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내 단상

(단상. 263) 페기다, AFD 그리고 자민당

필자 (匹子) 2015. 1. 10. 10:22

독일에서는 페기다 운동이 퍼져나가고 있다. 이들은 이슬람 종교에 반대하고, 이슬람 국가의 난민을 받아들이는 국가의 정책에 반기를 들고 있다. 페기다 운동은 뒤셀도르프에서는 뒤기다로 발전하고, 드레스덴에서는 기다로 세력을 확장시키고 있다. 본에 거주하는 일부 사람들은 시가지 데모를 덜이면서 보기다 운동을 펼쳐나가고 있다. 문제는 이들의 운동이 차제에 국수주의의 파시즘라는 무시무시한 연기로 피어오를지 모른다는 가설이다. 이러한 가설은 어쩌면 조만간 사실로 출현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이에 한술 더 뜨는 정당이 존재한다. 그것은 AFD라는 정당이다. AFD는 독일 소시민들의 눈앞의 이득과 손해 등을 자극해서 당의 이득을 창출하려는 정당이다. 마치 하멜의 쥐잡는 사람들이 아이들을 유혹하여 사지로 몰아간 적이 있듯이, AFD기 유럽 소시민들의 정서를 자극하여, 반유대주의 내지 반 이슬람주의를 충동하려는 의지를 지니고 잇지 않다고 누가 과감하게 주장할 수 있는가? 이 정당이 민주주의에 입각해 있는지는 아직 판가름나지 않앗다. AFD가 나중에 독일 국회에 얼마나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할지 어느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안타까운 것은 독일 자민당의 몰락이다. 자민당은 지난 100년 동안 독일 정치 및 유럽 정치에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했다. 자민당은 자유 기업가의 정신을 추구하는 정당이라고 하여 흔히 마이더스 정당이라는 비난을 듣지만, 사실은 개인의 자유와 인권을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생각하는 정당이다. 자민당은 국가와 사회가 개인을 억압할 경우 이에 저항할 권리를 최우선으로 생각한 정당이다. 그렇기에 자민당의 위대함은 나치 정권 당시 그리고 1968년 대연정 당시에 그대로 드러났다. 게다가 독일의 분단을 극복하고 통일이라는 교두보를 마련한 정당이 바로 자민당이다. 자민당의 한스 디트리히 겐셔가 없었더라면 헬무트 콜 총리는 구소련 그리고 구동독의 정치가들과 담판을 성공리에 이끌 수 없었다. 독일 사람들은 이 점을 망각하고 있다. 

 

올바른 역사 인식은 올바른 판단을 낳게 한다. 한국인이든, 일본인이든, 독일인이든 간에 과거를 분명하게 이해하는 일이야 말로 자유로운 판단과 자유로운 정신을 창출하게 하는 길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