와 여동생이 모든 물건을 빼내려고 방으로 들어왔을 때 그는 벽에 붙은 채 벽을 더듬습니다. 이 모습을 바라본 어머니는 순간적으로 기절해버립니다. 어느 날 여동생의 바이올린 음에 도취한 주인공이 방으로 나왔을 때 가족들은 이를 간파하고, 주인공에게 온갖 노여움을 퍼붓습니다. 이때 주인공은 가족들의 사악함을 완전히 깨닫게 됩니다.

 

귀가한 아버지는 주인공을 목격하고, 그를 방안으로 몰아넣기 위해서 사과를 던집니다. 사과 한 알이 주인공의 몸에 붙은 가시에 예리하게 박힙니다. 주인공은 순식간에 중상을 입은 채 의식을 잃습니다. 그는 몇 개월 동안 시름시름 앓으면서 목숨을 연명합니다. 가족 어느 누구도 그의 몸에 박힌 사과를 빼주지 않습니다. 가족들은 행여나 세입자가 그레고르의 끔찍하고도 기이한 모습을 목격할까봐 전전긍긍할 뿐입니다. 그들이 궁리하는 것은 오로지 어떻게 하면 버러지 하나를 집에서 빼낼 수 있을까? 하는 물음밖에 없습니다. 결국 그레고르는 의식의 혼미함 속에서 서서히 눈을 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